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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통제된 삶을 그린 SF 디스토피아 영화 세 편


우리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각종 사회적 규범과 법을 지키고 자기검열을 통해 지금의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사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야 결과적으로 우리 개인도 그 덕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고, 이것이 사회적 질서와 모두의 안정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태도라고 교육받았다.


그리고 이는 공동체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신념이다. 그러나 여기 국가나 사회가 이 공공성을 어디까지 정할 수 있고 또 이를 위해 얼마나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하는 영화들이 있다. 무엇이 공공성이고 어디까지가 개인의 자유이자 인권일까?

통제 단계 1 : 출산 통제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 중에서

인간의 유전자 조작 연구 부작용으로 전 세계 인구 과다 현상이 발생한다. 이를 통제하기 위해 정부는 법적으로 한 가구당 단 한 명의 자녀만을 허락한다. 체계적으로 등록된 가족 정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건물을 출입할 때, 심지어 음식을 구입할 때도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는 팔찌를 보여야 한다.


길거리에는 규제에 의해 끌려가는 가족을 보며 오열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곱 쌍둥이가 태어나고 쌍둥이들의 할아버지는 각자에게 요일을 배분하고 이들에게'카렌 셋맨'이라는 한 명의 인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한다. 어느 날 '먼데이(월요일)'가 사라지고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서 쌍둥이들은 정부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한다.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 중에서

출산을 통제하면서 법을 어긴 많은 사람들을 끌고 간 정부기관은 이 사람들을 얼려놓은 후 상황이 완화되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거짓이었고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대부분의 소속 직원들조차 새로 태어난 아이들이 냉동 수면 대신 강제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결국 잘못된 연구의 피해자인 시민들이 그대로 그 결과의 책임을 떠맡게 되어버린 것이다. 영화 <월요일이 사라졌다>는 알 권리와 살 권리를 모두 무시당하면서 누군가가 말하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자발적으로 희생하며 살게 된 사람들을 그린 디스토피아 영화이다.

통제 단계 2 : 생각 통제

영화 <아일랜드> 중에서

영화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정해진 식단과 습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삶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남자, 링컨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남자가 생활하는 거대한 규모의 시설은 오염된 외부환경에서 구조되어 유토피아인 아일랜드에 가기 전까지 자신이 추첨되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유토피아에 가고 싶다는 일념 하에 매일 자신이 맡은 업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링컨은 우연히 시설 내에서 커다란 벌레를 발견하고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바깥 세계에 의심을 가지게 된다. 그의 의심은 점차 커져 지난번 아일랜드로 추첨된 동료가 수술실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발견한다.

영화 <아일랜드> 중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일랜드'만을 위해 살아온 링컨은 얼마 전 추첨된 친구 새라를 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조작된 추억과 똑같은 세뇌를 주입받아 이곳에 살게 된 것임을 알게 된다. 이들은 누군가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만들어졌고 링컨은 유전자 조작 중 의도치 않았던 '호기심'이 생겨난 변종이었던 것이다.


과학이 만들어낸 또 다른 사람은 우리가 말하는 인권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가? 고통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에게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가?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삶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인가? 영화 <아일랜드> 속에서 링컨과 새라는 이 모든 물음에 대한 해답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통제 단계 3 : 감정 통제

영화 <더기버 : 기억전달자> 중에서

세상의 계속된 선택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차라리 정해진 삶을 살고 싶다는 오만에 빠질 때가 있다. 여기, 청소년기가 끝날 즈음 모두에게 정해진 직업을 배분해 주는 사회가 있다. 놀라운 점은 그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불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 모든 친구들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직업들을 부여받은 와중, 조너스는 '기억 보유자'라는 알 수 없는 직무에 배정을 받는다. 기억 보유자로서 이전 기억 전달자로부터 교육을 받기 시작한 후부터 조너스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영화 <더기버 : 기억전달자> 중에서

조너스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차이와 다양성을 부정하고 모두가 평등할 것을 추구하는 '커뮤니티'이다. 이들은 매일 아침 손목에 감정을 통제하는 주사를 맞고, 이에 의해 시기와 질투 또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이를 알아차리고 주사 주입을 멈춘 후, 조너스는 사랑의 감정을 알게 된 동시에 인간의 잔인함, 무자비함도 알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조너스는 가족에게까지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는 커뮤니티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기억 보유자 역할에서 멈추지 않는다. 영화 <더 기버: 기억 전달자>는 '나쁜 감정들이 모두 사라진 채 사는 삶이 모두가 어울려 살 수 있는 옳은 방법인가'를 영상의 색감을 통해 표현하면서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불합리한 통제는 더 큰 혼란을 초래한다. 앞서 분리한 통제 단계에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그 합리성이다. 적어도 지금의 상상력 하에서는 유전자 조작과 과학의 발전으로 이뤄낸 인간 통제의 완벽한 형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극한의 이상 현실의 실현을 꿈꾸며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편견, 다양성 그리고 싸움 등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영원히 안고 가야 할 숙제임을 이 영화들은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기 위해 통제해야 하고 통제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기준을 결정할 독점적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오래전부터 굳건하게 존재해온 규범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악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법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분명한 한 가지는 누군가가 통제 당함에 있어서 자신이 어떠한 규범 하에 있다는 사실은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을 인정하고 또는 언제든지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갖기 위해서 말이다.


추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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