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무덤 - 용서받지 못한 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군대를 모른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 영화가 실제 군대 모습을 잘 투영했다고 말하면 나는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첫 학기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발표주제로 이 영화를 정해주셨다. 첫 대학 수업이었고, 잘 하고 싶은 수업이었고, 팀플에 대한 기대가 있기도 했다. 대학생활에도 짬이 있다면 나의 짬은 없었다. 짬 많은 고학번들의 'PPT를 다룰 줄 몰라요' 같은 속 보이는 거짓말을 보고도 정말 그 말을 믿는 사람처럼 그러시구나, 하며 나를 위해 온갖 고생을 다 했던 수업이었다. 영화 자체로는, 당시에는 진지하게 봤지만 시간이 지나니 많은 것이 사라졌다. 우습게도 나는 어리버리한 후임을 가르치는 태정의 웃음 섞인 '교육' 씬만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될까' 정도의 생각이 남았다. 살을 부딪히듯 닿는 슬픔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젯밤 다시 이 영화를 보면서 감겨오던 눈이 어느새 잠에서 완전히 깨버렸다. 결국 다 보고 잘 수 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여전히 나는 군대를 모르는데도, 대립되는 영화 속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이 익숙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나랑 같구나. 내 생활과 같구나. 분명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같구나.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정신이 차갑게 맑아졌다. 나는 태정과 승영 사이에 있었고, 지훈이처럼 감정에 휩쓸려 있었다. 누군가 말해준 적 있었다. 직장은 군대보다 좀 더 할 만한 버전이라고. 직장도 힘들긴 한데 여러모로 군대보단 나으니까 할 만하다고. 나는 그 말을 이제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태정과 승영, 지훈, 모두 같은 부대의 선후임 사이다. 셋 모두 서로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이 있는 사이. 태정과 승영은 중학교 동창이었고, 늘 후임을 잡기로 유명하던 태정 역시 승영에게는 마음이 쓰이는 만큼 관대할 수 밖에 없었다. 태정의 성격일 수도 있지만 승영에게 좀 더 마음이 약했던 것 같기도 하다. 군대라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던 승영은 사사건건 부대원들과 부딪힌다. 그에겐 비장하고도 원대한 꿈도 있다. 이 비합리적이고 불평등한 문화를 바꾸고 말거라는, 나만큼은 다른 선임과 다르게 '좋은 선임'이 되겠다고. 승영은 어찌보면 태정의 그늘 아래서 원하던대로 지훈에게 '좋은 선임'이 되는 듯 했다.
군대의 시스템을 긍정하는 사람은 영화 속에 아무도 없다. 문제야 많다. 많은데, 다만 지금 이대로가 편하고, 들쑤셔봐야 힘들기만 할 뿐이라는게 중론이다. 바꾸는 거, 말은 쉽지.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울 것 같냐? 라는 태정의 말이 영화를 찌르고 있다. 누구를 비판할 수 있겠는가. 군생활 내내 선임한테 힘들게 깨지다가 고참되서 대우 좀 받아보자는 모습. 더 다치고 문제가 커질까봐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를 달고 사는 모습. 나는 달라야지 하다가도 결국은 맞춰줄 건 맞춰주자며 이 시스템에 순응하는 모습. 적응하지 못하고 벌어지는 상처에 허덕이는 모습. 사랑하는 이가 서로 필요할 때 함께 하지 못해서 어긋나고 부서지는 모습. 외롭고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상대를 한없이 추락시키고 희롱하는 모습. 마음 한 구석엔 죄책감과 후회감을 안고 사는 모습.
이들 전부가 잘못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시스템으로 모든 걸 합리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곳에 대사하나 없이도 모두를 움직이는 존재는 바로 군대의 시스템이다. 군대라는 말로 모든 논리는 불필요해진다. 절대적인 고유명사다. 여전히 그런 곳이 있다. 표현만으로 부조리가 생각보다 쉬이 용인되는 곳. 등장인물은 군대라는 감독이자 무대 앞에서 연기한다. 어리버리한 일병을, 위아래로 까이는 상병을, 걸음걸이부터 자신감 넘치는 병장을. 같은 사람이 계급이 변하면 연기의 결이 새로워진다. 소심하게 구석에 쳐박혀 맞던 이는 언제 그랬냐는듯 배를 내밀고 거만하게 걸어다닌다. 이들은 누군가에겐 피해자이자 가해자였을 수 있다. 동시에 이 모든 걸 유지시켜주는 일원이었다.
자존심이, 내 생각이 대수냐 싶을 때가 있다. 진심이 아닌 바에야 그냥 죄송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 할 때가 있다. 아주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는 좀 맞춰주고 비위도 맞추고, 그래야 나도 편한 것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가도 문득 멈칫한다. 이러다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 이렇게 하나씩 바꾸다 보면 미래의 내가 똑같은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 승영처럼 흔들리다 누군가에게 절절하게 매달리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다. 태정처럼 슬픔은 슬픔대로, 적당히 타협하다가도 밥을 입에 넣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감옥에 갇혀있다는 느낌. 나와 나의 친구들의 갇혔다는 느낌은 영원히 다를 것이다. 그들에겐 누구보다 힘들고 고생스러웠을 이야기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들에겐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해받지 못하는 슬픔과, 이해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군대 밖에서도 이어진다. 끝나지 않고 사회에서도 변주된다. 군대생활이 사회생활, 직장생활로 이름만 수정했을 뿐이다.
태정과 승영, 지훈 모두 스스로에게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다. 용서를 구할 존재는 따로 있는데 용서를 받지 못하는 존재만 늘어간다. 힘들어서 다른 이에게 또 다시 상처를 주고, 남들도 다 하는 거라서 상처를 준다, 그 땐 어떻게 그랬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잘 적응하려고 후임을 괴롭히고도 미안해서 담배를 주거나 먹을 것을 챙겨주던 태정. 눈엣가시처럼 삐딱선을 타다가 이내 순응하고, 그러면서도 후회하는 승영. 마음의 상처까지도 어리버리함으로 묻혀서 홀로 화장실로 들어가 목을 맨 지훈. 정말 모든 추억이 미화되는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묻어두고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닌가. 용서를 구해야 할 군대의 시스템은, 이런 시스템의 군대를 있게 한 이유는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이제는 너무 오래 되어서 당연한 것처럼. 그래서 원칙이 되어버린 것처럼. 새로운 반역자가 들어오면 한 마디 하겠지.
"야, 군대 잘 돌아간다. 너 같은 애들은 예전에도 있었지. 걔네들 다 어떻게 됐는지 알아? 관록이란 건 그렇게 무너지기 쉬운게 아니란다. 시대가 변했으니 조금은 바뀔 순 있지만, 사라질 순 없어."
속으로 웃어넘기면서 용서의 무덤으로 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누구 하나 선뜻 잘못했다 진심으로 입을 열 수는 없는 곳. 크고 작은 잘못이 산처럼 쌓여있는 곳. 자기 자신에게 용서받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등 뒤에 줄 세워둔 곳으로.
장지원 에디터 rhksfl6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