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참 괜찮은, 대한민국
한동안 여행을 컨셉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방영되던 방송가에서, 최근 특별한 케이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바로 외국인들의 한국 여행기를 리얼하게 보여주는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이다. 연예인들의 여행기를 주제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카테고리의 대부분을 이루는 가운데에서 이 프로그램은 시선을 조금 비틀어,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방송인들의 친구들이 처음으로 한국을 여행하며 생기는 에피소드’를 조명했다. 이미 매체에 꾸준히 노출되어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외국인 방송인들과, 매체에는 한번도 보여지지 않은 그들의 일반인 고향 친구들이 보여주는 (그들 입장에서의) ‘해외 여행기’인 셈이다. 그들은 이미 한국에서 살고 있는 방송인 친구의 가이드에 따라 한국을 체험해보기도 하고, 또는 친구의 가이드 없이 온몸으로 한국을 겪어보기도 한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아주 새로운 포맷이라고 느껴진다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인 감이 없지 않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보는 한국을 조망해 시청자들로 하여금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데 중점을 둔 프로그램들은 예전부터 꾸준히 제작되어 왔고,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으로 2006년부터 방영되었던 ‘미녀들의 수다’가 그랬고, 2014년부터 현재까지 방송 중인 ‘비정상회담’이 그랬다. TV 매체뿐만 아니라 YouTube의 인기 채널인 ‘영국남자’도 이러한 포맷의 명맥을 이어오며 현재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과거 이 프로그램들의 성격을 어느 정도 가지면서도, 가장 ‘날 것 그대로’ 비치는 한국의 모습, 즉 이방인의 눈에서 본 한국의 ‘첫인상’을 그들의 곁에서 실시간으로 담아내는 데에 집중하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특별한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 데에 성공했다. 앞서 언급한 유사한 포맷의 전작들이 이미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거나 관심이 있던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본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던 것에 반해,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우리나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진짜’ 이방인이 한국을 ‘처음’ 만나는 최초의 순간을 함께하는 모습을 그대로 포착해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접근법은 성공적이었고, 최근 방영된 핀란드 편은 케이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시청률 5%를 달성했다. 이 프로그램이 추구한 ‘특별한 신선함’이 대중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비치는 한국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마치 다른 렌즈로 갈아 끼운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방인의 시선이라는 색다른 렌즈를 통해 익숙했던 풍경이 다르게 보이고, 또 그 풍경에 대해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일종의 ‘낯설게 하기’인 것이다.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을 처음 만난 주인공들은 한국이 가진 뜻밖의 것에 감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스키나 보드카가 어울릴 법한 핀란드 인들이 소주보다는 막걸리의 맛에 크게 감동하며 핀란드에 돌아가면 막걸리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는 모습이나, 핀란드의 자연보다 설악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자연의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하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놀라움을 느낀다. 한국을 브랜딩하기 위한 소재로는 당연히 불고기와 비빔밥, 그리고 서울의 명동과 동대문을 최우선으로 꼽던 우리에게 이것은 꽤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국가 브랜딩이 가진 현주소를 되짚는 동시에 앞으로의 보완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깨달음 중에서 가장 새삼스럽고도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아마도 ‘알고 보면 참 괜찮은 우리나라’라는 깨달음일 것이다. 사실 부정할 수 없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는, 우리 것의 가치를 되새겨 보는 일보다는 먼저 남의 것을 동경하고 쫓는 사대주의적 관점이 곳곳에 번져 있었다. 거리 상점들의 간판에는 한글보다 영어를 표기하고, 추석에는 차례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지만 할로윈에는 미국인들의 전통처럼 각양각색의 코스튬을 입고 밤새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다. 이것을 그 자체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것의 가치에 대한 소홀한 고민이 이 사대주의의 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분명한 문제이며, 또 다른 고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색의 피부, 다른 색의 머리, 다른 색의 눈동자를 가진 이 프로그램의 이방인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풍부하고 멋진 역사와 스토리를 가진 나라고, 서울은 알고 보면 세계에서도 가장 거대하며 역동적이고 젊은 도시 중 하나이며, 볼거리와 먹을 거리는 다채롭고 푸짐하다. 대중교통은 손꼽힐 정도로 매우 깨끗하고 빠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고, 통신 속도 또한 세계 최고다. 이들이 느끼는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지레 부정적이었던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멋지다. 이미 우리가 가진 과거와 현재의 가치는 충분했던 것이다.
결국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여태까지 그토록 ‘세계 속의 한국’을 부르짖던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메시지를 선명하게 제시해 준다. 그건 바로 우리에 대한 ‘진짜 공부’이다. 이 프로그램의 MC인 김준현이 패널인 이탈리아인 알베르토 몬디에게 한국 여행 정보에 대한 질문을 한 뒤 머쓱해하며 자기 반성을 하는 장면이 우리의 현재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 대해 바르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알아야 우리를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진리는 또 한 번 너무나 당연하고도 명확해 진다. 우리 이제 정말, ‘있는 그대로’의 한국을 알아가야 할 시간이다. 그토록 ‘세계 속의 한국’은 곧 머지않은 일이 될 테니까.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Todayboda.net, 연합뉴스
김현지 에디터 hyunzi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