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찐자' '코로나 비만' 탈출...한양도성길 걷기
한양도성길 백악구간
한양도성길 백악구간.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며 걸을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확 찐자’ ‘코로나 비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만들어낸 신조어가 많다.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서 먹기만 해 살이 ‘확’ 찐 사람이 확찐자다. 코로나 비만은 운동량이 줄며 단기간에 살이 찌는 현상이다. 느닷없이 일상에 침투한 바이러스가 화사한 봄날을 겸연쩍게 만들고 있다. ‘냉장고-식탁-거실-침대-냉장고’를 멤도느라 상춘(賞春)은 아득히 먼 얘기가 됐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 가볍게 걸어볼만한 길 하나, 그래서 소개한다. 서울 한양도성길(백악구간)이다. 꼭 이 길을 걸으라는 말이 아니다. 동네 뒷산이든, 집 앞 공터든 한갓진 곳을 찾아 가볍게 움직여 보자는 취지다. 잠깐 걷는 것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질 테니까. 물론 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수칙을 잘 지키면서 말이다.
한양도성은 1396년부터 1910년까지 514년간 도성으로서 기능을 했다. 이는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중에서 가장 오랜기간 도성의 기능을 수행한 기록이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먼저 한양도성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6년 한양을 포함한 도읍지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성을 축조한다. 이게 한양도성이다. 당시 백악산(북악산·342m), 낙타산(낙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의 능선을 연결해 쌓은 성곽의 전체 길이는 약 18.6km, 평균 높이는 5~8m다. 여러 차례 개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어쨌든 예사롭게 볼 것이 아니다. 1910년까지 514년간 도성으로서 기능을 하며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도성의 기능을 수행한 기록을 세웠다.
한양도성의 성곽을 따라 조성된 길이 한양도성길이다. 지금은 백악구간, 낙산구간, 흥인지문구간, 남산(목멱산)구간, 숭례문구간, 인왕산구간 등 여섯 구간이 서울을 에두르며 연결된다. 이 가운데 백악구간은 서울 종로구 창의문(자하문)에서 백악산 정상을 지나 혜화문(홍화문)에 이른다. 길은 경복궁 뒤에 솟은 백악산 능선을 따라 간다. 이러니 경복궁 뒷동산을 훑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총 길이는 약 4.7km로 3시간이면 완주 가능하다.
백악구간을 콕 집은 이유는 이렇다. 힘이 부칠 정도는 아니어도 등에 땀이 날 정도의 고개가 있어 산행의 재미가 있다. 또 발 아래로 서울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마지막으로 근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만날 수 있다. 걷기가 덜 지루하다는 이야기다.
창의문은 한양도성의 서소문이다. 조선시대 문루의 형태가 지금까지 남아있다. 인조반정 당시 반정군이 창의문을 거쳐 도성으로 진입했다. 김성환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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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 자국이 선명한 ‘1.21 사태 소나무’ 김성환기자 |
창의문을 시작으로 여정의 포인트를 짚어보면, 일단 창의문은 꼼꼼하게 본다. 보물(제1881호)이다. 한양도성 축조 당시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이 만들어졌다. 창의문은 북소문, 혜화문은 동소문이다. 어쨌든 축조 당시 창의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영조 때 복원했는데 이게 지금까지 오롯이 남았다. 현판도 눈여겨 볼거리다.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창의문을 거쳐 도성으로 진입했다. 그래서 반정이 성공한 후 공신들의 이름을 현판에 새겼다. 창의문은 자하문으로도 불린다. 주변 풍광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의 승경지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붙은 별칭이다.
창의문에서 백악마루까지 이어진 구간은 백악구간의 백미로 꼽힌다. “한양도성길 전체 구간 중 으뜸”으로 꼽는 이도 있다. 길은 성곽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복궁도 보이고 세종로도 시원하게 뻗었다. 여의도의 마천루도 손에 잡힐 듯 하다. 도시를 내려다보며 걷는 맛은 자연을 벗삼아 걷는 것과 다른 신선함을 선사한다. 백악산 정상이 백악마루. 여기서는 후련함이 더하다. 서울은 우리나라 인구의 약 20%가 모여산다. ‘생존경쟁’도 참 치열하다. 그러나 한 발 물러나 바라본 대도시는 참 별스럽지 않다. 긴장이 사라지고 여유도 좀 생긴다. 이 마음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사위를 돌아보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백악마루를 지나고 약 20분쯤 가면 닿는 청운대(해발 293m)도 제법 괜찮은 전망대다. 경복궁과 세종로가 딱 일직선상에 위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양도성의 북대문인 숙정문. 한국관광공사 제공 |
‘1.21 사태 소나무’는 청운대를 지나 숙정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만난다. 몸통에 빨간 페인트가 군데군데 칠해져 있다. 사연은 이렇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인 124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로 침투한다. 청와대와 가까운 종로구 청운동까지 들어와 우리 군경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인왕산과 백악산 방면으로 도주한다. 소나무에 찍힌 빨간 페인트 표시는 당시 교전으로 생긴 총탄 흔적이다. 모두 15발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향토예비군이 창설됐다. 이후 안전을 이유로 40년 가까이 폐쇄됐던 등산로가 다시 개방된 것이 2007년의 일이다.
조금 더 가면 ‘촛대’를 닮았다는 촛대바위가 나온다. 높이가 13m에 달하는데 촛대라고 하기에는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촛대바위에 쇠말뚝을 박았다. 지맥을 끊어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이른바 민족말상정책의 일환이었다. 현재는 쇠말뚝을 뽑고 이 자리에 작은 돌을 세워뒀다.
촛대바위를 지나면 숙정문이다. 숙정문은 한양도성 사대문 가운데 북쪽 대문이다. 현존하는 도성의 문 가운데 좌우 양쪽이 성벽과 연결된 것은 이 문이 유일하다. 숙정문에서 이곳에서 말바위 안내소를 거쳐 삼청동으로 내려가도 된다. 창의문에서 말바위 안내소까지 약 2시간 거리다. 여력이 남았다면 북촌(한옥마을) 거쳐 성북동 북정마을을 지나 혜화문까지 간다.
북촌한옥마을. 한국관광공사 제공 |
북촌은 잘 알려졌든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마을을 지칭하던 옛 이름이다. 예부터 고관대작들이 많이 거주해 가옥의 규모가 컸다. 현재 한옥들은 대부분은 1930년 이후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조선 말기 건축물인 윤보선가(家), 1910~20년대 지어진 한상룡가, 김성수가 등이 그나마 오래됐다. 성벽 아래 자리잡은 북정마을은 1960~70년대 서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잘 알려졌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거주하던 ‘심우장’이 있고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 김광섭도 여기 살았다.
백악구간은 군사경계지역이어서 과거에는 출입이 불편했다. 신분증도 필요했고 신청서도 작성해야 했다. 요즘은 이런 절차가 거의 다 없어졌다. 마음이 동할 때 가서 걷고 싶은 만큼 걸으면 된다. 눈 돌리면 한양도성길 말고도 걷기 좋은 길이 서울에 많다. 우리 동네 옆에도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시아투데이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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