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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한다

'소설은 하나의 거울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면 독자는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거울 속에 뛰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숨에 우리는 거울 저쪽으로 들어가서 낯익은 사람들 사이에 에워싸이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비단 소설뿐만이 아니다. 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문학은 곧잘 시대상을 반영한다. 독자는 그 거울을 마주하며 때로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하고, 연민과 동정, 분노와 슬픔의 감정을 접한다. 그렇게 문학은 누군가에게 길잡이로서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할 계기가 된다.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꼭

'눈먼 자들의 국가'는 세월호 참사 후 계간 ‘문학동네’ 2014년 여름호와 가을호에 게재된 글을 엮은 책이다. 김애란, 김연수, 김행숙, 박민규 등 12명의 작가가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뜻을 함께 모았다. 문학동네 편집주간 신형철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인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숙연한 열정으로 써내려간 이 글들이 더 많은 분들에게 신속히 전달되어야 한다는 다급한 심정 속에서 이 단행본을 엮는다'고 적었다.

'문제가 없어서 문제없었던 것이 아니라, 문제가 없는 척했고,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문제를 감췄거나 미뤘거나 포기했거나 망각했기에, 문제를 정상으로 오인하며 안개 같은 문제들 속에 함께 어울려 살았기 때문에, 문제없이 오늘 하루의 무사함을 심드렁하게 영위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혹시 끄덕끄덕 흘러가는 태평한 그날그날이 4월 15일의 세월호는 아닌가.' (김행숙, 질문들)

작가들이 어렵게 쓴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아픔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자, 우리 모두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반성이며, 정부에겐 따가운 회초리고, 슬퍼하는 이들에겐 옆에서 함께 울어주는 위로다.

 

책은 출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3만 부 이상이 팔렸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인세와 판매 수익금 전액은 상처 입은 유가족들을 돌보는 ‘치유센터 이웃’,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세월호 추모 활동을 벌이는 ‘세월호 문화예술인 대책모임 연장전’, ‘자유실천위원회’, ‘304 낭독회’에 기부됐다. 책을 통해 작가와 독자가 만나고, 같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연대했다.

 

그런데 누군가 여기에 빨간 딱지를 붙였다. 무려 A4용지 100장이 넘어가는 두꺼운 분량에 적힌 9,473명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설마 했지만 진짜였다. 문학동네 역시 이 책을 펴냈다는 이유로 지원 삭감을 견뎌야 했다. 마음을 모았던 작가들도 아니나 다를까,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정부가 듣기 싫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상식적인 나라에서 상식을 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블랙리스트는 왜 만들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활동을 못 하게 해서, 출판사를 망하게 해서 더이상 이런 말을 할 수 없게 입을 막기 위해서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슬플 때 같이 위로해주자는 상식을 말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면 아무리 뜨거웠던 일도 금방 식어버린다. 부끄럽지만 우리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고 또 이제껏 그게 통해왔기 때문이다.

‘4월 16일 이후로 많은 날들에 나는 세계가 존나 망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무력해서 단념하고 온갖 것을 다 혐오했다. 그것 역시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여유라는 것을 나는 7월 24일 서울광장에서 알게 되었다.’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되새기지 않으면 잊는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마다 12명의 작가들이 당신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거울 속으로 뛰어드는 당신을 향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여기 있다고 말해줄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한다.

 

Images courtesy of 문학동네

 

에디터 성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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