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다시 태어난 도시, 네덜란드 로테르담
네덜란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디자인 강국이다. 이들이 내놓는 디자인은 멋지기만 한 게 아니라, 사회 문제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디자인으로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거나, 냉장고의 쓰임새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거나, 프린트 잉크 사용량을 줄여 환경에 도움을 주는 식이다. 게다가 사회문제를 디자인이라는 방식을 통해 재치있게 선보임으로써 사람들에게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로테르담은 '지속가능한 도시디자인'으로 주목을 받는 곳이다. 옛날 건축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 낮은 건물이 곳곳에 남아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유럽의 여타 도시들과는 달리, 로테르담은 마치 미래세계를 연상케 하는 건축물이 즐비하다. 실험적인 구조와 형태로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구조물은 버려진 공간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환경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도시 전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이자, 실험실인 셈이다. 로테르담은 어떻게 지속가능한 도시디자인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을까?
변화에 개방적인 문화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를 가지고 있는 로테르담은, 예로부터 해상 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왔다. 그래서인지 세계인과 교류하며 생활해 온 이들은 새로운 문화와 사고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두려움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로테르담이 폐허가 되었을 때도 시는 기존의 건물을 복구하는 대신, 미래 지향적인 도시를 설계하기로 방향을 설정한다. 1940년대 마스강(Maas River) 아래 하저터널을 지으면서는 자전거용 터널과 보행자 터널을 따로 짓고, 1953년에는 세계 최초로 차가 다니지 않는 쇼핑 디스트릭트 만들었다. 지금이야 지구온난화 등 환경문제가 대두되며 세계 곳곳에서 환경친화적인 건물을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지만,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물의 도시
로테르담은 평균 고도가 해수면보다 6.6피트가 낮아 도시 어딜 가나 물을 볼 수 있다. 혹자는 로테르담을 '욕조'에 비유하기도 한다. 고도가 해수면보다 낮을 경우, 폭우가 쏟아지거나 태풍이 오면 곧잘 홍수가 난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비에 하수구가 제 기능을 할 시간이 없어서다. 로테르담의 건축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비 저장고를 만들어 냈다. 대형 옥상농장이 바로 그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이 옥상농장은 도시에 녹지를 조성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비가 오면 일종의 물 저장고가 되어 하수구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에 위기를 느끼는 도시 사람들은,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면서 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데 열심이다. 올해에는 세계 최초로 60마리의 소와 곡물을 재배하기 위한 하우스가 있는 농장을 물에 띄울 예정인 데다, 대부분의 건물은 자생적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설계한다. 주거지에서 나오는 배설물로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고, 건물에는 태양광 패널을 다는 등 친환경 에너지를 복합적으로 사용해 효율을 더욱 늘린다.
버려진 공장과 유휴지의 활용
공공수영장으로 운영되다 최근 버섯농장으로 탈바꿈한 트로피카나 |
현대에 접어들어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등이 새로운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르면서 로테르담의 무역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항구 근처에 버려진 컨테이너가 급증하기 시작했고, 경제 위기가 불어닥친 이후 유휴지는 더 늘었다. 시 정부는 이 공간을 버려두지 않고, 스타트업 창업자나 혁신가들이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저렴하게 임대해주었다. 버려진 공간 자체를 변화시키는 시도 역시 활발한데, 대표적으로 마스강 옆에 위치한 트로피카나(Tropicana)가 있다. 유리 지붕의 돔 형태의 건물인 트로피카나는 원래 공공수영장으로 운영되다가 문을 닫은 곳이다. 사업가 콕스는 이 건물 전체가 도심에 있는 거대한 온실 같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곳을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버섯 농장으로 변신시켰다. 이곳은 곧장 버려진 것, 쓸모없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가들의 중심지가 되어 'Blue City'라는 협력체를 구축해 다양한 작당을 이어가고 있다.
로테르담 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지속가능성 실험을 하는 컨셉 하우스 빌리지, 건물 전체가 온실화 되어있다 |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가 있어도 재정적, 정책적인 지원이 없으면 결국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로테르담은 'CityLab010'이라는 사업을 통해 지속가능성, 교육 등의 측면에서 도시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낸 최고팀들에 무려 300만 유로의 지원금을 준다. 이외에도 시는 도시의 특색있는 개발을 장려한다. 그 예로, 로테르담 동쪽에 있는 버려진 하키장은 시민들을 위한 친환경 주거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시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지속가능성 기준에 맞추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했다.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마을은 '차를 적게 사용하는 마을'이라는 색깔을 갖추게 됐다. 한편, 네덜란드는 2020년까지 모든 가정집이 탄소 중립(개인, 회사, 단체 등에서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다시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이 되도록 법제화했다.
로테르담의 도시디자인은 한 마디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으로 발전해왔다.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이를 전화위복 삼아 그 위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해수면의 상승은 플로팅 건축의 선두주자가 되게 했고, 경제가 쇠퇴해 늘어난 유휴지는 혁신가들을 위한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민간에서 아이디어가 마음껏 공유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은 지방정부의 노력이 있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역시 네덜란드의 플로팅 건축에서 배울 게 있을 것이고, 재생에너지의 사용량을 높일 수 있는 건물 설계 방식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다. 서울시의 경우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한강 물을 전기로 끌어다 쓰는 인공하천인 청계천에 들어가는 비용은 매년 78억에 이르고, 목적을 알 수 없는 세빛섬 조성은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비난받아왔다. 도시를 바꾸는 디자인은 단순히 미적 감각을 뽐내는 수단이 아니라,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고 또 실제로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방식이라야 시민들에게도 환영받을 수 있다. 철학 없는 디자인은 그저 흉물로 남을 뿐이다.
Images courtesy of Sustainable Urban Delta, places&spaces, rotterzwam, coexist, CityLab010
Photo (cc) via Peter Eijkman, The Academy of Urbanism, Jose A. / flickr.com
에디터 성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