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기억할 것이 많은 5월이다
기념일에 관하여
유난히 기억할 것이 많은 5월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더불어 여러 친구의 생일까지 참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바쁜 일상과 더불어 챙겨야 하는 기념일들을 번거롭게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러한 것들이 마냥 귀찮게 느껴지진 않는다.
'5월, 비로소 남을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
올해는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에 온전히 귀속되지 않은 채 내가 마음먹은 일들에 몰두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세상의 어떤 존재든 그중 내가 제일 우선이라고 여겨왔다. 그래서인지 바쁜 삶을 살았던 지난해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더 소홀해졌다. 휴학까지 한 덕택에 오직 나만의 세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지난해까지 내가 살았던 세상이 싫었기 때문에, 나만의 세상에 더 빠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나 자체보다는 어떠한 직책이나 누군가의 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았던, 나의 목표가 아닌 조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내가 바보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올해, 더 절실하게 이기적으로 살았던 것 같다. 이기적인 시간 속에서 문득 엄마가, 남자친구가, 교수님이 생각난 것은 기념일 덕분이었다.
어버이날
공교롭게도 이날,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릴 적 어머니께서는 어버이날을 기념하기보다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바쁘셨다. 매해 어버이날 어머니는 내게 어떤 선물을 갖고 싶은지, 어떤 케이크를 먹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그때마다 나는 용돈을 달라고, 생크림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대답했다.
올해는 내 생일보다 먼저, 어버이날을 챙겨보기로 했다. 비록 어머니와 떨어져 타지에 살기에 함께 어버이날을 챙기진 못하지만, 그날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선물과 케이크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했다. 그날, 직장에서 어머니 연배의 국장님이 아들에게 직접 카네이션을 받았다고 자랑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자식에게 카네이션을 받는 부모의 모습이 마냥 부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날 나는 어머니에게 내 생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어버이날에 같이 못 있어 드려 죄송하다고,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로즈데이
오늘은 로즈데이다. 사실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만큼 널리 알려진 날이 아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로즈데이의 뜻을 찾아보니, 로즈데이는 연인들끼리 장미를 주고받는 날이었다. 사실 남자친구로부터 꽃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는 내게 고백하던 날 장미꽃 한 아름을 안겨주기도 했고, 데이트하던 날 함께 길을 지나다 발견한 꽃집에서 갑자기 안개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그에게 꽃을 선물한 적이 없었다. 그는 내게 어떤 꽃을 선물해주면 좋을지 매번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꽃집을 지나치면서 단 한 번이라도 그가 좋아하는 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을까. 그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오늘은 붉은 장미를 사서 그에게 선물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스승의 날
오늘 출근길에는 카네이션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았다. 그때야 내일이 스승의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는 내내 한 교수님이 떠올랐다. 교수님은 교수님보다 선생님이라고 불리기를 원하셨다. 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애기, 밥 먹었니?”라고 물으실 만큼 대학에서 만나기 힘든 스승이었다. 백 명이 앉아 있는 대형 강의실에서 전공 서적만 바라보는 강의만 들었기에, 그 교수님은 내게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었다.
한때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슬럼프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스무 살의 사춘기였다. 어떤 일에도 흥미를 느끼기 어려웠고, 바쁜 하루가 그저 지나가기를 바랄 만큼 무기력했었다. 이런 내가 한심해서 울고 있던 내게, 교수님은 따뜻한 밥 한 끼를 사주셨다. “많이 힘들었구나”, 교수님의 이 한마디에 힘이나 마음잡고 학교에 다녔다.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던 그 날을, 여전히 기억한다. 그래서 카네이션 한 송이를 산 후 꽃에 그 날의 기억이 주는 따뜻함과 감사함을 담았다.
기념일이 주는 소중함
누군가는 기념일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상술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또한 사실이다. 어떤 기념일이든, 이에 걸맞은 선물 교환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오늘 같은 로즈데이나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등의 날에는 연인이 없다면 괜스레 소외감이나 씁쓸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쓸데없는 기념일이 너무 많다”는 의견도 있다.
나 또한 이와 같은 생각이었다. 챙겨야 할 사람이, 써야 할 돈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선물을 교환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오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설렜다. 또한 각자 하루하루 살기 바쁜 나날들 속에서, 주변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소중했다.
평소 상대가 어떤 선물을 좋아할지, 선물을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할 수 있는 날이 적지 않았던가. 어쩌면 기념일은 늘 이기적이었던 우리가 비로소 남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황채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