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값 달라고 하면 욕하는데, 공무원 단속은 나오고"···눈물 짓는 사장님
이르면 연말부터 마트·슈퍼서 비닐봉투 사용금지
제과점에서는 무상제공에서 유상판매로 전환
상인들 "막무가내 손님…인식개선·환경조성 먼저"
"비닐봉투=무료라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봉투값을 달라고 하면, 욕설을 퍼붓고 물건이나 돈을 던지는 손님이 많아요. 봉투값 몇십원 받자고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동네 슈퍼인데 인심만 잃고 있어요. 이제 유상 제공도 안되고 비닐봉투 사용이 금지되는데, 막무가내로 달라고 하는 손님들이 많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시민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대형 프랜차이즈는 일찌감치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우리처럼 영세한 제과점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봉투 유상 제공이 시작되면 손님들의 불편함은 커질 수밖에 없는데 가뜩이나 장사도 어려운데 손님이 줄지는 않을까 걱정이에요. 잔금 처리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상인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시민 인식개선 강화를 위한 홍보가 먼저에요. 전반적인 환경 조성 구축에 힘 써줬으면 좋겠습니다."
"단골손님이 물건을 봉투에 담아 나가는 길에 공무원에게 잡혀 영수증 검사를 받았어요. 시민 인식 개선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속만 나오네요. 봉투값을 달라고 하니 10만원짜리 수표, 5만원짜리 현금을 내미는 손님도 있네요. 봉투 값 때문이라도 늘 현금을 넉넉하게 준비해놓고 있어야 할 형편이에요."
마트와 슈퍼마켓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이 전면금지되고, 제과점에서는 유상 판매로 전환될 예정이어서 상인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손님들의 불편과 불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형업체와는 달리 동네를 상대로 영업을 하는 상인들은 비닐봉투 사용금지·유상 판매로 인심과 손님을 잃을까 걱정하고 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르면 연말부터 대형마트와 165㎡ 이상 슈퍼마켓에서 비닐봉투 제공이 전면 금지된다. 지금까지는 이들 매장에서 비닐봉투를 유상으로 제공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아예 사용할 수 없다. 마트 등 대규모 점포 2000여곳과 슈퍼마켓 1만1000여곳이 대상이다. 제과점에는 비닐봉투 무상 제공이 금지, 유상 판매로 전환된다. 앞서 환경부는 지난 8월 이 같은 내용의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입법예고를 마친 환경부는 이르면 연말 개정안이 시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마트는 이미 2010년부터 자율협약을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종량제 봉투로 대체해 영향이 거의 없지만, 문제는 영세 규모의 슈퍼마켓과 제과점 상인들이다.
한 슈퍼마켓 사장은 "비닐봉투 사용금지를 대비해 10월부터 우리 가게는 비닐봉투를 없애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일일이 설명하기도 벅차고 일부 손님은 설명으로 모자라 설득까지 해야 해 힘이 든다"면서 "다시 봉투를 꺼낼까 고민인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민들에게 협조와 인식개선 등을 당부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 사장은 "최근에는 엄마 심부름을 온 아이가 봉투값이 없어 두손에 물건을 들고 가다 다 흘려 어쩔 수 없이 내주기도 했다"면서 "특히 연세가 지긋한 분들은 봉투에 안 담아주면 들고 못 간다 고집을 부리기 일쑤"라고 혀를 찼다.
또 다른 슈퍼마켓 사장은 "지금도 봉투값 20원을 달라고 하면 물건을 던지는 손님도, 기분이 나쁘다면서 그대로 두고가는 손님이 많은데 이 같은 현실에서 아예 봉투없이 장사를 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냐"면서 "손님을 차별할 수는 없지만 주부나 아이 손님은 그래도 괜찮은데 노인이나 아저씨 등의 손님은 아예 말이 통하지 않고 화를 낸다"고 전했다.
이어 이 사장은 "젊은 분들은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설명이 잘되지만 노인들은 평생 공짜 봉지를 받아와서 그냥 막무가내로 버틴다"면서 "아예 봉투 사용이 금지되고 난 후에 그런 손님을 받게 되면 혼란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상인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전반적인 환경조성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제과점들도 비닐봉투 유상 판매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 제과점 사장은 "당장 잔금 처리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물론 진상 고객들이 많은 점도 장사에 방해가 될 것"이라며 "강제성만 부여하기 보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게 개인 사업자들의 피해가 없도록 홍보 전반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단속과 과태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비닐봉투 유상제공에 대한 단속이 지금 이뤄지고 있고, 나중에는 사용금지에 대한 단속도 이뤄져 과태료 등이 부과되는데 걱정이 크다"면서 " 막무가내 손님을 마주한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되서 과태료 등을 부과 받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비닐봉투 사용금지 사실을 시민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알린 뒤 단속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제10조1항에 따르면 일반 음식점영업을 포함한 식품 접객업 사업자가 일회용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면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비닐 봉투 사용 제재는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인식도 바뀌어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인 사업자들의 피해가 없도록 홍보와 인식개선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