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인생이야기 : 앙
Opinion
끓여지는 팥처럼 느릿하고, 잔잔하게 마음속에 스며들다
3년 전, 단풍이 막 피기 시작할 때쯤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당시 칸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주위를 끌었던 <단팥인생 이야기 : 앙>이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단순히 빵을 만드는 장인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영화를 기대하고 영화를 봤었다. 평소에도 파티시에의 삶을 배경으로 한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던 나에게 이 영화는 그렇게 우연히 찾아온 선물이 되었다.
한센병을 앓고 있는 단팥장인 도쿠에
영화의 스토리는 꽤나 단순하다. 도라야끼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 센타로가 진정한 단팥장인이지만 한센병을 앓고 있는 도쿠에 할머니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단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빚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센타로는 도쿠에 할머니를 만나면서 진정으로 팥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처음으로 일에 대한 열정을 느낀다. 그는 한센병을 앓고 있는 도쿠에 할머니와의 소통을 통해 참된 삶에 대해서 깨닫고, 나아가 편견 없이 사람을 바라보는 법을 깨닫는다. 어찌 보면 굉장히 뻔한 내용이다.
딱히 눈에 띄는 엄청난 반전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담담한 어조로 팥에 대해서, 나아가 자연 속 많은 것들에 대해서, 더 나아가서 인생에 대해서 말을 하는 도쿠에 할머니의 순수한 표현들은 결코 뻔하지 않았다.
벚꽃이 전해주는 계절의 흐름
영화는 꽃이 만개한 벚꽃나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이 벚꽃나무가 주는 영화 속 계절의 흐름이 인상 깊었다.
벚꽃이 만개한 봄에 센타로와 도쿠에 할머니가 처음 만나고, 벚꽃이 지고 가지만 앙상한 나무가 되는 것을 통해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또, 엔딩 장면에서는 이 벚꽃나무가 다시 만개한 모습을 통해 일 년이 지나 다시 봄이 왔음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벚꽃나무는 이러한 역할 말고도 도쿠에 할머니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벚꽃을 보는 할머니는 유난히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그저 순수하게만 보였지만 영화가 전개되면서 할머니가 한센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 마음은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인생의 대부분을 격리된 채 살아야 했던 할머니에게는 병동 밖에 나와서 벚꽃을 보는 것이 마냥 신기했을 것이다. 정말 좋아하지만 평생을 마음속에 품고 살 수밖에 없던 것이 눈앞에 있는 기분은 어떨까 생각해보지만 감히 상상조차 못 하겠다. 할머니가 느꼈을 기쁨은 그런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했던 벚꽃나무는 할머니가 죽음을 맞이한 후에도 할머니를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묘를 만들 수 없는 격리병동의 특성상 누군가 죽으면 나무를 심게 되는데, 벚꽃나무는 평소 유난히 그 나무를 좋아했던 할머니였음을 아는 병동 지인들의 작은 배려였다.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나무가 되어 길이길이 추억되는 것을 할머니도 하늘에서 굉장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팥과 당이 친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영화 속 할머니는 팥을 마치 하나의 인격체 대하듯이 대한다. 팥을 만들면서 할머니는 팥들이 여기까지 힘들게 와주었으므로 극진히 모셔야 한다고 말한다.
팥을 끓이다가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젓다가 다시 설탕을 넣고 기다리고... 팥을 만드는 일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설탕을 붓고 기다리는 동안 결국 참지 못한 센타로는 또 기다려야 하냐고 묻지만 할머니는 그저 웃으면서 갑자기 끓이는 것은 팥에게 실례라고, 팥과 당이 친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마치 맞선 같은 것이라고 말을 한다. 사람도, 동물도 아닌 팥의 마음을 배려하는 할머니의 말들은 참으로 순수하고 예뻤다.
꿈을 꾸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니까
할머니가 가게를 그만두고 센타로에게 쓴 편지를 통해서도 팥을 진심으로 대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팥이 보아왔을 맑은 날과 비오는 날을 상상하며 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고 했다. 일생의 대부분을 바깥 날씨 한 번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격리된 채 살아온 할머니에게 팥은 그러한 것을 대신해 주는 존재였던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무 잘못 없이 살아도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에 짓밟힐 때가 있다는 할머니의 말은 항상 밝은 듯 했지만 상처를 많이 받아왔을 할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후에 단골소녀 와카나와 센타로가 할머니를 찾았을 때 할머니는 사실 소녀가 맡겨두었던 새를 풀어주었다고 고백한다. 새들은 자유롭기를 희망했을 것이라고 풀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며, 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고 말한다. 돈을 상식에 어긋날 정도로 적게 주어도 되니 일만 하게 해달라고 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겹쳐지는 부분이었다.
어쩌면 할머니는 자신의 생이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동네의 작고 볼품없는 가게에서의 아르바이트였지만 그녀에게는 평생의 꿈이었을 것이다. 꿈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했고, 마침내 이루어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만약 할머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꿈을 꿀 용기라도 낼 수 있었을까. 확신이 없다.
결국 할머니는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죽음이 마냥 슬프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환경에서 살았지만 항상 희망을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살았던 그녀였다. 할머니는 단골소녀 와카나에게, 센타로에게, 그리고 내게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꿈 꿀 용기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영화는 센타로가 만개한 벚꽃나무 앞에서 도라야끼를 파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예전처럼 번듯한 가게도 없는 노점상이지만 센타로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게를 운영하던 센타로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기의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만개한 벚꽃 앞에서의 센타로는 마치 할머니와 함께 가게를 하는 것 같은 든든함도 보였다. 할머니는 죽어서도 벚꽃으로 추억되며 센타로와 함께 했다.
딱딱하기만 해 보이는 팥이 끓일수록 부드러워지듯이
우리는 세상을 보고 듣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우리 각자 살아갈 의미가 있는 존재이다.
할머니가 센타로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나는 어쩌면 너무 거창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큰 목표를 갖는 것은 좋지만 남들에게 좋아 보이려고 맞지도 않는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 그리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갖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가게 주인 사모를 욕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좋아하는 단골 빵집의 제빵사가 한센병 환자라면 나는 그 사실을 알고도 기꺼이 그 빵집을 애용할 수 있을까. 그 제빵사를 미심쩍어하고 꺼림직해 할지도 모르겠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굳이 전염병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편견들은 생활 속에 널려있다. 나는 그동안 모든 포커스를 나에 맞춰서 생활해 왔다. 따라서 나와 다르면 이해를 못 하는 부분이 많았다. 정작 그 사람의 내면은 못 본채 겉만 보고 판단하기 바빴다. 하지만 딱딱하기만 해 보이는 팥이 끓일수록 부드러워지듯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 외적인 모습보다 내면의 진정성과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다.
영화 속 팥을 끓이는 것처럼 느릿느릿 잔잔하고 조용하고 차분한 영화지만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와 보는 사람까지 맑아지는 듯한 할머니의 순수함 같은 것들이 어우러져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편하다고 해서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영화였다.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해서 좋았고, 그렇기에 끝나고도 여운이 길게 남는 영화이다.
유다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