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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부엌에서 애틋해지는 음식, 그리고 나

유명 요리연구가이자 요식업자 백종원이 크리에이터로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백종원의 요리비책’이 화제다. 특히 채널을 개설하자마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3일 만에 100만 명에 달하게 된 구독자 수가 대두되었는데, 10만 명 이상이 구독한 채널에 수여되는 실버 버튼과 100만 명 이상이 구독한 채널에 수여되는 골드 버튼을 동시에 배송받는 흔치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7월 20일 현재 해당 채널의 구독자 수는 약 230만 명에 달한다.

 

폭발적인 인기와 동시에 그것이 콘텐츠의 독자적인 질이 아닌 그의 인지도와 매체를 통해 알려진 전문성이라는 외부 요인에서 기인했다는 지적과 함께, 기본적으로 관심 경쟁을 핵심으로 하는 유튜브 생태계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도 일었다. 그가 유명인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이 정도의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의 생태계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지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백종원의 요리비책’에 쏟아진 관심은 지극히 당연하다. 자신이 행사하고 있는 영향력과 그에 따라 자연히 맡겨진 사회적인 역할을 탁월하게 활용하며 생태계 내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요구에 적확하게 부응한 모범사례이기 때문이다.

부엌의 연대

‘백종원의 요리비책’은 어떻게 200만 구독자를 모을 수 있었을까. 앞서 언급한 외부적인 요인을 차치하고 내부만을 들여다보더라도 성공 요인은 명확하게 자리하고 있다. 콘텐츠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백종원식 요리법을 소개하는 ‘쿠킹로그’ 및 ‘백종원 레시피’, 식당에서 유용하게 활용 가능한 대용량 조리법을 소개하는 ‘100인분 만들기’, 그리고 요식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있었던 질의응답을 공유하는 ‘장사이야기’로 구성된다. 단순하면서도 개성 있는 콘텐츠들은 모두 ‘요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명확한 전달 대상을 설정한다는 공통점 안에 묶인다.

 

다양한 삶의 맥락에서의 음식을 제시하는 백종원의 콘텐츠는 시청자를 군침을 흘리며 바라보기만 하는 수용자가 아닌 각자의 의식주를 꾸려나가는 삶의 주체로 가정하여 부엌에 위치시킨다. 이를테면 ‘쿠킹로그’나 ‘백종원 레시피’에서는 집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싶은 사람과 누군가에게 대접하기 위한 요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모두 도전할 수 있는 요리를 제시한다.

 

‘100인분 만들기’는 식당에서의 대용량 조리에 처음 도전하는 초보자들을 위한 것이며, ‘장사이야기’는 경험이 축적된 노하우를 원하는 요식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것이다. 이뿐인가. 올해 양파가 풍작을 맞아 값이 폭락하자 양파를 이용한 요리법을 시리즈 형식으로 공개한 것에서는 생산 대비 부족한 소비량에 시름을 앓고 있는 농가에까지 미친 예리함과 세심함이 엿보인다.

 

백종원은 여기서 상생의 가능성을 보았다. 양파를 대량으로 볶아내어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면서 시청자에게 ‘꿀팁’을 주는 동시에 양파 소비를 촉진하게 함으로써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였다. 음식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요구사항을 유기적으로 반영하여 각자에게 이득을 주는 동시에, 요리의 보편성과 일상성을 환기하며 요리를 단순히 배고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닌 나 혹은 누군가를 위한 특별한 순간으로 재정의하였다. 양파를 볶는 사소한 행위를 통해 시청자는 음식을 둘러싼 생태계를 인식하게 되며 그 선순환에 기여하는 주체로 서게 된다.

부엌의 확장

백종원은 각 부엌에 있는 사람들을 잇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부엌을 확장하여 기존 부엌에 없던 주체를 들이기도 한다. 중년 남성인 그는 남성, 특히 남편이나 아빠의 공감을 구하며 자연스레 그들을 요리의 주체로 설정한다. 이를테면 “아버님들, 여행가실 때 곰탕 많이 끓여놓으시잖아요”라며 기존 성역할을 가볍게 비트는 멘트를 하는 식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나 ‘올리브쇼’, ‘강식당’ 등 요리하는 남성의 모습이 이미 매체를 통해 수없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종원의 주체 확장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그것이 전문 기술로서의 요리와 가사로서의 요리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TV에 나오는 요리하는 남성들은 전문직 요리사거나 요리를 해보지 않아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며 성장해나가는 천방지축 초보자의 모습으로 주로 비친다. 그러는 동안에도 여전히 가사로서의 요리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내맡겨진다. 여성이 만든 요리는 여성은 절하지 못하는 제사상에, 여성은 앉지 못하는 큰 상에, 여성이 먼저 숟가락을 들면 안 되는 자리에 올려지며 누군가에게 ‘바쳐지기’ 일쑤다.

 

그러나 백종원은 전문 요리사나 도전자가 아닌 가사로서의 요리를 하는 남성상을 비춘다. 그곳에는 가사로서의 요리가 필수가 아닌 여성이 존재한다. 요리를 하는 나 자신은 요리가 누구의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요리는 더욱 소중해진다. 백종원의 확장된 부엌에서 요리는 특별하고도 능동적인 행위가 된다.

부엌의 동지

‘백종원의 요리비책’은 구독자와 제작자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으며 함께 채널을 꾸려나가는 유튜브 플랫폼의 특성까지도 파악했다. 백종원은 시청자를 우리 ‘팀원’이라고 칭하며 친밀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음식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향해 역동적으로 전진하게 한다. 더 나아가 친밀한 관계를 위해 필요한 서로 간의 역할 정의 역시 매우 명확하다. 백종원은 채널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자신이 전문 요리사보다 뒤떨어지는 요리 실력을 가졌다는 것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분명하고 솔직하게 밝히며 시청자로부터 같은 팀으로서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끌어낸다.

 

그렇다면 '팀원‘은 어떻게 정의될까? 영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 중 하나인 ’(이 재료는) 없어도 된다‘는 말에서는 팀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느껴진다. 팀원의 기호를 폭넓게 존중하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알아챈 결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최상의 맛을 내는 것보다 있는 재료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더욱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백종원은 알고 있다.

 

그는 비싸고 생소한 재료들은 없어도 된다고 시원하게 밝히면서 기호에 맞게 추가해도 되는 재료를 알려준다. 요리에의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팀원‘의 영역을 온전히 보존해주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식업 기업인을 만나면서도 시청자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 같은 팀원이자, 동지이기 때문이다.

맛있게 드세요

사실 유튜브에는 이미 전문적인 음식 유튜브 채널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아마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백종원의 채널은 없었거나,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백종원의 요리비책’은 생태계 파괴가 아니다. 이미 레드오션인 시장을 조사하여 수집된 데이터를 자양분으로 삼은 다음 본인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미하여 경쟁력을 갖춘 것뿐이다.

 

'팀원‘으로 호명되는 시청자는 각자의 요구를 찾아 떠난 곳 끝에서 백종원을 만났을 뿐이다. 서로의 관심과 요구가 교차되는 곳에서 요리는 더욱더 풍부한 맥락을 함의하게 되었고, 따라서 풍부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맛있게 드세요.” 레시피를 소개할 때마다 마무리 멘트로 등장하는 이 말을 좋아하는 팀원들이 많다. 나 역시 좋아한다. 백종원의 음식에는 선의가 있다. 그게 양파 농가를 향한 것일 수도, 외식업 종사자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영상을 보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끼 식사 맛있게 했으면 좋겠다는 사소하면서도 애틋한 선의가 와닿을 때 나는 겁 없이 부엌으로 나서게 된다.

 

오늘도 나는 백종원의 유튜브를 보며 나를 위한 메뉴를 짠다. 백종원이 정의한 부엌에서 연대하고, 확장하고, 서로를 동지 삼으면서 ‘맛있게 먹는’ 한 끼 식사의 기쁨을 누린다. 백종원의 부엌에서 음식, 그리고 내가 더욱 애틋해지는 이유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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