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사랑, 절절한 삶... 문향 짙은 감성여행지.
한국관광공사 추천 10월 가볼만한 곳
꽃피는 봄은 화사했다. 녹음 짙은 여름은 치열했다. 가을은 ‘격렬의 순간’ 뒤에 오는 무장해제의 계절. 그래서 언제나 헛헛한 것일지 모를 일이다. 문학은 때로는 누군가의 헛헛함을 위로한다. 가을과 잘 어울린다. 이러니 가을에는 문학작품 속의 무대를 한번쯤 찾아가봐야 한다. 작가의 삶과 작품의 서정이 깃든 소박한 풍경이 태산 같은 위안을 건넬 테니까. 한국관광공사가 한국문학의 정취가 오롯한 감성여행지 5곳을 10월에 꼭 가보라고 권했다.
애틋한 사랑이 머무는 곳...서울 길상사
법정스님 영정과 유품이 모셔진 길상사 진영각/ 한국관광공사 제공 |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길상사가 있다. 1970년대까지 ‘서울의 3대 요정’으로 이름을 떨치던 대원각이 전신이었다. 대원각 소유주 김영한(1916~1999)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감명을 받아 대원각을 통째로 스님에게 시주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김영한과 시인 백석(1912~1996)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역시 잘 알려졌다.
길상사 극락전. 정갈한 사찰에는 ‘천재’ 시인 백석과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이 흐른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김영한은 시가 1000억원에 달하는 대원각을 시주하며 “그까짓 1000억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며 한 치의 미련을 두지 않았다.백석은 토속적인 언어의 시를 쓰며 ‘천재’로 평가되는 시인. 김영한은 우연히 만난 백석과 사랑에 빠진다. 백석 역시 김영한에게 ‘자야’라는 아호를 지어줄 정도로 그를 아꼈다. 백석의 어머니는 기생을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며 아들을 세 번이나 결혼시키지만 첫날 밤마다 백석은 김영한을 찾아왔단다. 어찌어찌해서 백석은 1939년 홀로 만주로 떠났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리며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백석은 1996년 북한에서, 김영한은 1999년 길상사 길상헌에서 눈을 감았다. 백석을 그리워한 김영한은 “내가 죽거든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유골을 길상사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단다.
길상헌 뒤편 시주길상화공덕비 옆 안내판에 김영한의 생애와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새겨졌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길상사 경내는 운치가 있다. 숲은 고상한 멋이 있다. 고목이 많고 철 따라 들꽃이 피고 진다.
강원 춘천 김유정문학촌
김유정이 태어난 실레마을에 복원된 생가./ 한국관광공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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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춘천 신동면의 김유정문학촌은 이름처럼 ‘봄·봄’ ‘동백꽃’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에 조성된 문학마을이다. 생가를 중심으로 그의 삶과 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김유정기념전시관, 다양한 멀티미디어 시설을 갖춘 김유정이야기집 등이 자리잡았다.
1939년 개통한 경춘선 신남역은 김유정역(구역사)으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
김유정은 1936년 ‘조광’에 실린 ‘오월의 산골짜기’를 통해 고향마을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문학촌 곳곳을 돌아다니면 소설 속의 구수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된 실레마을은 김유정의 여러 작품 속에서 모티브가 됐다. 금병산 등산로와 마을을 에두르는 ‘실레이야기길’에는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 같은 작품 속 장면의 이름을 딴 재미있는 장소들이 숨어있다.
충북 옥천 정지용문학관
‘향수’ 시비가 세워진 정지용 생가/한국관광공사 제공 |
충북 옥천은 아름다운 언어로 기억되는 시인 정지용(1902~1950)의 고향이다.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으로 시작되는, 가수 이동원과 성악가 박인수가 노래로 불러 익숙한 ‘향수’의 시인, 그가 태어난 곳이 이 땅이다. 정지용은 1902년 옥천읍 하계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 중이던 22세에 고향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을 담아 ‘향수’를 썼다. 한국전쟁 당시 홀연히 사라진 탓에 그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았다.
옥천읍(구읍)에 정지용의 생가가 복원돼 있다. 그 옆에 문학관도 있다. 시 속에 등장하는 풍경은 시간에 밀려 변해버렸지만 그 정서만은 여전히 이곳을 맴돈다. 복원된 생가는 단출하지만 이곳에 흐르는 아름다운 시(詩)와 정서가 주는 평온함은 대궐만큼 크다.
전남 순천 선암사·송광사·순천만
시인 정호승이 눈물이 날 때 가서 실컷 울라고 했던 선암사 해우소/ 한국관광공사 제공 |
전남 순천은 여행지로 이름난 지역이다. 문학의 향기가 짙은 곳도 많다. 한 편의 시와 소설을 벗 삼으면 여정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인다.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집필했던 송광사 불일암/ 한국관광공사 제공 |
조계산의 천년고찰 선암사와 송광사가 그렇다. 선암사는 시인 정호승의 시에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 ‘선암사’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고 했다. 선암사의 해우소에서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줄 것이라며 ‘실컷 울어라’고 했다. 송광사의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1975년부터 1992년까지 기거하며 글을 쓴 곳으로 잘 알려졌다. 특히 1976년 그의 대표 저서인 ‘무소유’가 나오며 이곳은 ‘무소유의 산실’로 알려졌다. 경내에서 불일암에 이르는 길은 ‘무소유길’로 이름 붙었다. 30분 거리. 편백과 대나무가 울창한 숲길이 청량하다. 선암사와 송광사는 굴목재를 넘어 오갈 수 있다. 약 3시간 거리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에워싼 순천만(灣)에도 문향이 짙다. 가을에는 바람에 갈대 쓸리는 소리, 낮게 우는 철새의 울음이 서정적이다. 소설가 김승옥(1941~)은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무진기행’을 썼다. 1964년 발표한 ‘무진기행’은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소설로 평가된다. 작품 속 ‘무진’은 쓸쓸한 이상향이고 동경이다. 가상의 지명이지만 김승옥은 “무진이 순천만에 연한 대대포”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순천만 갯벌은 풍경이 예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넓게 펼쳐진 갯벌, 물때에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완만한 곡선의 물길, 바다로 툭 튀어나온 야트막한 산과 해안선이 잘 어우러졌다. 순천만습지에서 동천을 따라 도보 20분 거리의 순천문학관에는 그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김승옥관’이 있다.
경북 안동 권정생동화나라
‘몽실언니’ 조형물이 세워진 권정생동화나라/ 한국관광공사 제공 |
경북 안동 일직면에 ‘권정생동화나라’가 있다. 권정생(1937~2007)은 ‘강아지 똥’ ‘몽실 언니’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아이들의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 아동문학가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5남 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는 청소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가져온 헌책을 읽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광복 이듬해 귀국해서 한국전쟁을 겪었고 나무 장사와 고구마 장사 등을 하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갔다. 청년 시절 결핵을 앓았고 한쪽 콩팥과 방광을 들어냈다. 가난, 병마와 함께한 세월은 글을 쓰는 자양분이 됐다. 일직교회의 종지기로 문간방에 머무르며 죽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 한 권 남기려고 했다. 1969년에 나온 ‘강아지 똥’은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다. 시골 어느 돌담 아래에 홀로 떨어진 강아지똥이 빗물을 받아 자신의 몸을 잘게 부수어 노란 민들레꽃을 피운다는 내용이다. 강아지똥의 희생과 민들레꽃의 포용을 통해 세상의 모든 물건은 쓸모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작품들/ 한국관광공사 제공 |
권정생동화나라는 그가 머무르며 집필 활동을 했던 폐교를 문학관으로 꾸민 공간이다. 전쟁의 참상 속에 아이들의 삶과 인간미를 그린 ‘몽실 언니’, 산불 속 까투리의 모성애를 담은 ‘엄마 까투리’ 등 유작을 비롯해 그의 삶과 문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인근 조탑마을에는 선생이 종지기로 일한 일직교회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간 작은 집이 있다.
아시아투데이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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