힙합X사회적기업, 너와 나의 연결 고리!
<무한도전>이 힙합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를 위해 힙합이란 도구를 선택한 거다. 아무래도 요즘 인기 래퍼들이 랩으로 역사를 말한다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더욱 끌게 될 테니 말이다. 무한도전 이전부터도 힙합의 외연은 넓어지는 추세였다. <힙합의 민족> 시즌 1에서는 중년 여배우들이 랩을 했다. 프로 래퍼처럼 비트와 밀당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비트 위에 자신이 하고픈 말을 진솔하게 녹여냈다. 두 사례를 보더라도 힙합이 지닌 힘은 사회 비판적인 저항정신 그 이상이다. 여기 힙합의 장점을 활용해 활동하는 영국 사회적기업 2곳을 소개한다.
1. 힙합으로 우울증을 날린다, 힙합 사이크(Hip Hop Psych)
힙합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뭘까? 아마 거침없이 쏟아내는 직설화법의 가사일 것이다. 힙합 가사에는 종종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자신의 지난한 삶을 반추해보는 이야기가 담긴다. 이러한 힙합 가사가 정신 질환에 어떠한 도움을 주는지 연구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영국의 사회적기업 ‘힙합 사이크’다.
힙합 사이크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정신의학과의 신경과학자들로 구성된 사회적 기업이다. 이들은 정신질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음악 장르를 연구했다. 특히 힙합이 정신 건강 측면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우선 연구팀은 우울증, 정신분열 등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힙합 음악을 들려줬다. 이후 힙합을 들은 환자들에게 얼마나 치료 효과가 있는지 살펴봤다. 연구 결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가사가 환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많은 힙합 가사에는 정신질환의 원인이기도 한 약물 남용, 가정 폭력, 빈곤 등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정신질환에 관한 참고 자료가 풍부하다. 환자들은 가사 속에서 자신과 유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이나 이야기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좋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힙합 사이크는 정신 치료 중 하나로 힙합을 활용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영역 구분 없이 래퍼, 자선 단체, 의료 단체 및 다양한 분야 사람들과 협력하며, 대중들이나 청소년들을 직접 만나 힙합의 유용성에 대한 연구 결과를 알리며 힙합 공연을 선보인다. 또 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쓰고 랩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과 함께 힙합 사이크는 꾸준하게 환자들의 치료에 효과가 있는 힙합 음악이 무엇인지 연구한다. 이중 대표적인 힙합 아티스트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에미넴(Eminem),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가 있다.
다음 노래는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노래 ‘happy’로, 정신 질환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밝혀졌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노래를 잠시 감상해보자. 영어 가사라서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랩의 흐름과 비트, 톤 등 힙합 음악을 전반적으로 들으면 오늘 하루 쌓인 우울함과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다.
2. 힙합으로 셰익스피어를 기억하다,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The Hip-hop Shakespeare Company)
힙합 가사는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를 이용해 힙합 가사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담아내는 영국 사회적기업이 있다. 바로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다.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2009년 영국의 힙합 아티스트 아칼라(Akala)에 의해 설립됐다. 이름에서도 말하듯이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세계 최고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현대의 힙합 아티스트들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언어적 유사점을 탐구하면서 공연한다. 물론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노래 가사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소네트(14행 서정시)가 들어있다.
아칼라 대표가 공연이나 강연을 나갈 때면 관객들에게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있다. 바로 ‘두 문장 중 어느 것이 고전 희곡에 나오는 대사일까?’라는 질문이다.
“어쩌면 내가 뿌린 증오일 수도, 기개를 위한 음식일 수도 있다.”
“죽음이야말로 우리가 열렬히 바라는 삶의 결말이 아닌가. 그러면 또 꿈도 꾸겠지.”
두 개의 문장 모두 셰익스피어가 쓴 대본 같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대사이고, 첫 번째 문장은 에미넴과 제이지(Jay Z)가 함께 부른 레니게이드(Renegade) 중 한 구절이다. 지금까지 이와 같은 연이은 질문에 정답을 모두 맞힌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와 희곡 대사는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은 현대에 적용해도 어색함이 없다. 또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고전 언어로 쓰여서 이해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하지만, 작품에서 고전어의 비중은 고작 5%에 불과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비트를 제외한 랩과 유사한 점이 많다. 제일 먼저 두 문화 모두 우리에게 곰곰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권력, 죽음, 사랑, 위선 등 우리가 인생사를 살다 보면 겪을 수 있는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랩과 셰익스피어의 장점을 살려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셰익스피어를 힙합이라는 대중문화에 접목하는 활동을 한다. 이를 통해 셰익스피어의 문학이 어렵고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괴리감을 줄여준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차용해 노래를 창작하는 것은 물론 교육 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또 청소년이나 신진 예술가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지역 소극장이나 감옥 등을 찾아가 청소년들을 위한 워크숍을 열기도 한다. 셰익스피어 문화를 널리 알리고 다 같이 공유할 기회를 늘리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셰익스피어가 전성기에 집필한 연극 '리처드 2세'를 담은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노래 ‘Am I King’이다. 노래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아칼라는 매년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흑인 음악가에게 주는 MOBO(영국 흑인 음악시상식, Music of Black Origin)에서 최우수 힙합 아티스트 상을 수상한 만큼 독창적인 랩과 리듬감으로 눈에 띄는 실력을 선보인다.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는 영국과 유럽은 물론 동아시아, 인도,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셰익스피어와 힙합에 대한 색다른 시선을 선보이며 이해를 넓혀준다. 앞으로 아칼라는 예술과 문학을 넘어서 평소 관심이 많은 인권, 정치, 사회 참여 등 영역을 확장해 사회 혁신가로 발전해 나갈 계획이다.
힙합 셰익스피어 컴퍼니 설립자, 아티스트 아칼라 |
힙합은 이제 대세다. 힙합이 대중문화의 중심에 놓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힙합 가사가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라는 말은 옛이야기가 됐다. 힙합은 단순히 음악을 넘어 하나의 소통 수단이 되고 있다. 힙합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2개의 영국의 사회적기업은 힙합이 사회 문제 해결의 도구가 되는 데 어색함이 전혀 없다. 우리는 이번 사례들을 통해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조금 더 확장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또는 사회 가치를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고민할 때 우리가 누구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 갈지 그 주체를 한 번 들여다보자. 그들이 자주 쓰는 언어나 문화가 무엇인지 고려하다 보면 해결책의 범주가 조금은 넓게 보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훗날 국내에도 힙합으로 한글을 알리는 운동, 힙합으로 문제 아동들을 위한 활동 지원 프로그램 등 힙합을 활용한 다양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Images courtesy of MBC 무한도전, Hip Hop Psych, The Hip-hop Shakespeare Company
에디터 이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