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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여름은 어떠니

여름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칠월, 허연

7월이다. 이맘때쯤이면 2년 전 만난 이 문장이 한 달 내내 맴돈다. 매미 소리 사이에도 저 문장이 고요하게 흐르고, 흰 구름 떠다니는 하늘에도 문장이 가득 새겨진다. 2년 전, 나의 여름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문장. "모든 행복한 일은 주로 여름에 일어나죠"라는 대사가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내게도 여름은 그런 계절이다. 행복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계절. 행복에 대한 설렘으로 여름을 보내지만 때때로 서글픈 기운이 나의 여름을 방문하기도 했다. 봄, 가을, 겨울- 다른 계절에 겪는 슬픔보다 모두가 행복하게만 보이는 맑은 여름날의 슬픔은 나를 참 슬프게 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내가 없다는 걸 통해, 내가 거기 있단 사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 나는 모임에서 이탈한 주제에 집도 기어들어 가지 않고 인문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스스로 응석을 부리며 뭔가 흉내 내는 기분이 못마땅했지만.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의 '미영'은 고향 친구의 부음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한다. 그러던 중에 대학교 때 좋아하던 선배에게 연락이 온다. 그는 미영에게 자신이 연출하는 프로그램의 엑스트라로 출연해줄 것을 부탁한다. 미영은 잠시 고민하다 그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방송국으로 향하는 동안 미영은 선배와 좋았던 대학시절을 떠올린다. 하지만 방송국에 가보니 미영이 생각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영은 선배가 '뚱뚱한 사람'을 생각하다 자신을 기억했다는 사실을 알고 상처 입는다.

 

작은 우울을 가지고 방황하던 미영의 대학 신입시절.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통해 내가 있었음을 알리고 싶음 마음'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편에 꼭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고, 몇몇의 사람들은 '아- 아- 그 있잖아. 그 애.'라는 식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존재가 지워지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런 기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 사라진 내 빈자리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주길 바란다. 방황하던 미영을 찾아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었던 선배처럼, 나의 서글픈 여름날에도 나의 빈자리를, 나의 슬픔을 알아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살면서 진심으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다만, 티브이도 없고 컴퓨터도 없는 음습한 자취방에서 이따끔 확인하는 선배의 문자가 참 반가웠던 기억은 난다. 한밤중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조그만 불빛을 따라 내 마음도 빨갛게 깜빡거렸다는 것과, 그 나이에만 쓸 수 있는 순수하고 유치한 문장들에 내가 퍽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자신을 알아준 선배와의 함께였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금 설레는 마음을 갖고 그를 도우러 가는 미영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나를 어렵게 하는 부탁임을 알면서도 그 사람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 미영이 선배를 생각하는 것만큼 선배는 미영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아픔. 유난히도 맑고 행복한 일만 생길 것같은 여름날에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슬픔이다. 나는 미영이 여름날 느낀 슬픔을 떠올리며, 나의 슬픈 여름을 떠올렸다. 너무도 있을 법한 여름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서글픈 여름날을 닮은 문장. 한기를 가지고 내 마음으로 파고들어 딱딱하고 차갑게 마음을 얼렸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곧이어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그렇게 쉬운 생각을 그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한 건지 당혹스러웠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의 미영처럼, 나처럼,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도 슬픈 여름날을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허연 시인의 문장이 내 행복한 여름날을 더 빛나게 만든 문장이었다면, 김애란 소설가의 단편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만난 문장은 내 서글픈 여름날을 닮았다. 슬픔과 슬픔이 만나 서로를 보듬어 위로가 되듯이, 나는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통해 슬픈 여름날을 견뎠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을 무사히 보낸다.

 

김하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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