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를 보았다
이번 주도 영화를 보고 오피니언을 쓸 계획이었다. 전부터 보고 싶었던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를 봤다. 엄청난 영화인 것은 분명했지만 책상에 앉으니 어떤 글을 써야 할 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어려운 영화였다.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한 척 하며 쓰는 것은 거짓말이 될 것 같아 대신 오늘은 오래된 추억을 하나 꺼내보려 한다.
작년 겨울 운이 좋게도 나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한 학기동안 생활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추운 겨울, 나를 맞이하는 건 무릎까지 쌓인 소복한 눈과 3시면 찾아오는 캄캄하고 긴 밤이었다. 이 곳의 긴 밤은 누군가에게 깊은 우울을 가져다 준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조용하고 고요한 이 곳이 좋았다. 그 길고 긴 밤이 만들어 준 소중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오로라를 본 일이다.
노르웨이 안에서도 가장 남쪽인 오슬로에서 오로라는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이에 나는 비행기를 타고 노르웨이의 북쪽에 위치한 트롬소라는 작은 도시로 떠났다. 그 곳에서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오로라이기에 총 3박 4일의 일정을 잡고 '하루만 걸려라'하는 심정으로 매일 오로라 일보를 확인했다. 일보가 좋지 않은 날들은 도심을 구경했고 드디어 둘째 날 오로라 일보가 좋아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는 트롬소 안에서도 오로라가 잘 보이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데려다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도심의 불빛은 오로라를 잘 보이지 않게 하기 때문에 도심으로부터 최대한 떨어지고 구름이 많이 없는 하늘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투어도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더 좋은 곳을 찾아서 계속해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사진출처 : 본인) 삼각대가 없어서 사진이 많이 흔들렸다. |
처음에는 아주 희미하고 어두운 초록색 빛이 보였다. 그것은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고 카메라의 노출을 최대로 하면 확인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실망을 했다. 하지만 밤이 깊어가고 다음으로 이동한 장소에서 정말로 선명하고 아름다운 초록 빛의 오로라를 봤다. 하늘 전체가 초록색과 분홍색 물감을 흩뿌리는 검은 도화지가 된 것 같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것 처럼 춤추는 오로라의 모습은 신비로웠고 어느새 모두가 말없이 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벅차오르는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주변에 함께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과 달이 오로라를 더 빛나게 해 주었다.
그 날 숙소로 돌아와 불을 끄고 눕자 눈 앞에 오로라가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아래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들인지를 항상 잊고 산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함께 투어를 떠났던 모두가 어딘가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삶들을 이끌고 그 곳에 모였겠지만, 오로라를 보며 함께 있던 그 순간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고 믿는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떠올랐을 것이고, 모든 것들에 감사함을 느꼈을 것이고 더 겸손하게 살아야 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사진출처 : 본인) |
오로라를 보는 것은 내 인생에 손꼽히는 소중한 경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오로라라는 그 빛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억은 많이 바랬으며 그보다 그 곳에서 느낀 감정과 기억과 공기들이 더 진하게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내가 다시 여행을 떠나게 하는 힘이자 이유가 된다. 이 후 다시 오슬로에 돌아와서는 오로라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따금씩 울적하거나 외로워질 때 그때 찍은 사진들을 펼쳐보면, 살을 애는 날씨 속에서 느꼈던 따사로움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항상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때의 초록빛 이불 같던 오로라처럼 무언가가 나를 멀리서 감싸주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박지원 기자 wldnjs0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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