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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하게 하는 것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모두가 그녀가 파렴치한 여자, 금기와 욕망으로 타락한 여자라며 몸서리를 치나보다. 캐서린은 열일곱살에 아빠뻘의 남자에게 팔려와 아내가 되었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몸을 코르셋에 구겨넣고 성경을 읽으면서 가구처럼 집안에만 처박혀있으라 한다. 남편은 첫날밤부터 팽 해서는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남편 노릇도 방치 상태. 여기까지는 슬프게도 흔한 전개다. 평생 속앓이를 하면서 빼빼 말라가겠지.

 

그러나 그녀는 다르다. 눈빛은 뭔가를 찾는 듯 강렬하게 빛나고 중저음의 목소리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한다. 아이를 낳는게 가문을 위한 그녀의 의무라며 훈계하는 시아버지에게 그녀는 말한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당신 아들 때문이야. 사이다 발언에 놀랍겠지만 뒤는 스릴러다. 그녀는 세 남자를 죽이기까지 한다. 시아버지를, 남편을, 남편의 혼외자식을. 공포나 불안, 죄책감 따윈 없다. 차분하고 태평한 모습이 무섭다. 그녀가 저지른 세 건의 살인 역시 잔인하다. 앞으로도 눈엣가시가 되면 여지없이 죽일 것도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보고도 그녀가 치를 떨게 하는 괴물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통쾌하고 치밀한 건 마음에 들 정도. 그게 그녀, 캐서린의 매력이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그녀를 판단하기 전에 질문을 하고 넘어가야 한다. 그녀의 잘못은 무엇인가? 불륜인가, 살인인가. 전통과 관습을 지키지 않고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해서인가?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그녀가 세 남자를 죽이지 않았다면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었을까? 그녀는 그렇게도 질문을 많이 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답도 없는 어떤 이상한 여자로 치부되기엔 멈칫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캐서린이 욕망에 잠식당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녀는 욕망에 몸을 적셔도 머리는 담그지 않았다. 영화의 초반 나왔던 그녀의 요구만 반영되었어도 전개는 꽤 달라졌을 것이다. 처음 그녀의 요구는 소망에 가까운 것이었다. 외출을 해서 바깥 공기도 쐬고 사람도 조금 만나고, 남편에게 대단한 사랑씩은 아니어도 신뢰와 호감이라도 받는 것. 그러나 그녀는 집에 갇혔고 그녀에게 대뜸 알몸을 보여달라고 하고선 등을 보이며 잠들어보이는 차갑고 이상한 남편이 있을 뿐이었다. 결혼식부터 그녀를 갸우뚱하게 했던 이었다. 모욕이다. 그녀의 모든 의견은 묵살되었다. 매일 아침 코르셋에 몸통을 조이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생활과도 같다. 보기만 해도 숨막히는데 그녀는 아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개들도 묶여있으면 안달을 한다고 그랬지. 오랜만의 산책은 개를 날뛰게 한다. 마찬가지다. 캐서린 역시 이대로 순응할 사람이 아닐 뿐이었다. 그녀를 휘감고 있던 줄을 풀어놓은 건 시아버지와 남편의 부재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시지. 그들은 이 선택을 누구보다 후회할 것이다. 따분하던 일상에 꿀맛같은 휴가. 쇼파에서 편하게 누워 자는 것. 코르셋 없이 편한 차림으로 바깥 공기를 마시고 오는 것. 그런 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욕구다. 그러나 그녀를 믿고 사랑해주는 것, 지루함을 벗어나는 것은 그녀 이외의 대상이 필요하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하인 안나를 희롱하는 세바스찬을 만났다. 안나를 암퇘지에 비유하며 무게를 잰다하는 능청스러움. 같잖은 변명을 하면서도 넘치는 자신감과 뻔뻔함. 주인인 캐서린이 나는 얼마나 무게가 나갈까 묻자 재 준다며 덥썩 그녀를 들어올리는 패기로운 하인이다. 그에겐 캐서린이 시아버지와 남편을 대할 때의 비웃음과 반항적인 눈빛이 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라기보다 꼬장꼬장한 아버지와 만만치 않은 사춘기 딸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에겐 아버지가 아니라 남자가 필요하다. 세바스찬과 캐서린이 끌리는 건 눈빛만 봐도 당연하다. 지루하지 않냐며 다가오는 그를 그녀가 밀어내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들은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지루함에 죽고 재미라도 있어야 숨통이 트이는 이들. 위험하거나 무서운 건 걱정거리가 아니다.

 

한 번 고삐가 풀리고 나면 걷잡을 수 없다. 세비스찬과 밀회를 즐긴 다음날 아침 캐서린은 누구보다도 신이 나서 키득거린다. 하녀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즐기는 기색이다. 그 때부터 그녀는 어제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아니면 원래 그랬던 사람이었을지도. 누구 눈치하나 살피지 않고 세바스찬과 침실에서 살다시피하다 시아버지가 돌아와 그녀를 꾸짖는다. 그러나 그녀는 떳떳하다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다. 되려 세바스찬을 풀어달라며 난리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캐서린은 영리하고 당당하며 임기응변이 뛰어나다. 사람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 사이에 도덕적인 고민은 낄 틈이 없어서 오히려 심플하게 느껴진다. 첫 살인은 깔끔하다. 말이 통하지 않은 고리타분한 늙은이란 걸 알았는지 조용히 독버섯을 준비한다. 그가 화가 나 방에 가서 식사를 할 때 의자를 사뿐히 문고리에 걸어놓고 하녀에게 태연하게 질문을 하며 차를 탄다. 시아버지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차를 타고서 숟가락을 경쾌하게 세번 두드리는 그녀의 모습은 압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밤마다 소리죽여 울고 말까지 잃은 하녀 안나에 비해 그녀는 자뭇 진지한 얼굴로 장례식에서 시아버지의 관옆에서 사진을 찍는 철면피다. 안나를 꿰뚫어보고 있다.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할 거란 확신이 있고, 그녀가 음식에 독을 탈까 사람을 바꿀만큼 꼼꼼하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두번째 살인은 역시 세바스찬과 그녀의 사이를 꾸짖는 남편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그는 그녀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보다 다른 이에게 보이는 평판을 신경쓴다. 그녀를 창녀라 부르며 다시 갇혀 살라는 판결을 내리는 그에게 캐서린은 보란듯이 세바스찬의 위에 올라타서 남편을 바라본다. 세바스찬과 남편의 싸움으로 끝날 줄 알았지만 남편을 사정없이 내려친 건 그녀이다. 사색이 된 세바스찬에 비해 그녀는 섬세하게 남편의 실종을 위장하기 위해 그의 말까지 손수 처리한다. 잠이 오지 않은 세바스찬에 비해 그녀는 쉽게 잊어버린다. 그녀와 그를 위해. 억압과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사랑과 자유를 위해. 죄책감 없는 살인자란 너무나 강하다.

 

마지막 살인은 예상밖의 존재, 남편이 남긴 아들 테디다. 세바스찬과의 관계로 창녀라 불리던 캐서린에겐 청천벽력같게도 남편에겐 내연녀 사이의 혼외자식이 있었다. 완벽한 자유를 얻었다 생각했던 그녀에게 꼬마 테디는 장애물이다. 게다가 이번엔 그녀를 너무나 잘 따르고 좋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테디마저도 세바스찬과의 사이를 위해서 베개로 숨을 막아 죽이고 만다. 태어나는 것보다 생각보다 죽음은 쉬운 것도 같다. 발버둥치다 이내 잠잠해지면 생명은 그렇게 쉽게 잦아든 것이다. 하녀가 들어올 시간에 맞춰 눈물을 흘리고 그녀가 나가자마자 눈물을 싹 닦는 그녀의 모습. 그녀의 사랑과 자유는 타인의 숨결을 앗아 쟁취한 것이다.

 

물론 그녀가 완벽하게 치밀한 범죄까지 저지르진 못했다. 질식사 살인에는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울혈이 남기 마련이다. 여태까진 잘 넘어갔지만 이번엔 까탈스럽다. 같은 부류라 생각했던 세바스찬은 죄책감과 자괴감에 시달리다 캐서린이 한 짓을 모두 털어놓지만 그녀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안나와 세바스찬의 짓이라 말한다. 안나는 말을 할 수 없으니 안성맞춤이고 이야기를 짜맞추면 둘을 공범으로 만들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쪽은 울면서 좌절하고 거짓을 말하는 쪽은 흔들림없다. 자기 손으로 죽인 테디를 자식같았다며 슬픈 눈으로 말하면 속아넘어가지 않을 이는 없다. 그녀는 무엇이 통하는 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세바스찬은 잊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소유물일지언정, 그녀는 그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녀와 아무리 몸을 섞는다해도 그녀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순 없다. 그녀는 분명 죽지 않고서는 그와 헤어질 생각이 없다고 했고 자신을 의심했다간 가만두지 않을거라 했었다. 그런 그녀를 고발하는 것은 그녀를 버리는 일이고, 사랑했던 이라도 예외없이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한 때 사랑했더라도 아마 그녀는 별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이쯤되면 캐서린이 궁극적으로 원하던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사랑의 도피같은 걸 염두에 둘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은 오로지 그녀 자신을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한 힘이 필요했을 뿐이다. 필요없는 사람은 제거하고 필요한 사람은 조종하고 이용한다. 그녀의 남편 말대로 돈에 팔려와서 꼭두각시처럼 사는 게 아니라 그 부와 명예를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자유롭게 휘두르기 위해서이다.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여자는 남자의 전유물이자 그림자로 취급받던 시절에 살아남기 위한 극단적으로 효율적인 방법일 수도 있다. 살인을 빼고 나면 그렇게 문제가 되는 삶의 방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쓸만한 능력이니까.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영화 포스터의 '모든 금기사항의 집합체'라는 문구엔 동의할 수 없다. 모든 금기사항이라니, 모두가 아는 금기인 근친상간은 등장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불륜과 살인은 이제 '대중적인 금기'이다. 그 시대에선 여자가 남자를 누르고 더 많은 힘을 가진 것 역시 그녀가 깬 금기 중 하나일까.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지만 어느 매체에도 쉽게 소재가 될 만큼 쉬쉬하는 금기가 아닌 것이다. 어떤 금기는 추악한 것으로 보지만 어떤 금기를 아직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녀는 현존하는 금기를 깨왔을 뿐이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 그녀를 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미소를 지어야 될 것도 같은데 이 모든 게 끝나고 소파에 앉은 그녀의 모습은 다소 피로해 보인다. 파릇파릇 붉은 색이었던 소파 역시 시들시들한 누런색이다. 시월드에 입성해 안고 살던 어색한 피로함이 아니라 이제 진득하게 붙어있는 피로함이다. 처음 반항하듯 빛나던 눈은 퀭하고 웃던 입꼬리는 새로운 무표정으로 굳어졌다. 그렇게 얻은 자유와 힘은 즐거움 대신 또다른 속박을 주고 만 것이다. 그 속박은 그녀의 웃음을 옭아매고 피로함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았나 싶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면 끝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뱃속엔 세바스찬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가문이 끊긴 것도 아니니 가문의 또다른 사람들이 찾아오겠지. 그 아이가 태어나면 또다시 한바탕 그녀가 지키고자 한 평온한 부와 명예는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녀는 혼자 계속 싸워나가야 한다. 거짓말을 하고 남을 조종하며 필요하면 죽이면서. 그녀 자신을 위한 일이었으니 빠져나갈 수 없다. 외로움과 피로함이 계속 그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그녀 자체가 그녀의 코르셋이자 면사포 같은 존재. 그게 그녀를 갉아먹을 대가다.

 

장지원 에디터 rhksfl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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