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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보통의 편견 그리고 보통의 연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강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미미하지도 않았다.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허리 굽은 할머니의 유모차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라는 의문. 그들의 인연은 여기서 부터 시작된다. 조폭의 하수인이라는 소문이 돌만큼 어마어마한 보물 등을 품고 있을 듯한 큰 유모차를 끄는 할머니를 발견한 츠네오는 우연찮게 베일에 쌓인 유모차 속을 보게 된다. 성인의 모습을 한 꾀죄죄한 여자, 그러나 그녀는 걸을 수 없다. 그것이 츠네오가 본 유모차의 비밀의 실체였다. 그 날 이후 츠네오는 쿠미코의 집을 종종 방문하며 그녀의 집, 요리, 그녀가 외우다시피 탐독하는 책들을 하나 둘 알게 된다. 그리고 사강의 '일년 후'라는 작품을 좋아해 조제로 불리길 원하는 그녀에게 절판 된 속편을 구해주기 위해 서점을 뒤진다. 왜 그녀에게 다시 찾아가는지 스스로도 정의 내리지 못한 채 그의 발은 이미 조제에게로 향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1년 후'

보통의 편견

조제는 걸을 수 없다. 하반신 마비를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남들처럼이라는 말은 고문과도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가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녀의 할머니는 무수하게 그녀가 장애인임을 각인시킨다. 누리던 것들의 박탈이 아닌 누릴 수 없음을 그녀는 그렇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츠네오가 어느 순간 그녀의 삶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어스름한 새벽의 시간이 아닌 낮, 그는 일반인들의 시간에 산책을 가자며 그녀를 초대한다. 조제에게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 속에서 그녀는 일반인들의 시간으로 발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츠네오와 함께 했던 산책은 어슴푸레한 새벽에 시간 속에 존재했던 그녀에게 아침의 시간처럼 다가온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걸 함께 보고 싶었어

 

-조제

이 이야기는 '편견의 눈'을 가지지 않았던 츠네오이기에 시작할 수 있었다. 일반인들의 세계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면 그들과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은연 중에 스스로에게 편견의 눈을 덧씌우게 된다. 조제는 일반인들에겐 이방인 같은 존재였으며, 낯선 존재다. 하지만 츠네오는 그녀의 이방인적인 면모에 가려진 그녀와의 동질적인 것을 본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조제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에서 그녀의 생활, 그녀의 말투 등에 자연스레 베어 나오는 인간의 향기와 어쩔 수 없는 끌림을 남기는 조제가 가진 여성으로서의 여운이 그에게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그녀를 마주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그렇기에 결코 이 영화는 장애인의 사랑으로 바라볼 수 없으며 폄하될 수 없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또한 이는 레이몬드 카버의 소설 대성당을 연상케 한다. 시각 장애인을 친구로 둔 아내를 줄곧 이해할 수 없던 주인공이 단 한번, 수많은 이질감 속에서 느낀 동질감을 확인하고 그에게 손을 내민다. 이방인이었던 그에게 내민 손은 조금이나마 그를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그저 사람으로서 온전히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에서 말이다. 

보통의 연인

조제와 츠네오는 서로에게 감정을 좀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관찰하면서 각자의 한 면 한 면 바라보면서 느껴지는 일련의 감정들을 그저 차곡차곡 간직해 나간다. 갑작스런 할머니의 죽음으로 홀로 남은 조제에게 찾아갔을 때, 그들은 비로소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미친 듯이 쏟아낸다. 여과되지 않았기에 그들의 감정은 이제껏 어느 무엇보다 솔직할 수 있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여기서 나아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고 싶다던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보러가자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커진 감정을 표현하는 조제가 아니다. 사랑하는 한 여인으로서 조제를 완벽히 대하는 츠네오이다. 그들이 연인으로 발전하면서도 츠네오에게 조제는 한 여인이기 이전에 보살펴야하는 배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적, 육체적 관계를 심화시켜 나가며 츠네오에게 조제는 그저 자신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한 여인으로 자리잡는다. 심리적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늘 그녀를 우선시 하는 배려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분명하게 전하며 다투기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들은 어느 하나가 배려 받아야 하는 차등적 관계에서 동등한 보통의 연인으로서의 발전하는 면모를 보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깊은 바다 속에 혼자 있었어

하지만 그렇게 외롭지는 않아. 처음부터 혼자였으니까

 

그곳에는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

너무도 고요해

 

그다지 외롭지는 않아

애초부터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갈 뿐이지

 

언젠가 자기가 없어지게 된다면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

 

-조제

하지만 시선이란 무섭다. 다수의 시선이 가진 힘은 대개 소수의 끈질긴 노력을 허무하게 무력화시키곤 한다. 이렇듯 보통의 사랑을 하는 보통의 연인에게 편견의 눈이 덧씌워지면 그들을 바라보는 눈에 동정이 어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특이한 연인으로 인식된다. 그들이 가려하는 길이 순탄치 않다는 걸 알기에. 편견의 눈이 그들이 오가는 어느 곳이든 그들을 감시하며 시작했던 둘의 사랑은 카나에가 조제에게 던진 말처럼 수많은 비수에 응한다. 영화가 후반부를 향해 가면서 차마 부모님께 조제를 소개시키지 못하는 츠네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보통의 연인으로 사랑하면서 달려왔던 길 위에서 그는 스스로가 더 이상 넘지 못하는 돌부리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솔직하게 사랑했으나 가장 솔직하게 이별해야만 했던 것을 조제도 알았기에 그들은 담담하게 헤어진다. 보통의 편견 속에서 보통의 연인으로 남고자 했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난다.  

이별의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아니, 사실은 하나다.

 

내가 도망친 것이다

 

-츠네오

이호준 dlghwns04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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