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 철계단 오금이 저려도 어찌 돌아보지 않으랴, 이 가을의 절정
조용준의 여행만리
완주 대둔산 단풍여정-울퉁불퉁 근육질 암봉사이 만산홍엽
완주 대둔산이 단풍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삼선계단을 오르다 뒤돌아 보면 구름다리와 암봉 사이로 선혈이 새어나온 듯 단풍 색감은 농염하기 이를데 없다. |
완주 9경 중 8경인 비비정에 둥근달이 떠올랐다. |
완주의 가을아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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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등계곡의 단풍 |
만경강의 일몰 |
울퉁불퉁 근육질 암봉 사이 나뭇가지마다 꽃이 피었습니다. 빨강, 노랑, 분홍 등 오색꽃이 화려한 춤사위를 펼쳐 보이고 있습니다. 하늘아래 마천대도 낙조대도 칠성봉도 울긋불긋 단풍꽃이 피워 한 폭의 그림을 뚝딱 그려냅니다. 아찔한 금강구름다리 위에서도, 수직의 벽을 타고 오르는 철계단에서도 산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단풍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호남의 금강산(金剛山)으로 불리는 명산중에서도 으뜸으로 모자람이 없습니다. 지난 주말 절정에 이른 전북 완주군 대둔산(大芚山, 해발 878m)의 가을풍경 이야기입니다. 항상 제철보다 이르게 여행지를 다녀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절정에 이른 단풍과 꽃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할 때나 봄꽃이 피기 시작한 시점에 다녀와서 기사를 써야 독자들이 그걸 보고 단풍과 봄꽃을 보고 올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올해만큼은 절정의 단풍을 제가 보고 말았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입니다. 거리두기의 단계가 완화 되었다고 하지만 단풍 명소에 행락객이 몰리면 감염병 확산의 위험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절정에 이른 화려한 단풍을 보고 지면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합니다. 지금 보시는 대둔산의 가을은 이번주에는 보기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잘 기억하셨다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내년 가을에 꼭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대둔산은 완주군과 충남 논산시ㆍ금산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해발 878m로 우뚝 솟은 최고봉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산자락을 가득 메운 천 여 개의 암봉들이 죽순처럼 뾰족하다. 그 모양새가 마치 산수화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신비롭다. 원효대사는 이 풍경을 가리켜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격찬했다고 전해진다.
논산과 금산도 나눠 갖고 있긴 하지만 대둔산은 완주 땅에서 보아야 제맛이다. 완주 쪽에서 대둔산과 처음 맞닥뜨린다면, 그것도 단풍이 물드는 이 가을이라면 누구든 깜짝 놀라게 된다. 먼발치에서부터 험준한 산세의 암봉을 두르고 있는 산의 풍광은 범상한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을 올라서도 웅장하되 아기자기한 느낌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산행의 들머리는 대둔산 집단시설지구다. 3곳의 등산로와 은하수길 등 총 4개의 코스가 있다. 아무리 긴 코스를 잡아봐야 2시간30분 남짓이면 정상인 마천대에 닿는다. 어느 쪽에서 오르든 단풍나무 이파리들이 흩뿌린 선혈이 암봉마다 낭자한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이 중 케이블카매표소에서 협곡(금강계곡)을 지나 동심바위, 금강구름다리, 삼선계단을 거쳐 마천대에 오르는길이 대표적이다. 하산은 낙조대와 칠성봉, 용문굴을 돌아 다시 동심바위로 내려선다. 초입부터 오르막이 부담스럽다면 케이블카(길이 927m)를 타고 7부 능선까지 올라 산행을 시작하는것도 방법이다. 단풍철이면 케이블카를 타려는 사람들의 줄이 끝없이 이어지기도 한다.
매표소를 지나 협곡으로 들자 가파른 돌계단이 나온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의 전승지였던 금강계곡은 소나무, 상수리나무, 개비자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가 화려한 빛깔로 중무장 한 채 산행객을 맞는다.
굽이굽이 가파른 등반로를 1시간쯤 오르자 단풍숲에 둘러싸여 암봉에 걸터앉은 바위가 눈길을 잡는다. 동심바위다. 거대한 바위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비스듬히 아슬아슬한 모양새로 1000년을 넘게 버텼다고 한다.
마지막 비탈을 차고 오르면 케이블카 종점이다. 여기서 철계단에 올라 암벽 틈새를 비집고 나가자 시야가 툭 터진다. 대둔산의 명물 금강구름다리 위로 삼선계단, 마천대가 아련하다. 거대한 암봉을 품은 산자락은 단풍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마천대 오르는 길은 만만찮다. 정상까지는 700m로 짧은 편이지만 급하게 치솟은 오르막이다. 5분을 오르면 금강구름다리다. 튼튼해 보이는 다리지만 막상 걸어보면 고도감이 만만찮다. 1m 폭에 50m 길이, 80m 높이다. 가운데로 갈수록 다리가 기우뚱거린다.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기우는 통에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즐거워한다. 다리 가운데에 서면 발아래 풍광이 아찔하다. 바람에 흔들거리기라도 하면 오금이 저린다.
다리 건너자 약수정휴게소가 반갑다. 약차 한 잔을 마시며 잠시 발품을 쉬어 갈 수 있다. 여기서 삼선계단은 지척이다. 삼선계단은 36m짜리 '수직 철사다리'다. 폭이 좁고 경사(51도)가 심해 매달려 오른다.
계단은 정상을 향할 때만 올라가게 돼 있는 일방통행길이다. 내려올 때는 다른 등산로를 이용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왜 그렇게 등산로를 조성했는지 짐작이 간다. 바위 벼랑을 이은 철계단 오르막인데 사다리처럼 가파르고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라 심장이 약한 등산객들은 아예 우회길을 택한다.
오른쪽을 보면 대둔산의 암봉들이 덮칠 듯한 기세로 내려다본다. 울퉁불퉁한 근육처럼 튀어나온 바위들의 위세가 대단하다. 무서워봤자 하고 들어선 등산객들도 동아줄처럼 흔들리는 철계단에 정신이 아찔하다.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서면 묘한 전율이 몸을 휘감으며 짜릿한 쾌감이 온다.
대둔산의 단풍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것은 치솟은 암봉들이다. 거대한 직벽의 암봉에 선혈이 새어 나온 듯 불붙은 단풍의 색감은 농염하기 이를 데 없다.
삼선계단을 뒤로 하고 정상으로 향하는 길도 가파르다. 돌계단에 코를 박고 20여분 오른다. 장단지가 뻐근해질 즈음 만나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향하면 마천대다. '하늘을 대하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정상에는 대둔산 개척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마천대에 서면 시야에 거칠 게 없다. 모든 산봉우리를 눈 아래 둔다. 마천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잔암봉들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숲은 구름처럼 보인다. 멀리 눈을 들면 파도치는 연봉 사이로 덕유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마이산, 지리산까지 눈 안에 든다.
대부분 사람들은 여기서 올라왔던 길을 되밟아 케이블카로 내려간다. 가을을 좀 더 즐기려는 사람들은 능선을 밟아 낙조대와 용문굴, 칠성봉으로 해서 하산을 한다.
완주는 대둔산의 화려한 단풍뿐만 아니라 차분하고 적막한 풍경이 어울리는 곳도 여럿 있다. 화암사와 천호성지, 되재성당 등이다. 화암사는 안도현 시인의 시 '화암사 내사랑'으로 그 진면목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시인은 '말의 붓'을 들고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로 화암사를 표현했다. 화암사는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유명한데 처마를 지탱하기 위해 하앙이라는 부재를 받쳐 놓은 독특한 건축양식을 갖고 있다.
천호성지는 150여년 전 기해박해 이후부터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살다가 순교한 성인들의 피를 담은 땅이다. 성지 일대는 솔숲과 편백숲이 어우러져 맑고 순한 기운이 가득하다. 천호성지에서 차로 15분 남짓 떨어진 화산면 승치리에 서울의 약현성당에 이어 우리 땅에 두 번째로 완공된 본당이자 최초의 한옥성당인 되재성당이 있다. 역시 고요 속에 저절로 축복이 내려질 것 같은 그윽한 곳이다.
여행메모
가는길=대둔산 산행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추부나들목으로 나와 17번 국도를 따라 배티재를 넘으면 된다. 대둔산을 들렀다가 화암사와 천호성지를 다 둘러보려면 완주 쪽 대둔산 입구에서 17번 국도로 운주면 쪽으로 따라가다 화암사를 들른 뒤 화산면소재지를 지나면 우월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천호성지와 되재성당으로 잇는 순서가 좋다.
볼거리=방탄소년단(BTS)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한 오성한옥마을을 비롯해 비비정, 만경강, 대아수목원(사진), 상관공기마을 편백숲, 산속등대, 대아저수지, 삼례문화예술촌 등이 있다.
먹거리=양면 화심리 일대의 두부가 첫손으로 꼽힌다. 화심순두부가 대표적으로 유명하다. 대둔산 부근에는 산채비빔밥과 능이버섯전골(사진)을 내놓는 집들이 여럿 있지만 대둔산골이 이름났다.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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