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로 만들자" 그들은 어떻게 악마가 되었나
악마들의 놀이터 'n번방'①
소라넷 → AVSNOOP → 텔레그램 'n번방'
미성년자 등 여성 협박해 잔혹한 성착취물 제작 판매
'평범한 관전자'들 돈 내고 'n번방' 우르르 몰려 다녀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하라" 靑 청원 200만 넘어
[편집자주]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여성 인권 유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갓갓','왓치맨','박사' 등 닉네임을 사용하는 이들은 미성년자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들을 협박, 속칭 '노예'라 부르며 성착취물을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남성들은 여성의 비명을 즐겼습니다. 이들의 범행은 기사에 반영할 수 없는 정도입니다. 당시 상황은 '2차 피해'를 우려해 '영혼이 파괴되었다.', '죽어갔다.' 식의 표현으로 갈음했습니다. 소위 'n번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피해 여성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A씨가 텔레그램에서 유료로 운영한 이른바 '박사방'이라는 음란 채널에는 미성년자 등 여러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 영상과 사진이 다수 올려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텔레그램 'n번방' 그 방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메신저 텔레그램을 이용해 미성년자 등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 동영상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판매한 일당이 지난 16일 경찰에 붙잡히면서, 이른바 'n번방' 운영자는 물론 관전자 등 관련자들을 모두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n번방'은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의미한다. 각 대화방은 1번방, 2번방, 3번방 등 번호가 있고, 통칭해 'n번방'이라 부른다. 이 방에는 각종 협박을 당해 성착취물 영상 촬영에 나설 수밖에 없던 피해 여성들의 영상이 있고, 남성들은 이 영상을 돈을 주고 구매했다. 일부는 더 고액을 내고 관람 또는 실시간으로 피해 여성을 능욕했다.
지난 월요일(16일) 검거된 '박사'는 이 'n번방' 운영자 중 1명으로 '박사'란 호칭은 자신이 텔레그램에서 이용한 별명이다.
이 때문에 'n번방'은 '박사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사'는 수많은 'n번방' 운영자 중 1명에 불과하다. 경찰은 현재 또 다른 'n번방' 운영자들은 물론, 이 방에 참가한 남성들을 추적하고 있다.
결국 '박사'의 검거는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 제2의 박사, 제3의 박사,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을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악마들과 '평범한 관전자'들의 만남…끊을 수 없는 연결고리
'박사'에 앞서 '와치맨'(watchmen)이 있었다. 그는 지난 2017년 폐쇄된 '에이브이스누프'(AVSNOOP)의 이름을 딴 블로그를 개설했다.
그리고 그 블로그에서 텔레그램 비밀방을 홍보했다. 그는 이곳에서 문화상품권 등을 받고 'n번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링크를 뿌렸다. 그렇게 돈을 내고 입장한 그 방에는 텔레그램 닉네임 '갓갓'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갓갓'의 범행 수법도 협박을 통해 성착취물을 만든 '박사'와 같다. 그는 주로 트위터에 자신의 노출 사진을 올리는 여성 청소년에게 접근, 경찰을 사칭해 음란물 유포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게 될 수 있다며 개인정보를 알아냈다. 이어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더 높은 수위의 성착취물 제작을 강요했다.
피해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만든 '갓갓'은 비밀대화방 1번 방을 만들고 링크를 뿌렸다. 방이 만들어질 때 '평범한 관전자'들은 미성년자들의 성착취물이 있는 그 방을 쫓아다녔다. 이어 2번 방, 3번 방 등 'n번방'이 만들어지고 해당 방을 복사한 방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관전자들은 쉴 새 없이 그 방을 따라가며 피해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관람했다.
음란물 신고 대비한 '대피소'방 만들고 밤낮으로 'n번방' 운영
음란물 신고도 소용없었다. 이들은 신고 횟수 누적으로 방이 '폭파'(삭제) 되어도 폭파를 염두에 두고 미리 개설한 속칭 '대피소' 방에 링크를 다시 올렸다. 이어 다시 1번방, 2번방, 3번방 등의 식으로 방들이 새로 만들어졌다. 'n번방'은 그렇게 밤낮으로 끊임없이 돌아갔다. 피해 여성들은 그 방 안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여성들은 죽어갔다.
'n번방'에 올라오는 영상 일부는 아동을 강간하는 영상물 같은 불법촬영물로 알려졌다. 방 규칙도 있다. 자신이 소유한 음란물을 올리지 않거나 성희롱 대화에 참여하지 않으면 강제퇴장을 당했다.
참가자 본인이 직접 찍은 불법촬영물은 'n번방'안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이는 운영자들이 해당 영상으로 또 다른 'n번방'을 만들어 일종의 '새로운 영상'을 판매하는 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중 '갓갓'의 'n번방'은 여성들을 협박해 만든 성착취물 영상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들을 속칭 '노예'로 부르며 각종 협박을 통해 영상을 만들고, 이를 관전자들에게 팔아 수익을 챙겼다. 'n번방'에서 여성들 특히 미성년자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소라넷 → AVSNOOP → 텔레그램 'n번방', 계속되는 여성들의 고통
'왓치맨'이 'n번방' 홍보 채널로 이용한 블로그 이름의 영감을 받은 제2의 '소라넷'이라 불린 AVSNOOP은 AV(Adult Video·성인 비디오)와 SNOOP(염탐꾼)의 합성어다. 회원 상호 간 음란물과 성 경험담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라는 뜻이다.
'AVSNOOP'은 2016년 '소라넷'이 폐쇄하자 만들어진 사이트다. 소라넷은 1999년 '소라의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해 2003년 사이트를 확대 개편, 한때 회원이 1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음란물 포털로 자리 잡았다가 2016년 폐쇄됐다.
2017년 폐쇄된 'AVSNOOP' 역시 '소라넷'과 마찬가지로 음란물, 유흥업소 정보, 성인방송 등 카테고리별로 수많은 음란물이 게재돼 있었다.
운영자 안 모 씨는 처음에는 사이트를 무료로 운영하다가, 회원이 늘자 2014년 12월 유료로 전환했다. 그는 회원들이 상품권이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결제를 하면 등급(총 9개 등급)을 높여주고, 더 많은 음란물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결제하지 않더라도 음란물을 올리면 포인트 적립 수치에 따라 등급을 상향시켰다. 이 때문에 회원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음란물을 올렸다.
그 결과 안 씨의 사이트에는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포함해 모두 46만여 건의 음란물이 게시됐다. 사이트 방문자는 점점 늘어 나중에는 일 방문자만 12만여 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회원 수 100만 명이 훌쩍 넘었다.
음란사이트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결국 재판에 넘겨진 안 씨는 처벌을 받았다. 법원은 "피고인은 3년여 동안 아동음란물을 비롯한 수많은 음란물이 유포되도록 해 여성과 아동을 성적으로 왜곡, 사회에 미친 해악이 크고 범행으로 얻은 경제적 이익도 상당해 죄질이 나쁘다"고 판시했다.
이어 "다만,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별다른 전과가 없으며 피고인이 직접 음란물을 게시한 것은 아닌 점, 사이트 검색기능에 금지어를 설정하는 등 아동음란물이 올라오는 것을 막고자 나름 노력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사이트를 운영한 안 씨는 법원으로부터 범죄수익 3억4천만원의 추징과 함께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만일 소라넷, AVSNOOP 운영자 등이 강한 처벌을 받았다면 지금의 텔레그램 'n번방'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이른바 'n번방 처벌법'을 만들어야 하는 여론이 터져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n번방' 회원들이 운영자에게 불법촬영물 등 성착취물을 올리면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것, 소라넷에서 AVSNOOP으로 이어 다시 텔레그램으로 이어지는 상황, 가상화폐를 받아 성착취물을 판매하는 것 등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디지털 성폭력 예방 캠페인.사진=ShareNcare - 쉐어앤케어 |
고액 아르바이트로 유인…'n번방' 운영자 '박사'의 등장
'박사'는 주로 고액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미성년자를 유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모델을 해보지 않겠느냐', '데이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이어 채용 계약서를 써야 한다며 피해 여성의 신상정보를 확보했다.
처음에는 수위가 높지 않은 사진을 요구했다. 그러다 수위가 높아졌고, 이를 거부하면 협박이 시작됐다. 박사는 성착취물을 유포할 때 항상 피해 여성들의 신상을 함께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년월일, 집 주소, 전화번호를 포함했다.
피해 여성들 처지에서는 자신으로 인해 가족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두려움, 이 상황에 내가 놓여있다는 자괴감, 남성들에 둘러싸여 성노리개 취급을 받는다는 모멸감 등으로 죽어갔다. 극심한 고통이었다.
그러나 박사의 범행은 더 잔혹해져 갔다. 일부 피해 여성들은 '박사' 협박에 신체 일부에 칼로 '노예', '박사' 등을 새겼다. 그렇게 'n번방'에서 여성들의 영혼은 파괴되었다.
가학적인 성관계, 변태적 행위, 고문 등을 요구하고 이를 영상으로 받아 챙겼다. 해당 영상을 가족과 지인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지속해서 영상을 받았다.
그러면서 '시키는 일을 다 수행한 노예들 영상'은 올리지 않는다며, 피해자에게 '도망가면 신상이 공개되는 것'이라는 공포심을 갖도록 종용했다. 그렇게 영상과 사진을 확보한 '박사'는 방 입장권을 판매하거나, 영상과 사진을 판매했다.
남성들은 100만원 이상 하는 방입장권을 구매하고, 그 방에 들어가 미성년자들의 나체를 관람했다. 입장료는 경찰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비트코인과 암호화폐로만 받았다. '박사'는 입장료를 받는 방 외에도 '맛보기방', '게시판' 등을 운영하며 홍보에 나섰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하라" 청와대 청원 200만…들끓는 분노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음란물 제작·배포 등)로 청구된 '박사' A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원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을 포함한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강요해 음란물을 제작하고 이를 유포해 막대한 이득을 취득했으며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고통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조장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엄중하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어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고지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다"며 "범죄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도 있다"고 설명했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20대 남성 A씨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뒤 법정에서 나오고 있다. A씨가 텔레그램에서 유료로 운영한 이른바 '박사방'이라는 음란 채널에는 미성년자 등 여러 여성을 상대로 한 성 착취 영상과 사진이 다수 올려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어린 학생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워달라"며 A씨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은 23일 오전 1시 기준 210만1708명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지옥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를, 포토라인에 세워주세요. 절대로 모자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어 "이게 악마가 아니면 뭐가 악마인가요?? 반드시 포토라인에 세워야 합니다. 맨 얼굴 그대로!! 타인의 수치심을 가벼이 여기는자에게 인권이란 단어는 사치입니다"라고 강조했다.
'n번방' 참가자들 전원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원도 23일 오전 1시30분 기준 144만2706명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텔레그램 방에 있었던 가입자 전원 모두가 성범죄자입니다. 어린 여아들을 상대로 한 그 잔혹한 성범죄의 현장을 보며 방관은 것은 물론이고 그런 범죄 콘텐츠를 보며 흥분하고, 동조하고, 나도 범죄를 저지르고 싶다며 설레어 한 그 역겨운 가입자 모두가 성범죄자입니다. 잠재적 성범죄자가 아닌 그냥 성범죄자들입니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경찰은 A씨 신상을 공개할지 검토 중이다.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는 경찰 내부위원 3명, 외부위원 4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되며 다수결로 안건을 의결한다. 신상 공개를 결정한다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피의자 신상 공개가 이뤄진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