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과 하이드를 빼면 과연 무엇이 남는가
Opinion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 대한 칭찬과 비판
지킬앤하이드
- 기간 : 2018. 11. 13~2019. 05. 19
- 장소 : 샤롯데씨어터
<지킬앤하이드>의 명성
2018년 하반기와 2019년 상반기를 통틀어 뮤지컬계의 화제는 단연 <지킬앤하이드>였다. 조승우, 홍광호, 박은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캐스팅해 이른바 초호화 캐스팅으로 불렸으며, 특히나 조승우는 회차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해 원래 표 가격보다 몇 배나 더 비싸게 파는 암표가 성행할 정도였다. 나 또한 ‘죽기 전에 조승우 배우가 하는 <지킬앤하이드>는 꼭 봐야 한다는 말을 듣고 겨우겨우 티켓팅에 성공했고, 드디어 조승우 배우가 연기하는 이른바 ’조지킬‘을 볼 수 있었다.
한국판 <지킬앤하이드>의 흥행 주역, 조승우
사실 <지킬앤하이드>는 본토인 브로드웨이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뮤지컬이다. <지킬앤하이드>는 1997년 3월 2일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첫 막을 올렸다. 이후 약 4년간이나 공연됐지만 결국 적자가 났다. 평론가들의 평도 냉담했다. ‘이미 여러 번 각색되어진 익숙한 이야기에 새로운 심리적 통찰을 불어넣지 못했으며, 인물도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것이 이유였다.(버라이어티지)
반면 한국에서 <지킬앤하이드>는 2004년 초연 이후 매번 흥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지킬앤하이드> 공연을 제작한 오디컴퍼니는 오리지널 공연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현지 정서에 맞춰 수정을 가하는 연출하는 방식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흥행 요인은 다름 아닌 배우 조승우다. 2004년 초연 조승우의 연기 실력과 공연을 관람한 관객의 입소문이 더해져 흥행에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조승우는 현재까지도 <지킬앤하이드> 흥행 보증 수표다.
배우의 능력은 약이자 독
직접 공연을 관람한 사람으로서 조승우가 연기하는 지킬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원작 뮤지컬에서 지킬은 중후한 남성이었으나, 한국판에선 도전적인 청년 박사로 바뀌었기에 조승우는 패기롭지만 젠틀한 천재 과학자의 목소리로 지킬을 연기했다.
그가 하이드로 변하는 순간은 마술쇼를 보는 듯 했다. 지금 내 눈 앞의 하이드를 방금과 같은 사람이 연기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목소리와 눈빛, 행동까지 짐승처럼 바꿔가면서 연기하곤 했다. 지킬과 하이드가 대립을 하는 장면은 한 배우가 같은 자리에서 여러 번 캐릭터를 바꿔가며 스스로 싸우는 장면인데, 나를 비롯한 모든 관객들은 그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으리라. 막이 내린 후, 모두 기립박수를 진심으로 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대단한 배우의 연기력이지만, <지킬앤하이드>에서는 이것이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킬앤하이드>의 감상평은 ‘지킬을 맡은 배우의 연기력’만으로 평가되기 일쑤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지킬앤하이드>는 유독 주인공의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것도 다른 앙상블이나 인물을 제외하고 주인공이 혼자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지킬앤하이드>를 보고 난 어떤 관람객은 ‘지킬 1인극’이란 표현까지 사용해 후기를 남겼다. 배우의 소름 돋는 연기력은 당연히 관객을 몰입하게 하니 문제없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의 취향은 다양하다. 주연 배우의 연기력 말고도 배우들과의 케미, 앙상블, 화려한 무대연출, 참신한 스토리 등을 기대하는 관객 또한 많다. <지킬앤하이드>를 본 모든 관객의 감상평이 “(지킬 역 맡은 배우)가 연기를 참 잘해.”로 동일하다는 것은 관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배우의 역량에 너무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선정성과 폭력성에 관한 논란
<지킬앤하이드>에는 사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선정성과 폭력성이다. <지킬앤하이드>의 관람 등급은 만 7세 이상 관람가다. 그렇다면 8세 이상, 즉 초등학생부터는 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킬앤하이드>에서는 술집 여성 접대부들이 춤을 추며 남성을 유혹하는 장면, 미성년자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며 성추행당하는 장면, 폭행 및 살인 등의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심지어 극 후반부의 어떤 넘버는 넘버 내내 하이드가 루시의 신체 부위 여기저기를 만지며 진행된다. 이 모든 장면이 초등학생이 보기에는 부적합하다. 그런데도 제작사는 몇 년째 관람 등급 변경 없이 8세 관람가를 유지해오고 있다.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 또한 비판의 대상이다. 극의 여주인공인 엠마와 루시는 성녀와 창녀라는 지극히 이분법적인 대상으로 나뉜다. 의상과 조명도 엠마는 흰색과 하늘색을 주로 사용하고, 루시는 검은색과 빨간색을 사용한다. 그러나 둘은 여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서사가 없이 오로지 지킬의 비극을 심화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지킬을 중심으로 극이 흘러가되 지킬에 의존하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여주인공의 매력을 보여 줄 기회가 적다. 물론 이들을 통해 지킬의 선과 하이드의 악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이 결코 세련되지 못한 것임은 확실하다.
‘낡은 극’이 아닌 ‘세련된 극’으로 거듭나길
2018년의 <지킬앤하이드>는 이전보다 무대와 의상 등을 더 업그레이드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다른 뮤지컬과 비교했을 때 무대나 의상이 더 화려하고 멋있단 느낌은 받지 못했다. 물론 배우의 연기력 하나는 정말 완벽하다. 초연부터 함께 해 온 조승우는 매번마다 더 업그레이드되고 달라진 디테일, 표현력으로 관객을 감동시킨다. 그러나 <지킬앤하이드> 공연도 배우와 함께 성장했는지는 의문이다. 이전과 바뀌지 않은 위와 같은 문제점들이 조금 아쉽다.
만약 <지킬앤하이드>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낡은 극’이라는 평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뮤지컬계의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라는 명성에 걸맞게 앞으로도 쭉 사랑받는 세련된 극이 되길 바란다.
임하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