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벤치에 팔걸이가 생긴 진짜 이유
일을 하다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으면 근처 놀이터에 간다. 벤치에 누워 하늘이라도 한 번 보면 힘이 나서다. 그런데 요즘 벤치엔 대부분 팔걸이가 있어 제대로 누울 수가 없다. 영화관도 아니고 팔걸이가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한 명씩 나눠 앉으라는 뜻인가 싶어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벤치가 아니라도 내 한 몸 누일 수 있는 집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그냥 지나치겠지만, 마땅히 지낼 곳이 없는 노숙자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사실 팔걸이(혹은 팔걸이 비슷한 무언가)가 있는 벤치는 점점 늘어나는 노숙자들을 내쫓기 위해 디자인됐다. 누구도 '너무' 편하게 쉬지 말라는 소리다. 팔걸이가 있는 벤치는 거리에 노숙자가 왜 이렇게 많아지게 됐는지, 그로 인한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단순히 '당신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다른 데로 가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다.
이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미 2006년 프랑스에서는 한 무리의 노숙자들이 경찰이 보는 앞에서 벤치의 팔걸이를 자르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지만, 이런 식의 공공디자인은 점점 더 그 수위가 높아졌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노숙자들이 눕지 못하도록 가게 앞 콘크리트에 압정을 뒤집어 박은 것처럼 침을 심어놓는다. 모르고 보면 거의 고문 기구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Leah Borromeo는 그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베개를 놓고 책장을 설치했다. 일명 'Space, Not Spikes' 프로젝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우리가 이 행위를 묵인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영국 내 큰 반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언론에 소개되며 이목을 끌었다.
'거리에 노숙자가 많다'는 현상에 대한 해결책이 '그럼 아예 이들이 거리에 있지 못하게 만들자'라니, 얼마나 단순하고 잔인한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국가는 이 문제가 오직 개인의 잘못이기만 한 것처럼 '공공디자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교묘하게 책임을 전가한다.
의자의 높낮이를 다르게 해 누울 수 없게 만들었다, 몬트리올 |
앉을 수는 있지만 어떤 자세로도 절대 누울 수는 없는 의자, 워싱턴 D.C |
어느 순간 도시에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의자들의 비밀. 우리는 공공이라는 이름 아래 본질을 외면하고 무의식적으로 소수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Images from The Atlantic, Upworthy
에디터 성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