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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일상의 오브제가 알려주는 우리의 모습

사비나 미술관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Prologue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꽃을 건네는 마음(Made for Each Other)

필자에게 테리 보더 작품의 첫인상은 '우와' 였다. 식빵에 팔다리가 있는 모습을 보곤 처음에는 그림인가 싶었는데 정말 식빵에 팔다리를 달아 찍은 사진이었던 것이다. 딸기 잼이 발려진 빵과 땅콩 버터가 발려진 빵이 서로 마주 보고 꽃을 주고있다. 먹기만 했던 맛있는 식빵이 잼을 바르고 고백하는 장면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머리 속에서 '새로운 세계!' 라는 폭죽이 마구 터졌다. 그러고 나서 이 예술가의 작품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다. 테리 보더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테리 보더(Terry Border)의 벤트 아트를 소개하는 [테리 보더 -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전시회는 사비나 미술관에서 10월 13일 부터 12월 30일까지 열린다. 넉넉한 기간동안 열리는 만큼 많은 이들이 이 전시회를 통해 그의 작품에 담긴 행복과 즐거움 그리고 작품의 소통으로부터 얻는 공감으로 읽어가는 메세지를 향유하길 바라며 이 글을 시작한다.

"작품만으로도 이토록 즐거운 전시회는 처음이었다"

벤트 아트(Bent Art) *bent - 구부러진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너무 늦은 만남(Belated)

: 사물에 생명력을 부여해 의인화하는 기법은 예술분야에서는 익숙하지만 사물의 특징을 파악한 후 매일매일 철사를 접고 구부려 인격화된 캐릭터를 창조하는 테리의 벤트 아트는 오직 그만이 구사할 수 있는 참신하고 독창적인 작가만의 전략이다.

 

-전시 설명 중

작품에 담긴 빵, 립밤, 과일, 계란 등의 주인공들은 이미 우리가 살아오며 수없이 보아온 것들이다. 너무 익숙해서 없어지는 것을 상상하기 조차 힘든! 이처럼 익숙한 소재로 부터 얻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테리 보더의 작품은 유쾌하게 우리의 일상과 삶을 비춘다.

 

사물에 철사로 팔과 다리를 붙여주었을 뿐인데 사물은 하나의 인격이 되고 감정과 표정을 품는다. 우리에게 단지 '익숙한 사물'에서 순식간에 그들만의 세계가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계를 어렵지 않게 이해 할 수 있다. 사물의 표정이 드러난 것도, 특별한 설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이처럼 테리 보더가 만든 작품의 세계는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가고 소통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작품을 만났을 때 감각하는 이 느낌은 전시를 감상하는 동안 다음 작품을 향한 흥미와 기대를 품게 해줬고, 작품을 깨닫는 순간 공감되는 스토리로 부터 얻는 즐거움은 웃음을 나오게 해주었다.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우편 주문 신부(Mail - Order Bride) *전시회에서 필자가 찍은 사진입니다

처음엔 레몬이 레몬즙을 감싼 포장을 벗기는 모습에 살짝 갸우뚱 했었다가도 작품 제목을 보고 단번에 이해해 버렸다. 그리고 웃어버렸다. 다시 작품을 보니 주소지에 적혀있는 Lonely 라는 단어가 왜이리 유쾌하면서도 아련해지는지. 외로웠던 레몬은 결국 '가짜 레몬 신부'인 레몬즙을 주문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느낄 때 자신의 빈 마음과 공간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채우는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공감되는 작품이었다.

 

어쩌면 단순하게 요즘 레몬에 빠져있는 본인으로선 사랑스러운 레몬이 팔다리를 달고 주인공으로 나타나니 더 반가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이 테리 보더 작품에 주인공으로 나타난다면 작품에 더 쉽게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행복과 함께 웃음 가득 머금고 사랑으로서 빠져버리는 것이다.

 

비주얼 스토리 텔링(Visual Storytelling) & 블랙유머(Black Humor)

 

: 테리보더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 소통 방식 중 하나로, 시각적 이미지를 사용해 메세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인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작가다. 자신의 경험담, 사물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한 편의 상황극처럼 연출해 비주얼 스토리텔링으로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블랙유머를 사용해 감상자의 의표를 찌르는 기법으로 전환시킨다. 즉 블랙유머를 삶의 부조리를 고발하거나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한다.

 

중요한 것은 그 세계에서 우리, 사람의 모습은 본다는 것이다.

 

작품에서 감각한 이해와 공감은 나의 모습을 비추어 바라보는 순간을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준다. 무엇보다 사물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우리에게 테리보더가 알려주는 작품의 주인공과 사람 사이의 공통점이 안겨주는 인상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까발리기(Exhibition)

땅콩 한 개가 스스로 껍질을 반으로 갈라 다른 땅콩에게 알맹이를 보여주는 '까발리기'는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지 못해 억울해하는, 또는 '배째라'식 인간세태를 절묘하게 비꼬는 블랙유머의 정수를 보여준다.

 

- 작품 설명 중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테리 보더의 작품들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 그 이상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지어내는 웃음은 언제까지나 순수하게 즐거움 그 자체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볍게만 지나칠 수 없는 우리 일상에 숨겨진 어쩌면 숨기려는 우리의 모습도 테리 보더는 그만의 재치있는 작품으로 담아냈다. 무거운 주제를 오히려 유쾌하게 비틀어내서 투영한 그의 작품을 통해 얻는 공감은 우리에게 삶의 모습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건네준다.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전시회에서 필자가 찍은 사진입니다

전시회에는 작품을 실재로 연출한 오브제들도 작품 옆에 자리잡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이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느낌을 다시 깨닫게 해주면서도 그들의 세계를 찬찬히 엿보는 느낌을 선물해 준다.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포옹(Sandwich Cookies)

"저는 온갖 종류의 음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어요. 이 작업의 가장 큰 장점은 사진을 찍고 난 후에 그것들을 먹을 수 있다는 거죠. 두 개의 과자가 포옹하는 순간을 담은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리게 해요. '사랑이란 인간과 인간을 결합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두 사람을 한 몸으로 만들어 최초의 몸을 찾으려는 갈망입니다. "

 

- 테리 보더

전시회에서 그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데 작업실에서 작품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에서 가득 어려 있는 행복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 영상일 뿐인데 나도 모르게 가득 미소를 띄우면서 그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예술가가 작품을 떠올리고 이를 실현시키기의 까지의 과정이 행복하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행복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자신의 일을 완전히 사랑하는 것이 쉬워보이지만서도 결코 쉽지 않음을 종종 느끼기 때문에. 즐거웠지만 한 편으로는 글씨과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는 나에게 하나의 질문을 안겨주는 테리 보더 작가였다. 또한 나에게 이런 생각까지 오게 된 이유도 전시를 보는 내내 테리 보더의 작품들 속에서 행복을 가득 느꼈기 때문이라 의심치 않는다.

 

Epilogue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EAT PLAY LOVE

 

가장 익숙하고 쉬운 단어지만 가장 행복한 단어.

 

라고 전시를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가 작업을 하며 품었을 이 세가지 단어들을 전시를 감상하는 시간 내내 느꼈었기 때문이다. 먹고 즐기고 사랑하라. 이 단어들의 만남을 가장 재치있고 멋지게 표현한 예술가는 테리 보더라는 공식이 마음에 자리잡을 만큼.

 

어쩌면 우리가 잊고 지나쳤을 일상의 '먹고 즐기고 사랑하는' 순간을 테리 보더의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나고 기억하는 소중한 순간이 될 수 있는 전시회이다. 또한 단순히 작품에서 넘치는 즐거움과 행복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 담겨있는 메세지를 읽으며 사색도 이어나가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즐겁고 재치 넘치는 전시회를 찾고 있다면 이 전시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작품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전시회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혹시 아직 전시회라는 문화가 어색한 이들이 있다면 테리 보더의 전시회가 좋은 첫걸음이 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전혀 어려움 없이 쉽게 작품에 다가가고 공감하고 소통 할 수 있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테리 보더의 작품과 만날 수 있는 전시회 기회를 많은 이들이 향유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오예찬 에디터 77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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