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함을 넘어 공정함으로, 페어폰(Fairphone)
새로운 스마트폰이 출시됐다. 작년 이맘때쯤 바꾼 내 스마트폰은 괜히 터치도 잘 안되는 거 같고, 화면도 더 이상 선명하지 않은 느낌이다. 아직 약정도 12개월이 넘게 남았지만, 위약금을 대신 처리해준다는 대리점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우리는 결국 1년 만에 스마트폰을 바꾼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 교체 횟수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스마트폰을 만드는 과정에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원료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에 서식하던 멸종 위기 고릴라를 해치는 일이나, 내전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광물을 캐는 ‘분쟁광물’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언급된지 오래다.
하지만 분쟁광물이 스마트폰의 비극의 끝이 아니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비극은 발생하고 있는데, 그중 아이폰의 생산업체인 팍스콘의 노동 착취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도한 노동시간, 열악한 생활 환경은 12명의 노동자를 옥상에서 투신하게 하였고, 팍스콘 중국 공장은 노동자 개인의 감정 문제라며 추락 방지를 위한 ‘사랑의 그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스마트폰의 불행한 공정을 끊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만드는 과정에서 모두가 행복한 스마트폰이 있다.
Fair Minerals + Fair Process + Fair Price = ‘Fair Phone’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소재한 페어폰(Fairphone)은 2010년에 공정무역 캠페인으로 시작하여 2013년에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는데, 페어폰의 제품에는 분쟁광물이 쓰이지 않는다. 단순히 분쟁지역의 광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국제시민단체와 함께 채굴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채굴 과정에서 노동착취가 없는지, 채굴 작업이 정당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지의 여부도 확인한다. 분쟁광물을 피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공정한 광물 사용에 힘쓰고 있는 것이다.
분쟁광물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페어폰이라는 이름을 내걸기엔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걸까. 페어폰은 제조 과정에서도 착취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팍스콘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있는 페어폰의 제조 공장에서는 노동자에게 합리적인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페어폰이 한 대 팔릴 때마다 2.5달러가 공장의 노동자들의 복지개선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된다. 모인 기금의 사용도 공장 노동자들의 투표로 선출된 대표가 그 사용처를 결정하는 등 노동자들의 선택이 존중받고 있다.
좋은 의도로 만든 제품이라는 건 알겠지만, 결국 가격은 비싸지 않겠냐고? 착한 제품의 안착한 가격을 경험했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딱 잘라 이야기해서 페어폰은 가격마저 합리적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이폰6와 페어폰의 스펙을 간단히 비교해보겠다.
페어폰은 조직의 직접적인 운영에 기부나 벤처 캐피털에 의존하지 않는다. 100% 독자적인 자체 수익으로 운영하며, 이를 통해 회사의 미션을 굳건히 하고 있다. 미션을 굳건히 하며 사업을 진행하는 건 효율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도 있지만, 페어폰은 네덜란드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중 하나이다. 현재 페어폰의 첫 출시작은 ‘완판’된 상태이며, 새로운 모델은 올해 여름에 출시를 준비 중이다.
공정한 광물, 노동 과정, 성능, 가격까지 페어폰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기술의 진보를 모두 혁신이라고 이야기하진 않는다. 혁신이 담고 있는 가치 중 하나는 좋은 걸 더 비싸게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걸 더 저렴하게 누구나 살 수 있는 접근성에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페어폰은 이야기한다. 사용하던 스마트폰의 수명이 남아있다면, 굳이 페어폰을 구매할 필요는 없다고.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터치해보자. 정말 불편한가? 지금 그 스마트폰은 좀 더 당신과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분쟁지역의 야생동물들도 우리와 좀 더 함께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처럼.
에디터 김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