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빼고 모두 바꾸는 식당, 컨플릭트 키친
미국 피츠버그 시내 중심가에 이름도 뜻도 생소한 한글 간판의 간이식당, '대립주방'이 나타났다.
‘주인이 한국 사람인가?’ 하고 안을 들여다보니 식당 안에는 분주하게 음식을 만들고 있는 8명의 미국인뿐이다. 6개월 후, 이 간이식당 간판은 또다시 바뀐다. 이번엔 식당이 온통 이란과 관련되어 있다. ‘주인이 바뀌었나?’ 하고 안을 들여다보지만 식당 안 직원은 여전하다.
직원 빼고 식당 외관과 메뉴, 모두 바꾸는 이곳은 ‘컨플릭트 키친(conflict kitchen)’이다. 갈등 식당이라는 뜻의 이 가게는 이름처럼 갈등을 재료로 요리한다. 2010년 이란으로 시작해 아프가니스탄, 북한, 팔레스타인 등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나라의 언어로 된 간판을 내걸고, 이에 맞춰 음식을 판다.
현지 음식의 맛을 고스란히 재연해 내기 위해 컨플릭트 키친 직원들은 장보기부터 재료 손질, 조리법을 배운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한 나라를 소개하기 위해서 해당 국가의 출신자를 직접 만나 이들의 생활과 문화에 대해 듣고 연구한다. 실제로 폐쇄적인 북한 사회를 조사할 때는 한국을 방문해 새터민을 만나기도 했다. 이러한 진정성 있는 노력으로 매번 한 나라만을 위한 식당 간판, 메뉴 그리고 포장지가 탄생하며 포장지에는 각 나라의 음식 이야기부터 그곳 사람들의 삶 등을 주제로 해당 국가 출신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처럼 컨플릭트 키친은 단순히 음식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주문을 받은 직원들은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중간에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손님들 간의 토론을 중재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통의 장은 간이 식당을 넘어서도 열려, 컨플릭트 키친의 다양한 SNS 채널에서 해당 국가의 정보와 소식 그리고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음식 판매로 모인 금액은 다양성 문화를 위한 교육, 공연, 출판 등 비영리사업에 쓰인다.
컨플릭트 키친을 기획한 미국 카네기멜론대 사회학과 교수 존 루빈은 말한다.
“음식은 지성을 뛰어넘어 바로 본능과 연결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나누면서 평소 나누기 어려운 주제들로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을 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미국과 분쟁 관계에 있는 나라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쟁과 핵 문제, 테러 소식 등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 때문에 미국인들은 해당 나라를 위험 국가로만 여기고 그곳에 사는 개개인의 고유한 문화와 삶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다. 미디어가 전하는 단편적인 정보가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다고 생각한 존 루빈 교수는 미술작가 돈 월레스키와 함께 컨플릭트 키친을 만들어 음식을 통해 미디어가 전하지 않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자고로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로 간의 유대감이나 친분을 쌓는 중요한 행위 중 하나다. 따뜻한 밥이 허기진 배는 물론 우리의 마음을 채워줘 여유를 갖고 상대방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컨플릭트 키친을 방문한 한 손님의 이야기가 이를 증명해 준다.
“음식도 맛있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어요.”
음식을 수단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장소, 컨플릭트 키친. 이들의 활동은 갈등 관계에 놓인 두 나라 사이의 깊은 편견을 해소할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images courtesy of Conflict Kitchen
에디터 이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