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2NE1과 트와이스 사이에서 길을 잃다
2NE1의 노래, 트와이스의 가사 속 블랙핑크는 어디로
지난 6월 22일 블랙핑크는 신곡 '마지막처럼'을 발표했다. 지난 7월 2일 인기가요에서 첫 1위를 거머쥐었고, 앞으로도 여러 번 1위 후보에 거론되거나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그만큼 노래는 중독적이고 신나고, 터지는 곳이 있는 노래다. 쉽게 소비되기에 딱이고 딱 들었을 때 2NE1의 향수를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지막처럼'의 블랙핑크는 실망스럽다. 중독성있는 노래, 상위권 음악랭크에도 불구하고 블랙핑크의 음악 스타일, 가사, 패션 스타일링은 제 색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래, 2NE1 같은데?
노래는 분명 중독성있다. 몇 번 듣지 않아도 '마-마-마지막처럼'을 되뇌이게 하고, 후크에 들어가기 전 'Won't you set me free'에서 EDM으로 치솟는 박자는 듣기만 해도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2NE1, 빅뱅 등을 프로듀싱한 바 있으며, 지금까지 '휘파람', '붐바야', '불장난'을 함께 작업한 TEDDY의 프로듀싱은 블랙핑크의 노래에 YG의 색을 짙게 그려내면서, 블랙핑크를 제2의 2NE1처럼 만들고자하는 YG의 목표까지 슬쩍 드러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블랙핑크의 색은 무엇인가?
YG 대표 걸그룹이라는 자체 설명처럼 블랙핑크는 해체한 2NE1을 잇는 YG 걸그룹의 대표 주자다. 하지만 2NE1의 후발주자임은 곧 2NE1과의 비교 대상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2NE1은 가요계에 획을 그은 걸그룹이다. 청순-발랄-섹시 사이에서만 존재하던 걸그룹이 YG의 특기인 힙합과 소울을 베이스로 CL의 랩핑, 박봄 특유의 음색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라와 민지도 중요한 역할이었지만 2NE1에서 두드러진 것은 박봄의 음색과 CL의 랩이었다고 생각한다.)
2NE1은 아쉽게 해체했고 사람들은 여전히 2NE1의 음악 색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은 이를 모를리 없는 YG가 블랙핑크에도 이를 적절히 차용해보고자 노력한 결과물이리라. 리사의 몰아치는 영어 랩, 로제의 음색은 CL과 박봄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음악의 전체적 색까지 비슷하다. '마-마-마지막처럼, 마-마-마지막처럼, 마지막 밤인 것처럼' 부분은 자연스럽게 2NE1의 'GO AWAY' 속 '지금 적응이 안돼 어-어-어지러워 왜'를 연상시킨다.
물론 대중은 좋아한다. 대중이라고 타자화하는 것 같지만 2NE1의 노래를 좋아하는 필자 또한 그들의 느낌을 그리워하며 '마지막처럼'을 흥얼거리곤 한다. 하지만 그룹에게 색깔, 정체성은 정말 중요하다. 어떤 그룹인지, 이들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 수 있어야한다. (조금 예외의 경우가 소녀시대다. 매번 컨셉이 달라지지만 이들은 노래 색깔보다는 안무에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8-9명의 군무.) 에이핑크는 순백색 혹은 옅은 핑크라면 여자친구는 정직한 남색의 느낌이고, 오마이걸은 형형색색의 원색 느낌이다. 하지만 블랙핑크는? 블랙과 핑크 두 가지의 색이 조합된 이름이지만 그들의 음악은 그저 2NE1 같을 뿐이다. 같은 프로듀서, 같은 회사 소속이다보니 어쩔 수 없는 특유의 느낌은 있겠지만 지금과 같은 행보라면 영원히 '좀 더 예쁜 2NE1', 더 심하게는 '짭' 2NE1으로 불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흥행성은 어느 정도 확보했다. 이제 대중은 블랙핑크가 누구인지 알고, 나아가 몇몇 멤버들의 이름도 알려지고 있다. 음악이 뒷받침될 차례다.
가사, 또 애태우고 기다려? ...TWICE?
'마지막처럼'의 노래가 2NE1 같다면, 가사는 TWICE 같다. 좀 더 솔직하고 격한 트와이스? 어떤 음악을 설명할 때 무언가에 비교하며 설명하는 것은 별로 좋은 설명방식은 아니지만 쉽게 말하자면 그런 느낌이다. 화자는 누군가를 '애타게' 좋아하며, 쉽지 않은 당신에게 끌린다. 자신의 세상은 그대 하나 뿐이다. 결국 날 터질듯 안아달라고 말한다. 내일 따위는 없는 것처럼.
문제점을 확인했는가? 수동성의 문제다. 이쯤되면 한국 걸그룹은 스스로 다가설 줄 모르는건지, 스스로 다가가서는 안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좋아하는 감정을 배제하고는 음악이 될 수 없는 건지. 특히나 그 감정이 '너무 좋아서 애가 타고, 날 빨리 사랑해줘' 기다리는 형태의 감정이 아닐 수는 없는 건지. TWICE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내 맘 모르는 너는 너무해! 너무해!' 느낌의 귀여운 애교를 부린다. SIGNAL은 거의 애교 종합세트다. 조금 과장하자면 시그널의 안무는 내내 하트를 그리다가 끝난다. 대부분의 걸그룹이 그렇다. 트와이스의 하트가 부러웠던 것인지 1절에서 지수는 '넌 한줌의 모래같아'라는 가사에 양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내민다. 대체 연관성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표현했다는 변명은 듣고 싶지도 않다. 적당한 애교에 불과하다.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2NE1은 'I DON'T CARE', 'GO AWAY' 등의 이별 노래를 즐겁게 풀어놓은 적도 있었고 MISS A는 '남자없이 잘살아'라고 선포하기도 했다. 씨스타는 'One More Day' 뮤직비디오에서 데이트 폭력의 문제를 다룬 적도 있다. 굳이 사랑 얘기를 하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의 감정에서 가장 크게 높낮이를 가지는 감정은 사랑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모든 사랑의 태도가 같을 필요는 없다.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유혹해도 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변심에 아파해도 되고, 떠나가도 되고, 복수하고 저주해도 된다. 하나같이 애교를 부리며 사랑을 애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복, 꼭 입어야 했니? 꼭 입혀야만 했어?
교복 차림의 블랙핑크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타일링이다.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는 멤버들이 신전을 연상케하는 세트에서 교복을 입고 춤을 추며 시작한다. 이 때 교복은 아주 짧아서 한 쪽 다리는 드러내고 가터벨트 혹은 허벅지에 차는 총을 연상시키고 풀어헤쳐진 넥타이와 제멋대로 걷어올린 소매로 스타일링된다. 모 매체의 기사에서 멤버 리사는 한국 교복을 입어보고 싶었다며 좋아했지만, 필자의 생각으로 블랙핑크에게 교복을 입힌 것은 대단한 실수다.
교복 스타일의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비슷한 스타일 안에서 조금씩의 변주를 통해 각자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통일감을 주어서 군무를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엑소의 으르렁이 대표적이다) 둘째, 기존의 '소녀', '소년' 느낌을 강조하며 '학생'으로서의 순수함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여자친구 - 시간을 달려서)
사복 차림의 블랙핑크 |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은 어떤 점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를 직접 보면 확인할 수 있겠지만 멤버들은 좀처럼 소화하기 힘든 형광색과 원색의 옷, 화려한 프린트, 스포티한 의상들을 찰떡같이 소화해낸다. 게다가 이 의상들은 블랙핑크 특유의 화려함과 발랄함, YG의 특색을 잘 나타내주기도 한다. 멤버들은 교복보다 사복에서 훨씬 더 매력적이다. 모든 걸그룹이 이런 의상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핑크 멤버들이기에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매력을 감소시키는 교복을 입힌 스타일링을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모든 멤버는 21살 이상의 성인이다. 또한 가사에서는 날 꽉 껴안고 키스해달라고 말한다. 가사와 교복이 맞는 매칭인가? 멤버들의 나이와 교복은 맞는 매칭인가? 어떤 것도 들어맞지 않는다. 군무가 돋보이는 팀도 아니다. 가사와 혹은 컨셉과 맞는 곡도 아니다. 애매하게 교복을 변형해서 판타지에 끼워맞추었을 뿐이다. '섹시한 교복'이라니. 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컨셉인가.
이 모든 마이너스 요인에도 불구하고 블랙핑크는 여전히 차트 상위권에 랭크하고 있고, 앞으로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낼 것이다. 이는 전부 멤버들의 덕이다. 멤버 각자가 매력있고 실력이 있기 때문에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다. 조금의 도움이 된 것은 중독성있는 곡 정도? 하지만 그 중독성은 블랙핑크의 색을 앗아갈 것이고, 가사와 스타일링도 마찬가지다. 이젠 블랙핑크의 개성을 찾을 차례다. 2NE1을 따라가고 싶다면 그들의 도전정신, 독립적인 정신을 따라갔으면 좋겠다. 애교를 부리지 않고도 인기가 많은 걸그룹을 보고 싶다. 로제와 제니의 음색, 지수의 비주얼, 리사의 랩까지. 멤버 각자의 매력과 실력은 충분하다. 그래서 다음 블랙핑크는 여전히 기대할 만하다.
사진 블랙핑크 '마지막처럼' MV
[김나연 에디터 sunshine689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