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긴 기다림 끝, 마침내 열린 '숲속 여왕의 화원'
조용준의 여행만리
입산금지 풀린 날 오대산 신록의 품에 들다~
강원도 오대산이 겨우내 휴식기를 끝내고 지난 주말부터 산행객을 맞기 시작했다. 긴 기다림끝에 만난 오대산은 숲길 옆으로 노거수와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깔려 천상의 화원을 연상케했다. |
신록과 녹음으로 물들어가는 오대산 등산로 |
오대산 비로봉에서 바라본 백두대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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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입구에 있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선재길 섶다리 |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 기자] 신록과 녹음이 어우러진 산으로 갑니다. 고요한 산은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만 나뭇잎을 흔들어 놓습니다. 강원도 오대산입니다. 막 봄기운이 피어날 때인 지난 3월 이곳을 찾았더랬습니다. 하지만 산림보호와 산불조심기간으로 5월15일까지 입산금지란 말에 무겁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이른 봄 오대산의 맑은 기운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요. 이후 두 달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입산금지가 풀린 지난 주말 차를 몰았습니다. 오대산은 거목숲과 신록이 멋진 곳입니다. 두 달여 동안 산은 무르익은 봄기운으로 싱그러웠습니다. 나뭇가지마다 연두빛 물감을 뿌린 듯 황홀하고 암반 따라 옥빛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계곡의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으로 오르는 숲길은 천상의 화원을 연상케 하듯 온갖 야생화들이 활짝 피어 산행객들을 반기고 있었습니다. 3월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들입니다. 걷거나 등산을 하기 좋은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천년고찰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에서는 연초록 색감이 얼마나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지를 저절로 느끼게 해줍니다. 작고 여린 것들의 보드라운 새순에서 빚어내는 봄빛은 일품입니다. 이것이 지금 오대산으로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대산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 자장율사가 수도한 중국 오대산에서 유래했다고 '삼국유사'는 적고 있다. 전국 육상공원 중 지리산과 설악산에 이어 세 번째로 넓다. 오대산은 비로봉(1,563.4m)을 주봉으로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1.9m), 동대산(1,433.5m) 다섯 봉우리가 한 줄기로 이어져 있다. 또 서쪽으로는 계방산(1,577m)이 동쪽 진고개 너머 노인봉(1,338m) 아래로 천하 절경 소금강이 자리하고 있다.
월정사지구, 소금강지구, 계방산지구의 세 개 지구로 나뉘는 오대산국립공원은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산세가 전혀 다르다. 월정사계곡 중심으로 하는 오대산은 부드럽지만 소금강은 1970년 명승지 제1호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힘차고 화려하다.
이번 여정은 신록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월정사지구다. 오대산 산행은 대개 비로봉을 목표로 한다. 가벼운 산행 목적이라면 상원사~적멸보궁~비로봉을 잇는 3.5km 산길을 왕복하는 것이 적당하다(왕복 3시간30여분). 산행다운 산행을 원한다면 비로봉에서 상왕봉과 두로령을 거쳐 공원관리도로(구 446번 지방도로)를 따라 상원사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약 14km. 비로봉과 동대산을 잇는 산행은 오대산 최장의 당일 코스로 꼽힌다.
상원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중대 사자암을 거쳐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산길 주변의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들은 한 그루 한 그루 거목이 아닌 게 없을 만큼 온통 노거수 일색이다. 살포시 연둣빛 이파리를 매달고 반짝이는 숲길에서 산새와 바람과 물소리가 반겨준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오르는 길로 접어들면 1.4㎞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해발 1,190m, 40여 분이 걸리는 길이다. 그러나 실제보다 훨씬 더 멀게 느껴진다.
적멸보궁에 오르기 전 중대 사자암이 먼저 반긴다. 적멸보궁은 선덕여왕 12년(643)에 지어졌고 중대 사자암은 2년 뒤 월정사와 함께 창건됐다. 가쁜 숨을 가다듬고 다시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여기서부터는 부드러운 흙길과 돌계단이 이어지고 이따금 나무 의자가 놓여 있어 깊은 산골이 아니라 동네 뒷산 약수터에 가는 걸음처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상원사 적멸보궁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모신 곳이다. 부처님 사리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선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적멸보궁에서 오대산 주봉인 비로봉까지는 1.1km다. 오르막의 연속이다. 오르고 또 올라도 오대산은 쉬이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1.1km가 이렇게 길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허벅지가 팍팍해지고 종아리가 터질 듯 아파올 때 쯤 비로봉이 나타났다. 정상은 너른 평원과도 같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조망은 압권이다. 남북으로 뻗어나가는 장쾌한 백두대간의 물결이 눈앞에서 굽이쳐 흐른다.
설악산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가칠봉과 검봉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그 반대쪽으론 선자령의 풍차가 힘차게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강릉시내와 동해바다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알록달록 다양한 복장을 한 산행객과 스님 여러명이 다리쉼을 하고 있다. "전날까지 미세먼지로 답답했는데 오늘은 미세먼지 없이 시야가 참 좋다."며 스님이 동료에게 말한다. 하지만 한 무리의 여행객들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시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정상에 올랐다는것에 감사하고 즐거워했다.
산릉 군데군데 장식하고 있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과 기이한 형상의 노거수들이 오대산을 아름답고 고고하게 가꾸어 주고 있다.
비로봉 한편에는 수줍은 듯 활짝 피어난 야생화들이 옹기종기 모여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다. 산 아래 동네는 여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만 높은 산은 아직 봄날의 기운이 가득했다. 숲속의 여왕으로 불리는 얼레지를 비롯해 현호색, 숲개별꽃과 이름모를 다양한 꽃들이 군락을 이뤄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3월에 찾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에 그만 넋을 뺏기고 말았다. 야생화 군락 한쪽에 앉아 바람에 살랑이는 꽃을 한없이 바라봤다.
오대산 산행이 부담스럽다면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잇는 9km의 선재길을 걸어도 된다. 이 길은 사색과 치유의 길이기도 하다. 길 양옆으로 쭉쭉 뻗어 오른 월정사 전나무숲은 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준다. 길은 조선 세조 임금이 상원사로 행차했던 길이요, 도반들과 나그네, 화전민들이 다니던 애환의 길이었다. 전 구간에 빽빽하게 나무가 서 있고 계곡이 길과 함께 흘러간다. 숲길을 걷다 중간 중간 만나는 섶다리와 돌다리, 출렁다리 등이 여정에 포인트가 된다. 세 시간 남짓한 길은 상원사를 만나 마무리된다.
오대산=글 사진 조용준 기자 jun21@ 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나와 국도 6호선를 타고 가다 월정사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옛 446번 지방도로 따라가면 된다. 주차요금을 내면 상원사앞까지 차를 가지고 갈 수 있다. 상원사에서 주차하고 비로봉까지 왕복하는데 3시간30분이면 된다. 선재길을 걷기 위해선 매표소부근에 차를 두고 가는게 좋다. 숲길을 걷고 나서는 상원사에서 진부터미널로 나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해 월정사나 매표소로 가면 된다.
△먹거리=월정사 부근에 식당촌이 몰려있다. 음식점들은 대개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황태와 더덕구이, 버섯전골 등 토속음식을 내놓는데 맛은 비슷하다. 월정사 지역을 벗어나면 곤드레나물밥이 맛난 진부 성주식당과 메밀 싹 육회와 메밀묵, 막국수가 유명한 봉평면 미가연(사진), 두일막국수 등도 추천할만하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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