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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미디어와 자아

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0. MEDIA ATTACK

‘미디어문화사’ 수업 첫 시간이었다. 강의 이름 하나에 묵직한 키워드가 세 개나 들어있었고, 셋 모두 대화에서 쉽게 오르내림에도 정작 정의하기는 어려운 것들이었다. 어디에나 있으며 손에 잡히지는 않는 것. 미디어와 문화 그리고 역사 모두가 그런 듯 했다. 심지어 미디어와 문화라는 단어에는 최우선으로 관심을 가져왔음에도 섣불리 개인적인 견해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첫날부터 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 시작 시간이 한참 지연되었다. 당황해 허둥지둥하던 조교를 바라보던 교수님께서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런 상황 하나까지도 다 의도한 거예요. 우리가 앞으로 함께 나누고 공부할 내용들과 다 연결되거든!”

 

기술의 개입이 당연시되는 시대. 매체가 삶을 좌우하는 시대. 그 말에 1년 전 마음에 담아둔 드라마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1. BLACK MIRROR

영국의 SF 드라마 ‘블랙 미러’.

 

직역하면 검은 거울을 의미하는 ‘블랙미러’는 핸드폰,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 화면이 꺼진 상태를 말한다. 동시에 그 화면은 색이 보여주는 대로 어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미래의 기술이 이끌어낼 어두운 미래, 어쩌면 머지않은 현실이랄까. 현재 총 시즌 4까지 방영되었으며 시즌 3부터는 넷플릭스에서 제작해 한국에서도 화제를 이끌었다. 수많은 스토리가 미래를 경고하지만 시즌 3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상대적으로 ‘현재’ 우리의 모습과 상당 부분 겹치는 내용을 담는다. 소재는 SNS.

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2. NOSEDIVE : 추락

칙칙하고 어두운 화면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였던 타 시즌과는 달리, 맑고 부드러운 핑크 계열의 화면으로 시작된다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시즌 처음부터 정주행한 시청자들이라면 누구나 ‘아, 다르다.’ 할 만한 분위기. 하지만 40분 남짓한 한 편을 다 보고 나면 인물들뿐 아니라 화면 속 다정한 컬러에도 눈을 흘기게 될 것이다. 엔딩에서는 그 분홍빛마저 거짓 웃음과 꾸며낸 친절이 칠해진 모양새로 보일 테니 말이다. 필자의 경우 파스텔톤 색감과 가식적인 인물들의 연결고리에서, 영화 ‘가위손’에서 에드워드를 대하던 마을 주민들을 상징하는 컬러가 떠올랐다.

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 영화 '가위손'의 파스텔톤 색감

3. 별점 라이프

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타인의 평가로 자신의 가치를 정의 내리는 사회. 해당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5점 만점의 별(☆☆☆☆☆)은 페이스북 ‘좋아요’나 인스타그램의 하트 개수를 떠오르게 한다. 일면식도 없는 행인을 향해서도 휴대폰을 겨누어 별을 부여할 수 있으며, 남이 매긴 점수가 곧 인생 순위로 직결하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캐릭터들은 ‘착한 사람’과 ‘잘난 사람’을 병행하기 위한 가면을 쓴다.

 

주인공 '레이시'도 4.2점으로 상류층을 바라볼 수 있는 부류에 속한다. 별을 위해 웃음을 팔고, 높은 별점을 가진 인맥을 가장 중요시하며, sns로 이미지메이킹을 시도한다. 작품 속에서는 점수가 복지와 혜택, 처벌의 기준까지 결정한다는 점에서 극적이지만, 제시된 인간의 모습만큼은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얼마 전 sns에서 ‘자신과의 카톡에서는 매일같이 일상을 욕하는 친구가 인스타그램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파이팅!”이라는 문장을 올리는 모습에 소름 돋았다’며 웃는 유머 글을 보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유머와, 작품 속 비극, 그리고 현실 모두가 사실상 동일한 메시지를 쥐고 있다. 미디어의 지배가 나다운 인생을 가린다는 것.

4. 어두울 자유

작품 후반부에 레이시가 만난 1.4점의 할머니는 한없이 무례하다. 서슴없이 욕을 하고,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으며, 얼굴에는 미소조차 걸려있지 않다. 레이시 또한 그녀의 행실을 보면 1.4점이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40분의 영상이 보여주는 평가의 세계에서 무가치한 인간으로 치부되는 할머니는, 사실상 평가받는 사회에서 탈출에 성공한 캐릭터다. 우리는 누구나 어두울 자유가 있으며,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 아니, ‘나’로 태어났다면 ‘나’를 위할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답게 살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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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 : 나를 잃는 법

한 학기 동안 미디어와 문화를 아우르는 공부를 해나가기로 했다. 아직 질문과 답 그 어느 것도 정리하지 못한 초짜지만, 파급력 있는 미디어가 필수적으로 던져야 할 메시지, 조성해야 할 문화는 이런 것이 아닐까 : 맨발로 걷기, “나로 살기”.

 

김예린 에디터 domine65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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