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형태, 사랑의 형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을 해 본 사람은 각자 상대방을 사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상대의 외모가 맘에 들었을 수도 있고 상대의 성격이 좋았을 수 있다. 심지어 재력 역시 속물이라고 생각될 지 모르지만 그것이 사랑을 할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그 상대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괴생명체라면 당신은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가?
판의 미로, 퍼시픽 림으로 유명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는 말을 하지 못하는 청소부 엘라이자와 바다에서 살았던 미확인 괴생명체가 서로 교감하며 사랑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기이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회가 정한 '비정상과 결핍 상태'가 정말로 '정상과 완전한 상태'와 비교해서 덜떨어지고 미개한 지, 그 '정상과 완전한 상태'의 존재가 정말로 그러한 지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1. 우리는 불완전하다. 하지만...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눈빛이에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작품의 배경은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이 서로 냉전상태이며 우주 산업이 막 시작될 때 쯤이다.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농아(귀가 들리지만 말을 하지 못한다)인 청소부 엘라이자. 그녀는 가난한 화가 자일스와 살며 입담 좋은 청소부 동료인 젤다와 함께 일하며 풍요롭지는 않지만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연구센터의 비밀 연구실에 괴생명체가 하나 들어오면서 그녀의 일상은 완전히 흔들린다.
처음보는 괴생명체는 말을 하지 못하며 어류와 파충류를 합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밀 연구실을 청소하던 엘라이자는 낯설지만 어딘가 자신과 닮은 듯한 그의 모습에 끌려 계란 한 알을 시작으로 음악과 탭 댄스 등 수화와 몸짓과 표정으로 교감한다. 그렇게, 말을 하지 못해 덜떨어진 사람 취급받는 엘라이자와 외관만으로 짐승 취급 받는 괴생명체는 사랑을 시작한다.
괴생명체는 엘라이자가 인간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인지 알지 못하며 관심도 없다. 심지어 그녀가 연구소에서 학대를 하며 자신을 실험체로 쓴 인간들과 같은 종족인데도 자기에게 보여준 관심과 사랑만을 믿는다. 엘라이자의 경우도 역시 괴생명체의 외관 같은 것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다. 둘은 정말 있는 그대로 서로를 봐 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영화 내에서 불완전한 자 취급받는 존재는 이 둘 뿐만이 아니다. 위 사진의 남자, 화가이자 엘라이자의 동거인인 자일스는 동성애자이다. 지금이야 동성애자 박해가 눈에 띌 정도는 아니라지만 영화의 배경은 60년대이다. 자일스는 자주 가던 가게의 남자 점원과 서로 얘기가 통한다는 이유로 친해지는데 점원은 자일스가 동성애자인 것을 알자마자 나가달라고 한다. 점원의 눈으로 봤을 때 자일스가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고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도 동성애자라는 '결함' 하나로 자일스는 불완전한 사람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엘라이자의 동료인 젤다 역시 흑인이라는 이유로 백인 권력자에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위치에 있어야 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편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그의 뒤치닥꺼리를 해줘야 한다. 그녀가 동료인 엘라이자를 끔찍이 생각하며 쾌활하고 정의로운 사람인지 세상은 관심이 없고 그녀는 그저 60년대 흑인 여성일 뿐이다.
농아, 동성애자, 흑인, 그리고 괴생명체... 사회가 볼 때 불완전한 이들은 사실은 가장 '인간적인' 자들이다. 자일스가 엘라이자에게 베푸는 배려와 공감과 믿음, 젤다와 엘라이자 사이의 동료애와 신뢰, 그리고 엘라이자와 괴생명체의 플라토닉 하면서도 때론 에로틱한 사랑까지... 이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감정을 공유하며 느끼는 존재들이 모두가 생각하는 '불완전한' 자들 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편협한 잣대로,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보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들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 조차 되지 못한다.
2. 나는 완전하다. 그런데...
"전 지금까지 잘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한 번의 실수로 제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부정하시는 겁니까?"
괴생명체 비밀 연구의 총 책임자로 보이는 리차드(사진 왼쪽 남성)는 위 사람들과 반대로 완전해 보이는 사람이다. 백인 남성이라는 시대 상 최고로 우등해 보이는 인종, 비밀 연구의 총 책임자라는 높은 지위, 두 자식과 아내에게 사랑받는 가장 등 뭐 하나 빠질 것 없어보이는 리차드. 그는 지금까지 완벽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자만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엘라이자 일행이 곧 해부 당할 괴생명체를 밖으로 빼내는 것을 저지하는 데 실패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완벽하고 완전해 보이는 리차드는 자기가 완전하지 않으면 안되고 현 상태를 언제나 유지해야 하는 것에 강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보다 더 좋은 차를 원하고, 괴생명체를 실험체로만 여기면서 학대를 일삼으며 인간인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한다. 작중 초반에 리차드는 괴생명체에게 손가락 두 개가 잘리는데 봉합 수술이 잘 안되어 손가락이 점점 검은색으로 썩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손가락을 잘라내지 않고 결국 후에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미쳐버려 스스로 손가락을 뜯어내기 전까지 손가락을 썩은 상태 그대로 둔다. 그래야만 그는 '다섯 손가락'이 있는 완전한 사람이고 그렇게 자신을 속이면서 까지 자기가 완전하다는 것을 믿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완전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완전해 '보이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받을지언정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다. 자신만을 사랑해 자기를 위한 차를 사고, 자기 지위가 위태로워 질 때만 분노한다. 타인과의 따뜻한 교류가 없는 그는 겉으로 완벽해 보일 지라도 실제로는 혼자 고립되어 있는 진정한 '불완전' 상태이다.
사람은, 그리고 다른 어떤 존재이든, 서로 사랑하지 않고는 완전해 질 수 없다. 그리고 사랑이란 이름 아래에서 당신의 형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벙어리이든 사람이 아니든 우리는 모두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을 함으로서 겉으로 보이는 불완전함 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의 형태는 물처럼 자유롭고 영원하며 놀랍도록 아름답고 깨끗하다.
"You'll never know just how much I miss you.
You'll never know just how much I care....
You, and, me, together."
송지혜 에디터 hihikiki042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