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에 동양인 최초로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교수가 되었던 사람이 있다. 젊은 나이에 누가 보아도 성공적인 인생 가도를 달리던 그는 2005년,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KAIST)에서 사회공헌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했다. 상위 10%가 아닌 하위 90%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나눔의 디자이너’, 배상민 교수의 이야기다.
배상민 교수는 디자인 업계의 화려함 속에서 사람들의 욕망만을 부추기는 디자인 과정에 염증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임에도, 외형으로 소비자의시선을 자극하여 소비를 억지로 유발하는 ‘아름다운 쓰레기’를 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화려함을 뒤로 한 채 나눔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있는 배상민 교수는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나눔 프로젝트’와 제3세계를 대상으로 한 ‘시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배상민 교수의 사회공헌디자인 연구소 |
나눔 프로젝트에서는 그가 디자인한 제품을 통해 발생하는 모든 수익금을 저소득층 어린이의 장학금으로 쓰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으로 디자인했던 크로스 큐브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IDEA(International Design Excellence Awards)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는데(금상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동상은 애플의 아이팟이 수상했다.), 십자가 모양으로 생긴 MP3를 큐브 모양으로 조립하여 사용하는 제품으로 1만 개를 만들어 그 날 전부 판매했다.
제3세계를 위한 시드 프로젝트의 핵심은 그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도움이라도 맹목적인 도움은 그들의 문화를 해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시드 프로젝트에서 디자인된 제품들은 황토로 만든 정수기나 태양열 전등처럼 현지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제품들이다. 주변에서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의 자체 유지, 보수가 수월하다. 플레이펌프와 같은
적정기술의 실패 원인을 줄이는 접근 방법이다.
크로스 큐브 |
이미 40개가 넘는 메이저 수상경력이 있는 배상민 교수는 최근 진행된 IDEA 2015에서도 그 재능을 보여줬다. 쓰레기로 만든 쓰레기통이라는 콘셉트의 ‘T2B(Trash to Bin)’를 비롯하여 1개의 은상과 2개의 동상을 포함하여 3개의 제품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의 다른 디자인이 그러하듯, 이번 작품도 화려하거나 거창한 느낌은 없었다. T2B는 850g 정도 무게의 폐지를 압축하여 쓰레기통으로 디자인 단체도 단출한 편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멋지게 느껴지는 이유는, 굳이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제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850g의 폐지와 쓰레기통 모양의 압축 틀만으로 이를 보는 모든 사람에게 지속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
배상민 교수는 디자이너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라면, 배상민 교수는 탁월한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99.9%의 디자이너가 상위 10%를 위한 디자인을 할 때, 사람을 사랑하는 디자인을 연구하는 그의 행보에는 어느 한 걸음조차 거짓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체인지메이커의 표본과도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Images courtesy of idim.kaist.ac.kr, kaist.ac.kr
에디터 김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