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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에 맞서다. - 툴루즈 로트렉展

고대했던 툴루즈 로트렉 전시에 드디어 가게 되었다.


툴루즈 로트렉 전시의 도슨트는 정우철 도슨트로 저번 베르나르 뷔페 전시에서 너무 감명 깊게 들었기에 이번 전시도 듣기 위해 도슨트 시간에 맞춰갔다. 필자가 갔던 날은 1월 17일 금요일, 전시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금요일이라서 그런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으니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도슨트 분께서도 오늘 주말 아니죠?라고 재치있게 말씀하셨는데 그만큼 사람이 많았으니 그만큼 관심도 높고 인기도 있는 전시라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가 예술에전당에서 하는 전시답지 않게 전시 중간에 포토존도 만들어놓고 전시 인테리어나 분위기를 19세기 말 파리 몽마르트 거리의 물랭루즈 분위기로 재현해 놓은 인트로와 프롤로그 부분이 있어 비주얼 전시와 복합된 전시회라고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갔던 사람이 "예술의전당 전시답지 않게 상업적인 느낌이 있어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전시를 관람하는 데 있어 관람객의 높은 수준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시 내용, 그림, 담겨있는 이야기를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집중하기 조금은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시의 진입 장벽이나 벽을 낮추기 위해 시도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여러 시도들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필자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편이고 개인적으로는 전시 분위기나 느낌이 좋았었다. 전시를 들어가자마자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과 붉은색의 벽, 그리고 모니터에서 느낄 수 있는 당시 파리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어서 오히려 눈이 즐거웠었다.

1. 로트렉의 삶과 드로잉

첫 번째 섹션에서는 로트렉의 드로잉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로트렉은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그것도 귀족 중에서도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던 귀족 가문이다. 귀족들이 자신의 부와 명성, 그리고 유산을 잇기 위해서는 형통을 이어야 했고 그로 인해 근친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근친혼의 경우에는 유전병이 생기게 되고 로트렉은 유전적 성장 장애를 가져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지 않으면 걷기 어려웠으며 안타깝게도 두 번의 사고로 인해 하반신 장애를 가져 키가 자라지 않게 된다.


그는 152cm의 아담한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서양인들의 골격이나 평균 키를 생각해보면 작은 축에 숙에 있다. 물론 아담한 체구의 동양 여성과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당시 사회적 지위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콤플렉스가 강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전병과 함께 불의의 사로고 침상에서 오래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동안 그가 침대 위에서 할 수 있던 건 자유로운 손으로 그리는 연필 드로잉이었다. 영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드로잉 하면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 기록하고 싶은 것을 바로바로 표현해서 그리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된다.


첫 공간에서는 그런 로트렉의 다양한 드로잉 작품들이 볼 수 있었다. 드로잉 그림이지만 빠르게 캐치해서 특징을 잡아 그리고 그 특징을 더 과장되게 그리기도 하고 생략과 강조를 하기도 하면서 나중에 대상이 가지고 있는 개성과 특징들을 기가 막히게 잘 그리게 된 원동력이 이런 드로잉 스케치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었을까.

로트렉의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타데 나탕송(Thadée Natanson)은 “앙리는 남성보다는 동물을, 동물보다는 여성을 좋아했다. 그는 미칠 정도로 말을 좋아했지만 말을 타지는 못했다.”라고 했다.


귀족들 틈에 자랐던 그는 특히나 기수였던 아버지로 인해 말에 대한 열정이 굉장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과 사냥과 승마를 즐겨 하고 싶어 했지만 병 때문에 그러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더욱이 동물이나 말을 원했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말위에 올라타본 적이 없으니, 멀리서 바라본 말의 모습이나 말을 타고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림을 남기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는 로트렉의 그림을 칭찬하는 일이 없었다고 하니 어린 나이의 로트렉에 있어서는 아버지는 애증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나중에 로트렉은 심각한 알콜 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퇴원하기 위해서 연필로 자신이 봤던 서커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니 그만큼 뛰어난 그의 기억력, 그림 실력 외에도 그만큼 많은 연습과 드로잉을 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 아버지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는 등 그가 무수히 노력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 상류 사회에서 물랭루즈로

로트렉은 아까도 말했듯이 귀족이다. 그것도 귀족 중의 귀족으로 실제로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위에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개인 성을 가지고 있을 만큼 부자였다고 한다. 로트렉은 상류 사회 계층 사람이지만 상류 사회를 비웃는데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상류 사회에서의 그는 놀림거리이자 조롱의 대상이었고 배척당해온 사람이다. 주변 다른 귀족들에게 항상 비하나 무시를 당했고 그로 인해 자존감이 낮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내게 된다. 한 번은 술집에서 스케치를 하다 연필을 놓고 가려고 하니 옆에 있던 손님이 지팡이를 두고 갔다며 조롱하는 일도 있었으니 굉장히 부끄러우면서도 억을 했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로트렉은 자기혐오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을 비하하고 조롱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화법을 많이 사용한다고 하니 그만큼 자존감이 굉장히 낮았음을 눈치챌 수도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아버지의 냉대였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으로서의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었기에 몸이 불편한 로트렉은 자신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냉대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로트렉이 그린 드로잉 작품 가운데아버지의 모습은 모두 화가 나있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나타내는데 그 이유 또한 평생을 로트렉을 싫어했으니 그런 표정밖에 보지 못한 로트렉이 아버지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림으로도 당시 로트렉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표정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가장 사랑해줘야 할 부모님의 사랑조차 받지 못한 로트렉의 자존감은 안 봐도 비디오이다. 그럼에도 귀족이 화가가 되는 걸 처음에 반대했지만 나중에는 작업실까지 마련해주면서 지원해주기도 하고 나중에는 아들이 죽고 작품이 박물관에 진열되었을 때야 아들의 진가를 인정해줬다고 하니 가문의 영광에 꽤나 집착을 많이 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는 상류 사회의 위선과 가식을 느끼고 그곳을 떠나 가장 낮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던 물랭루즈로 가게 된다.

로트렉은 물랭루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귀족 사화와는 다르게 그곳에서는 지위, 성별, 나이, 장애, 신분 모든 것을 초월해서 그저 인간 로트렉을 바라봐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물랭루즈에서 파리의 밤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워냈던 몽마르트의 여인들을 그리며 그들을 웃기거나 비극적으로 만들어 상류사회를 풍자하게 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건 바로 포스터이다. 포스터 하면 딱 두 명의 인물만을 떠오를 수 있는데 한 명은 바로 알폰스 무하, 그리고 툴루즈 로트렉 이 둘이다. 둘을 비교하자면 무하는 엄청 세밀하고 화려하게 그림을 그렸다면 로트렉은 단순하게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다. 둘 중에 좀 더 광고성으로만 따져본다면 로트렉의 포스터 작품이 시각적으로나 광고적으로 돋보인다. 그만큼 포스터로서의 시각적 효과까지 간파하고 있어 간단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포스터를 활용해서 물랭루즈의 공연하는 사람들을 일약의 스타덤으로 키워내게 된다. 어찌 보면 지금의 엔터테이먼트 시장처럼 하나의 스타를 만들기 위한 홍보로 그림은 간단하지만 그 캐릭터가 가진 특징을 살려 누가 보아도 자신의 홍보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게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중 제인 아브릴은 캉캉 춤으로 특징을 살렸고 싱어송라이터인 샹송 가수 아리스티드 브뤼앙은 챙이 넓은 모자와 붉은 스카프로, 배우이자 가수인 이베르 길베르는 팔꿈치까지 끼고 있는 까만 장갑으로, 얼굴이 아닌 이미지만으로 사람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의 작품으로 단번에 유명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캐릭터의 특징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지금도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포스터를 사용할 때 몇 가지 단색으로만 표현해서 시각적 효과를 늘리기 위해 인물이나 모습을 단순화 시키게 되는데 그러면 쉽게 그리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그리는 것보다 특징을 살려 단순하게 그리는 게 실은 더 어렵다. 하지만 컴퓨터도 없는 그때 그 시절에 로트렉은 인물을 단순화한 시도를 했음을 통해 그의 실력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로트렉은 물랭루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엔터 공연들을 홍보하기 위해 많은 작품들을 남기기도 하고 여러 석판화 작품들이나 연작들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다른 섹션에서 석판화의 원본(?)으로도 볼 수 있는 석판화 자체도 들어와있어서 석판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거나 잘 몰랐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나와있었다. 필자 또한 석판화의 과정이나 실제 찍는 판 자체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3. 추한 것에서 찾은 아름다움

추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추악하거나 부도덕한 것, 이는 그들이 원해서 된 것일까? 하는 작은 의문으로 시작한다. 이 섹션은 개인적으로 가장 즐겁게 본 공간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당시 부도덕하고 추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가수나 여배우, 아니면 몸을 파는 매춘부 등과 교류했다. 그들과 같이 지내던 로트렉은 그녀들의 억눌린 열정이나 외로움, 그리고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이해하며 그녀들의 일상을 그림으로 담아낸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유곽에 머무르면서 배고플 때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놀고 술을 마시며 자유분방하게 놀며 이후에는 유곽에 살았던 당시 모습을 그림으로 엮어 만든 [엘르]라는 작품집을 내게 되는데 그렇게 부도덕하고 추하다고 생각한 이들 또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려는 의도로 내포하고 있어 보였다.

메이 벨포튼과 메이 밀른, 이들은 레즈비언 커플이었다. 그녀들이 커플인 걸 알고 벨포튼에겐 붉은색, 밀른에겐 푸른색의 색만을 사용해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레즈비언 커플인 매춘부들까지 동성애를 다루는 시각에서도 편견 없이 바라봐 주던 로트렉의 모습까지 알 수 있었다.


난쟁이에 화가라는 것으로 평생을 조롱과 놀림에서 살아야 했던 그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그녀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이런 경험 때문에 사람들이 추하고 부도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그저 같은 사람들임을, 그들 또한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봐 주기를 원하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들의 아름다움을 홀로 깨달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4.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

19세기에는 잡지나 매거진 등 저널리즘의 황금기 시대이다. 이런 시기, 로트렉은 특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많은 곳에서 연락이 오게 되고 특히 이때 나온 풍자 잡지인 르 리르 잡지에 자주 풍자 그림을 기고하던 단골 작가이다. 로트렉이 잡지를 위해 만든 일러스트, 만화, 그래픽 디자인 등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는 현대 광고의 선구자 역할을 했지만 상업적 광고 포스터도 예술 작품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실제로 그가 그린 포스터들을 붙이면 떼어가려고 했다니 그 정도로 예술적 가치가 높아졌단 걸 알 수 있다. 그의 포스터 방식은 최초의 현대 포스터라는 말도 들을 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위의 포스터에서도 볼 수 있듯 물랭루즈를 강조하기 위해 반복해서 쓴 글 맨 앞에 큰 대문자 M을 길게 표현한 방법이라던가 모자로 글자를 가리는 느낌, 일본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당시에는 사람을 자르거나 할 수 없었지만 과감하게 얼굴을 자르지만 그 인물의 특징인 검은 장갑으로 인해 이베트 길베르임을 캐릭터성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현재에도 사용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당시에 사용했던걸 알 수 있었다.


로트렉은 짧은 생애 동안 31점의 포스터 작품을 남겼다. 이 작품들은 예술가의 전위적인 시각 언어가 보다 폭넓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 역할을 했으며 미술작품이 대중 소비를 위해 제작되고 활용되는 최초의 계기가 됐다는 점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화가 가운데 하나인 피카소가 청색 시대 때 그린 그림 벽면에는 로트렉의 그림 하나가 걸려있다. 로트렉의 작품들은 당대 유명했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줄 만큼 짧았지만 그의 영향력이 컸음을 볼 수 있었다.


로트렉은 알콜 중독과 가지고 있는 병으로 인해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짧은 인생 속에서 찬란하게 자신의 예술성을 꽃피웠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며 특별하고 특이한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하나의 사람임을 알려주고 싶어 했던 로트렉. 그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작은 거인이라는 단어처럼 로트렉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던 전시라고 생각한다. 잘 알지 못했던 작가라는 게 무색할 만큼 대단했던 사람임을 알게 된 좋은 시간이었기에 남은 기간 동안 전시를 방문하여 로트렉의 진면목을 알아 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박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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