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에서 벗어나 정겨운 장소를 찾는 그대에게
홍대, 강남, 이태원……. 이 세 곳을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나와 친구의 대화가 타인들의 목소리에 묻히는 곳, 거리를 가득 메운 최신 음악과 클럽 노래들, 가게와 주점을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들. 요즘 단어로 ‘핫’한 분위기가 떠오른다. 그러나 귀를 때리는 노래 속에서 우리는 가끔 조용한 안식처를 찾아 이리저리 나서곤 한다. 항상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살아온 그대, 오늘은 새로운 공간을 찾아 떠나길 권한다.
으리으리한 한옥 건물들이 즐비한 북촌과 다른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 별칭이다. 지리적 위치로 말하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 일대를 의미한다. 3호선 2번 출구로 나와 쭉 올라가다보면 어딘가 정겨운 골목들이 보인다.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붐비는 북촌과 달리 서촌은 조용하고 한적하며, 표지판이 없어 길을 헤매기 일쑤다.
사실 나도 아직 서촌을 방문한 횟수로는 3번째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로 소개하는 것이 어찌 보면 우습지만, 이 글을 읽고 처음으로 방문하는 사람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자를 적어 내려간다.
잠시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첫 번째 서촌 방문은 인왕산 등산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투명우산을 손에 들고 교수님, 친구들과 함께 인왕산을 올랐다. 비 오는 여름날 등산이라니,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 전 버스 안에서까지 다시 집으로 되돌아갈까 생각을 반복했다. 등산로를 개척하기도 교수님이 직접 따주신 산딸기를 먹기도 하며 우리는 무사히 산 아래로 내려왔고, 작은 갤러리에 들려 작품을 감상하다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마지막으로 순댓국 한 그릇씩 싹싹 비웠다. 서촌 골목골목을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비 오는 날 갤러리에 들리면 자연스럽게 인왕산의 추억이 떠오른다.
두 번째 서촌 방문은 “서촌을 마스터하겠어!”라는 마음으로 찾았다. 사전에 인터넷을 뒤적이며 어디를 방문해야 하는지, 어디에 그 유명한 ‘맛집’이 위치해 있는지를 철저하게 검색하고 찾았다. 코코넛 빙수로 유명한 카페도 들리고, 옛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옥인오락실도 기웃기웃 거렸다. 아이유 앨범사진으로 유명한 데오서점도 보았다. 많이 찾아보고 만난 서촌은 풍성한 볼거리가 있었지만, ‘서촌’ 그 자체의 느낌보다는 그저 ‘인터넷에 본 곳을 실제로 보았다.’ 정도에 그쳤다.
최근에 9년 지기 친구와 함께 대림미술관에 가기 전 밥을 먹기 위해 서촌에 들렸다. 좋아하는 동네라고 서촌에 처음 와보는 친구에게 자신있게 소개하며 앞장서 걸었다. 하지만 그새 길을 잃었고 빙글빙글 헤매다가 골목 안쪽에 위치한 목적지를 발견했다. 그곳에서 만난 ‘서촌’은 어딘가 먼 조상들의 공간처럼 다가온 북촌과는 달리 어릴 적 내가 사촌들과 뛰어놀던 공간을 연상시키는 매우 소박하고 정겨운 곳이었다. 여름에 카레집 아르바이트를 잠깐 하면서 사랑에 빠진 카레를 한 숟가락 푸욱 떠서 한 입에 넣으니 바깥의 추운 공기는 모두 사라지고 따뜻한 공기만 입 안에 맴돌았다. 나의 세 번째 서촌 방문은 매우 잠깐이었지만 강렬했고, 손이 시려웠지만 포근했다.
1. 프렌차이즈가 아닌 소박한 음식점들
맛집을 검색하다보면 같은 음식점이지만 다른 장소에 위치한 곳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는 항상 특별한 어딘가에 갈 때면 생각한다. “그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어!” 서촌에 간다면 이러한 고민은 한 번에 해결이다. 경복궁의 서쪽 일대에는 프렌차이즈 가게의 입지를 법으로 금지하였다. 서촌에 위치한 음식점들은 모두 개인이 운영한다. 때문에 인테리어도 모든 가게들이 제각각이고, 같은 가정식처럼 보여도 모두 다른 개성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만든다. 어느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도 그 곳은 여러분의 눈과 코와 입 모든 감각을 만족시킬 그림이 펼쳐질 것이다.
2. 큰 길이 아닌 골목 구석구석에 위치한 장소들
사실 서촌의 큰 길에는 무언가가 없다. 그저 휑하다고 표현해야하나. 샛길로 빠지고 빠지다보면 예쁜 꽃들을 만날 수 있고, 작은 지하 상점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고, 오락기 앞에 앉아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손을 움직일 수 있다. 통인시장을 걸어가며 맡는 기름떡볶이의 매콤한 냄새와 눈을 사로잡는 잡동사니들 또한 재미의 요소중 하나이다. 지도를 켜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길을 걸어보자.
3. 마음에 여유로움을 선물하는 카페
맛있는 밥집 못지않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위치하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고, 혼자여도 좋다. 내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저 혼자라면, 평소 읽고 싶었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집중하지 못한 책을 한 권 손에 들고 와 음료를 홀짝거리며 한 단어 한 문장 읽어 내려가면 된다. 잠시 숨을 돌릴 때는 창 밖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마치 내 집같은 인테리어를 스윽 돌아본다면, 그것이 바로 '힐링'이 된다.
"젊음도 자신감도 아주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것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어니스트 헤밍웨이, <깨끗하고 밝은 곳>에서
에디터 박이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