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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진한 겨울을 만끽하고 싶다면?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1년 중 평균 73일은 해가지지 않고, 51일은 해가 뜨지 않는 나라. 국토의 10% 이상이 호수로 이루어져있고 그 주변을 감싸며 끝도 없이 펼쳐진 침엽수림을 가진 나라. 고요한 듯 스산한 정취와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나라 핀란드. 그런 핀란드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한 음악가가 있다. 음울한 북구의 정취를 음악에 그대로 녹여내어 가장 핀란드적인 작품을 남긴 그 음악가는 바로 얀 시벨리우스이다.


바로크-고전-낭만시대를 거치면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걸출한 음악가를 배출하며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서양 음악의 중심이 되었고, 그 시대의 음악적 특징들은 유럽 음악의 하나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의 어지러운 정치, 사회적 상황이 이어지면서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기존의 어법들을 깨고 자기의 민족적 특색을 음악에 반영하여 음악적 독립을 추구했던 움직임들이 있었다. 민족주의 음악 또는 국민주의 음악으로 불리는 이것은 제국주의의 확산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 또는 영향력 아래에 있던 동유럽, 북유럽의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노르웨이의 그리그, 체코의 드보르작, 스메타나, 그리고 핀란드의 시벨리우스가 있다. (물론 시벨리우스는 전통적 어법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온음계적인 선율과 조성적인 화음을 사용한 작곡가이지만 작품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발견되며 이를 조화롭게 풀어내어 시적이고 아름답게 승화시키기도 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9살 때, 피아노를 15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한 시벨리우스는 헬싱키 음악원 (現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음악을 공부했으며 제정 러시아의 통치하에 있는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핀란드 고유의 음악적 색채와 민족성을 녹여낸 작품을 다수 작곡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조국인 핀란드를 향한 애국적 찬가라고 할 수 있는 교향시 <핀란디아>가 가장 유명하지만, 그가 작곡한 유일한 협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도 역시 연주회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바이올린의 미감을 가장 잘 살린 바이올린 협주곡

그 스스로도 바이올리니스트를 지망했던 시벨리우스. 그러나 그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을 어려워했다고 한다. 그는 그의 못 이룬 꿈을 헬싱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하며 작곡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그런 이유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특성과 테크닉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시벨리우스는 오직 바이올린만이 표현할 수 있는 기교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여 악기의 색깔과 미감을 가장 잘 살린 바이올린 협주곡을 세상에 남겼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걸작의 탄생

북유럽의 서늘한 정취와 핀란드를 둘러싼 대자연의 생동감과 경이로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20세기 바이올린 협주곡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지만 탄생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작곡 당시에 경제난과 건강의 문제 등으로 시달리고 있던 시벨리우스는 특히 4년 동안 이어졌던, 귀의 통증으로 인해 그 자신도 베토벤처럼 청각을 잃게 될까하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시벨리우스는 당시 유명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윌리 버메스터 (Willy Burmester)를 위해 이 곡을 작곡하고 그에게 헌정하고자 했다. 당초 이 곡의 초연도 버메스터가 협연하는 것으로 예정되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버메스터가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버메스터를 대신하여 헬싱키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수였던 노바체크가 초연 무대에 서게 되었지만 급하게 악보를 받게 된 그는 바이올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기교가 집약되어 있는 이 어려운 이 작품을 100% 마스터하기엔 그 준비기간과 역량이 부족했다. 초연은 실패했고 이 작품을 혹평을 받게 되자 시벨리우스는 악보 초판을 거둬들이고 2년동안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거쳐 1905년 다시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와 카렐 할리르의 독주로 베를린에서 연주된 이 작품은 큰 호평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또 하나의 걸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청자를 스산한 바람이 부는 북유럽 침엽수림으로 이끄는 마력의 곡

1악장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듯한 현악기들의 연주를 시작된다. 피아니시시모의 아주 여린 소리가 새벽 무렵, 고요한 호수 위로 내려앉은 물안개를 연상하게 한다. 이윽고 뒤따르는 솔로 바이올린의 선율은 듣는 순간, 눈 앞으로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핀란드의 광활한 침엽수가 펼쳐진다. 아직 햇빛이 들지 않은 고요하고 적막한 숲속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의 도입부를 지나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점층적으로 고조되다가 마침내 눈보라가 휘몰아치듯 격정적으로 변한다. 매서운 눈바람이 부는 숲 한복판에 거대한 불길이 이는 것 같은 기이한 감정적 경험을 안겨주는 이 곡은 듣는 이를 아주 짧은 시간 만에 핀란드 대자연, 그 신비로운 세계로 이끌어주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졌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격정을 한꺼번에 폭발하듯 쏟아내며 장대하게 막을 내리는 1악장에 이어2악장 아다지오에서는 관악기의 앙상블에 뒤를 따라 덤덤하게 이어지는 중후한 저음의 바이올린의 선율이 북유럽의 서정을 그대로 표현해준다. 관현악이 합세를 하면서 그 규모가 확장되는 듯 하다가 다시 느려지며 애잔한 선율로 끝이 난다. 

  

3악장은 빠른 템포의 스케르초 악장으로 그 첫 문은 팀파니와 현악기의 연주로 시작된다. 일정한 템포로 연주되는 저음은 묵직한 긴장감을 조성해준다. 그 뒤를 이어 바이올린이 등장하면 마치 춤을 추는 듯 3악장의 첫 번째 동기를 연주한다. 이 동기가 지속적으로 반복이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중독성 있는 리듬패턴은 듣는 이도 머릿속으로 되뇌며 독주자의 연주를 따라가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며칠 째 내리는 눈으로 겨울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온 듯하다. 손끝이 시리고 가슴이 아려올 정도로 진한 겨울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작품에 짙게 깔려있는 북유럽의 정서와 대자연의 신비로움을 닮은 선율, 듣는 순간 온몸을 감싸는 청명한 기운이 당신을 핀란드 드넓은 침엽수림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1. 연주: 야사 하이페츠


하이페츠 특유의 차갑고 날카로운 연주는 이 곡과 환상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진짜 손발이 얼얼해질 정도의 시린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원한다면 하이페츠의 연주를 추천한다.

2. 연주 :  정경화


하이페츠와는 달리 좀 더 격정적이고 뜨거운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원한다면 정경화의 연주를 추천한다.


3. 연주 : 빅토리아 뮬로바


1980년도에 시벨리우스 콩쿨에서 우승자이기도 한 러시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는 작품이 품고 있는 기교적 난해함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 낸 드문 연주자로 인정받는다. 1980년대에는 시벨리우스 바협 연주로 인해 뮬로바의 이름에 항상"얼음 아가씨"라는 별명 뒤따라 다니게 되었다.


4. 연주 : 사라 장


시원시원한 보잉과 정확한 음정과 템포로 집중력이 한번도 흐트러지는 법 없이 약 40분에 달하는 전악장을 유려하게 이어나가는 사라 장는 깊은 감동을 준다.

이 글은 아트인사이트 심우영 기자님이 작성해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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