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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으로 떠나다, ‘떠남’을 노래하는 영화

이 영화들을 체크해두고, 아주 가끔 꺼내보며 ‘떠남’에 대한 낭만을 노래하자.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스크린으로 떠나다, ‘떠남’을 노래하

언젠가 만날 도시에게 미리 인사하는 방법으로, 영화를 보는 걸 뽑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통해 피렌체의 붉은 벽돌을 눈에 익혀둔다거나, 영화 ‘코펜하겐’을 통해 코펜하겐의 새벽을 잊지 않고 체크해둔다거나 하는 식이다. 하지만 가끔 도시를 향한 사랑을 넘어, ‘떠남’을 향한 애정을 가지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그 것이 여행이든, 혹은 그저 훌쩍 떠나는 것이든 상관없이, 지금 눌러앉아 있는 이 자리를 박차고 싶어지는 영화. 필자가 꼽은 다음 4편은, 집을 너무나 좋아하는 필자마저도 떠나고 싶게 만들었던 영화들이다. 개중에는 현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도 있고, 새출발의 용기를 알려주는 영화도 있다. 어느 쪽이든 ‘떠남’을 노래하는 영화는 언제나 좋다. 체크해두고, 아주 가끔 꺼내보며 ‘떠남’에 대한 낭만을 노래하자.

한여름의 판타지아

스크린으로 떠나다, ‘떠남’을 노래하

일본의 한 시골을 상상해보자. 조용하고, 잔잔하다. 풍경 하나하나가 아기자기하고, 고요하다. 그 시골거리에서, 바로 어제 본 사람과 애틋한 감정을 안고 걷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생각만해도 두근거린다.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알고 싶은 감정은, 호기심을 뛰어넘어 잠깐의 사랑이라고 믿어지기도 한다.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딱 그런 풍경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여행의 풍경, 그리고 처음 알게 된 사람. 그리고 불꽃. 딱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다음은 유스케의, 혜정을 향한 대사다.

오늘밤에 불꽃놀이 축제를 하는데

같이 갈래요?

여행에 와 만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늦게 만났다’는 생각이 들만큼 사랑에 빠지고 싶어진 유스케와 혜정. 두 사람의 판타지아를 본 순간, 권태로운 현재를 벗어나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진다. 아주 훌쩍, 떠나. 아주 모르는 누군가와.

미드나잇 인 파리

스크린으로 떠나다, ‘떠남’을 노래하

파리로의 여행 중 파리의 옛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면 어떤 기분일까? 예를 들어 헤밍웨이 같은, 그러니까 이제는 사진이나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면 말이다. 이 영화는 그러한 환상에 대한 이야기다. 파리는 지금 그대로도 멋있지만, 황금시대의 파리는 더더욱 동경한다. 교과서에서 마주치던 것들, 그리고 그 것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도시의 환상은 더더욱 부풀어 간다.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그러나 길이 남긴 위와 같은 대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가 베스트의 시기일지도 모른다는 교훈을 남긴다. 우리가 더 알고 싶은 황금시대, 그리고 여행지. 환상도 좋지만 불만으로 넘쳐나는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교훈. ‘미드나잇 인 파리’는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향한 낭만도, 과거에 대한 호기심도, 그리고 현재에 대한 감사함도 채울 수 있는 영화다.

카모메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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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이 영화덕분에 관심 없던 핀란드가 가장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요즘도 헬싱키로 가는 비행기의 가격을 체크해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헬싱키, 그리고 헬싱키에 살고 있는 사치에와 미도리 모두 우리가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요,

여기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곳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

일본을 떠나 굳이 헬싱키에서 일본 오니기리 가게를 연 사치에는 위와 같은 말을 한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떠남’에 대한 낭만은 위와 같은 ‘기분’에 있다. 여기가 아니면, 어딘가로 떠나면, 그리고 그 어딘가라면 잘 될 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가끔 그 기분은 현실이 되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낭만이 된다. ‘카모메 식당’을 본 순간, 항구의 도시 헬싱키로 훌쩍 떠나 소담스런 ‘카모메 식당’에서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백만엔걸 스즈코

스크린으로 떠나다, ‘떠남’을 노래하

만약 인생에 리셋 버튼이 있다면, 리셋을 누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무작정 YES라고 대답하기 어려운 가정이다. ‘백만엔걸 스즈코’는 백만엔이 모이면 무작정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정착 생활을 시작하는 전과자 스즈코의 이야기다. 일종의 도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도피와는 조금 다르다. 스즈코는 약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강했기 때문에 ‘떠나’서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러한 스즈코 본인이 스스로 상처받고, 스스로를 치료하며 더욱더 성장하는, 성장과 변화의 영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인데

그 헤어짐이 두려워서

누나는 무리를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만나기 위한 헤어짐임을 이제 깨달았어.

우리는 지금 이대로 중 좋은 부분을 잃어버릴 것을 걱정해 최악의 상황에도 새롭게 시작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치곤 한다. 그리고는 지금을 떠나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망자라고, 참지 못한 겁쟁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겁쟁이는 새롭게 시작할 용기, 지금의 보금자리를 떠나갈 용기가 없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바로 이 영화를 통해, 스즈코의 멋짐과 우리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나도 어딘가로 떠나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지는, 욕망과 낭만에 젖게 된다.

스크린으로 떠나다, ‘떠남’을 노래하

[이주현 에디터 2juhyeons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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