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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버려진 이후의 시간

초등학생 때 체험학습으로 쓰레기 처리장에 간 적이 있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온갖 쓰레기가 높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던 모습과 함께 벽을 넘어 엄습해오는 쓰레기 냄새와 그 쓰레기를 태우는 열기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나는 열심히 사고 쓰고 버리며 잘 살아왔다. 편리함 앞에서 충격은 쉽게 무뎌졌다. 그러다 작년에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중단하며 발생한 ‘쓰레기 대란’ 기사의 사진을 보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사진을 가득 채운 쓰레기봉투들에 숨이 턱 막혔다.


산업화 대량생산체제가 자리 잡으며 우리는 양질의 물건을 싼 값에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물건이 상품으로서 존재하는 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다. 상품이 되기 이전과 그 쓸모를 다해 상품의 가치를 상실한 이후의 시간은 마치 우리와 아무 연관이 없는 것처럼 분리되었다. 그러니 분명 2, 3년 전이었다면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 같은 책은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계속된 무분별한 소비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생존을 위협하는 부작용은 지금껏 무시해 온 상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버려진 이후의 시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작년부터 심심찮게 쓰레기 처리 문제를 둘러싼 기사가 나오고, 전 세계 수많은 청소년이 기후변화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환경에 무지한 나도 관련된 책에 눈길이 갔다.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는 그렇게 펼친 책이었다. 책이 알리는 진실은 어릴 적 봤던 쓰레기 산의 모습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플라스틱, 어디까지 알고 있니

책은 환경문제 중에서도 쓰레기 문제, 그중에서도 특히 플라스틱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여기 저기서 수많은 종류의 플라스틱이 수많은 용도로 소비되고, 버려진다. 버려진 플라스틱은 썩지 못한 채 유해물질을 내뿜으며 지구에 쌓이고 있다. 책을 읽으며 플라스틱이 왜 환경문제에 치명적인지, 우리가 모르고 있던 플라스틱의 유해함부터 시작해 '플라스틱 프리'의 삶을 지향하는 저자의 다양한 '꿀팁'까지 두루 만나볼 수 있었다.


플라스틱은 모든 곳에 사용된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갈 때면 내 손에 가득 들린 각양각색의 플라스틱들과, 다른 사람들이 버린 플라스틱으로 넘쳐나는 분리수거 주머니를 보면서 새삼 플라스틱을 많이 사용한다는 걸 실감한다. 요즘은 어느 음식점을 가나 포장이 가능해지면서 체감상 플라스틱 소비가 더 늘었다.


우리가 '플라스틱'이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포장 용기나 비닐봉지 외에도 플라스틱은 세상 곳곳 온갖 곳에 다 사용된다. 한 번 피고 버리는 담배꽁초에도, 늘 입는 겨울 겉옷에도, 페인트에도. 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 상상하기 힘든 곳에도 플라스틱은 존재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의 종류만 해도 약 70여 종이라고 하니, 문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플라스틱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편리함을 무기로 플라스틱은 세상에 등장한 지 100년도 되지 않아 세상을 지배했고, 이제는 환경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 중 플라스틱이 약 90%에 육박할 정도다.


플라스틱은 생각보다 재활용이 어렵다.


환경문제에 무지한 나도 조금 껄끄럽거나 죄책감이 드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일회용 비닐봉지나 비닐 포장재를 버릴 때다. 왠지 비닐과 스티로폼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반대로 패트병이나 요구르트병, 일회용 테이크아웃 잔을 사용할 때는 죄책감이 없었다. 이들이 비닐봉지나 비닐포장재에 비하면 확실히 재활용된다고 생각했기에, 물에 헹궈 깨끗해진 플라스틱을 내놓을 때면 뿌듯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플라스틱이 재활용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 우선 플라스틱 종류가 너무 다양해 같은 것끼리 모으기가 힘들고, 그나마 재활용되는 것도 태워서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형태기 때문에 또 다른 환경오염을 발생시킨다. 지금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포장재 중 재활용된 비율은 14%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는 의심 없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함에 넣지만, 플라스틱은 재활용된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활용률이 낮은 물질이다.


세계 미세플라스틱 오염의 약 35%는 합성섬유제품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조금 생소한 '미세플라스틱'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이야기되는 문제 중 하나다. 플라스틱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분해되지 않고 쪼개질 뿐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플라스틱이 버려진 후에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신용카드 한 개 분량의 미세플라스틱을 공기를 통해 흡입하거나 음식물로 섭취하는데, 몸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미세플라스틱의 주범은 의외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입는 옷이다. 세탁기를 돌리면 폴리에스테르 재킷에서 100만 개, 아크릴 스카프에서 30만개, 나일론 양말에서 13만 개가 나온다고 한다. 미세플라스틱은 너무 작고 가벼워서 물속은 물론이고 공기 중에도 떠다닌다고 하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을 피하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플라스틱 제국에서 살아남기

통계자료를 살피며 다시 본 세상은 '플라스틱 제국'이 따로 없다. 땅에 묻고 바다에 버리고 불로 태워도 넘쳐난다. 바다생물의 몸속에는 미세플라스틱이 원래 몸의 일부인 양 들어차 있고, 태평양에는 한반도 약 7배 크기의 쓰레기 섬이 있다고 한다. 처치 곤란인 플라스틱이 산처럼, 섬처럼 쌓여가고 있지만 플라스틱 제국은 쉽게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구수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중국과 미국에서는 우리나라만큼 분리수거 문화가 정착되어있지도 않을뿐더러, 플라스틱에 별다른 제재를 하고 있지 않다. 분리수거 하러 나갈 때는 이렇게 가벼운 물질도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얼마나 많이 쓰이는지 해마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의 양은 1,270만 톤에 육박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무력감은 여기서 비롯된다. 광범위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환경오염에 내 작은 행동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해서 될 게 아니라 나라가, 기업이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솟는다. 이 책은 꽤 솔직하다. '플라스틱 어택', '크래프티비즘', 청원 운동, '플라스틱 파파라치', '줍깅' 등 '쓰레기 덕질'이라 부를 정도로 쓰레기와 관련해 개인과 작은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세세한 노력을 유쾌하게 알려주지만, 동시에 그런 노력만으로는 이 세상의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지적한다. 결국 기업과 국가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결국 기업과 국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시민 하나하나, 소비자 하나하나다.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의견 표명이 아니라면 그들은 지금 당장 이 플라스틱 제국에서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웃이나 친구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여전히 작은 행동일지라도 함께 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면, 오랫동안 지속하면서 타인에게 전파하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소문자에서 대문자의 삶으로

저자는 머리말에서 스스로 '소문자'의 삶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학생 때는 정치나 경제같이 거대 담론이라 하면 흔히 떠오르는 영역이 아니라 페미니즘 교지 편집부에 몸을 담았고, 지금은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환경운동가로 살고 있다. '개인적인 게 정치적인 것이다' 라는 말을 배우며 그는 스스로가 '대문자'의 삶으로 나아갔다고 평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의 인식 속에 어떤 문제들은 '소문자'에 해당된다.


최근 소위 '조국 사태'와 관련해 조국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와 검찰개혁 및 '조국 지지'를 외치는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모두가 열을 올리는 동안 양쪽 집회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이들이 “나는 나의 깃발을 들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했다. 경향신문에 실린 10편의 글에는 여성인권운동가와 환경운동가가 쓴 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늘 그렇다. 어떤 문제는 중요하고, 다른 문제는 덜 중요하다. 그렇게 밀려난 담론들은 설 곳을 잃고 무관심 속에 묻힌다. 여성문제와 환경문제는 우선순위가 자주 밀리는 대표적인 주제다. 물론 2000년대 후반 들어 잠잠하던 페미니즘이 최근 4,5년 사이 급부상하고 환경문제 역시 이전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이야기되지만, 아직 주류보다는 주변부에 머문다.


그렇다고 사회에서 주류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공통점만으로 두가지 사안이 늘 긴밀하게 연결되는 건 아니다. 환경운동이 기술의 발달을 거부하고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한다고 납작하게 해석할 경우, 페미니즘과 대립할 여지가 있다. 게다가 여성과 자연을 무작정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여성/문명-남성 이라는 이분법적 구별을 강화할 뿐이다. 이에 대해 환경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여성학자 정희진 씨가 주장한 여성운동의 방향과 결을 같이 하며 환경운동과 페미니즘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나는 페미니즘으로 세상을 바꾸는 방향은 양 갈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맞벌이, 또 하나는 '맞살림'. 맞벌이는 여성도 임금노동을 하고, 남성과 동일한 기회와 지위를 누리며 '남성적' 세계를 남성과 동등하게 나눠 가지는 방향이다. 반면 맞살림은 가치 절하된 재생산 노동과 자연의 가치를 복원하고 성별에 상관없이 누구나 그 일을 평등하게 나누고 누리는 거다. - 188쪽
이제 우리에겐 여성을 자연에서 분리하는 힘이 아니라 남성과 문화를 자연에 접속시키는 역방향의 힘이 필요하다. - 190쪽

'에코 페미니즘'처럼 환경운동이 여성운동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듯,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진행 중인 '운동'들은 서로 접점을 가지고 확장될 수 있다. '플라스틱 프리' 운동은 깨끗하고 안전한 세상에서 공존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한다. 즉, 우리의 인간관계와 생활 습관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퍼진 '플라스틱 식 소비 방식'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라스틱 프리 운동은 앞뒤 생각하지 않고 빠르고 편리한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거대한 운동이다. 어느새 넘쳐나는 정보로 혼란스러워할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책 말미에 도움이 될 만한 의견을 제시한다.

"다른 사람이 선을 그어줄 순 없다. 마음이 동해서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우선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해보자. 나머진 그 선택을 북돋아주는 친구들과 사회적 제도들에 기대면서 한 발짝씩, 안단테." - 144쪽

종종 지치더라도 완전히 나가떨어지지는 말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나도 늘 하는 생각이다. 선두에 서서 열심히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늘 앞에서 '설치는' 사람들이 있어 무언가 진전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한다.


나는 환경 운동에서는 선두는커녕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태다. 그래도 책을 읽다보니 당장 사용하는 플라스틱 칫솔이 거슬리고, 아무 생각 없이 카페에 가면 머그컵에 플라스틱 빨대를 꽂던 날들을 반성하게 된다. 거대한 운동도 이렇게 시작될 테다. 책 뒤편에 수록된 아직 다 읽지 못한 두꺼운 부록은 앞으로 천천히 나의 속도로 나아가며 읽고 싶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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