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이야기 '500일의 썸머'
현실적인 연애물로 유명한 영화가 있다. 바로 <500일의 썸머>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이기에 시간을 내어 잠시 감상해 보았다. 대체 얼마나 공감 되기에 그러는 걸까? 하는 궁금증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지만, 보고 난 후에는 절로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었다. 영화가 워낙 유명하기에 결말이야 다들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처음 보면 썸머가 나쁜X이지만, 세 번 보면 썸머가 이해되는 영화’
이 영화를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말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 말을 줄곧 들었기에 영화 감상에 있어서 여자주인공 ‘썸머’에 더 대입하고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보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세 번 보지 않아도 그녀의 입장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감독도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이 처음 나왔을 떄와 마지막에 나왔을 때, 느끼는 감정이 다를 것이다. |
일단 시작에서 감독은 두 가지 트릭을 심어 놓는다. 첫째, 시각적으로 보여주는데 바로 ‘여러 가지 일을 겪었음에도 우리의 끝은 결혼일지도 몰라’ 라고 보여주는 것이다. 맨 첫 부분에서, 여자주인공 ‘썸머’와 남자주인공 ‘톰’의 손이 포개져있고, ‘썸머’의 손에는 반지가 끼워져 있다. 필자는 이미 결말을 알고 영화를 보았지만, 영화의 결말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결혼할지도 모르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진행은 ‘썸머’를 만난 첫째 날부터 흘러가는 흐름 속에 중간 중간 헤어진 후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 결말은 좀 더 아리송해 진다. 마치 tvn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둘이 그래서 결혼을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영화를 관람하고, 바로 그 것이 영화의 매력이 된다.
톰의 이상과 현실 |
둘째, 이야기의 시점이 바로 ‘톰’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내내 ‘썸머’의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오로지 ‘톰’의 입장에서 모든 일이 흘러가고, ‘톰’의 속내만 보인다.
'AUTHOR’S NOTE: The following is a work of fiction. Any resemblance to person living or dead is purely coincidental. (작가의 말: 이 영화는 허구다. 생존 혹은 사망한 사람과 어떤 유사점이 있더라도 완전히 우연이다)
Especially you Jenny Beckman. (특히 너, 제니 백멘)
Bitch. (나쁜 년)'
위의 글을 영화 도입부에 적은 것 역시, 하나의 기법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작가의 진심이 담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톰’의 시점을 보여주고, ‘톰’의 속내를 보여주니 ‘톰’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썸머’의 입장을 바라본다면, 이 이야기를 ‘썸머’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열려있던 문이 닫히면서 ‘톰’을 가려버리고, ‘썸머’만 창문으로 보이는 장면 역시 그러한 감독의 의도를 내비친다.
문이 닫히자, 썸머가 중심이 된다. |
‘톰’은 언제나 운명적인 사랑을 믿던 남자였고, ‘썸머’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운명적인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였다. ‘톰’은 ‘썸머(여름)’를 운명적인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와 헤어진 후 ‘어텀(가을)’을 만나, 운명이란 없으며 자신이 우연들을 운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계절을 맞는다. 이 전개대로라면 언젠가는 윈터(겨울)를 만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제쳐두자.
‘썸머’의 경우, 운명을 믿지 않는 여자다. 그것은 ‘톰’을 만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의 관계를 이름으로 정의 내리려 하지 않는다. 결혼도 안 하려 한다. 그러던 그녀가, ‘톰’과 헤어지고 나서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톰’은 그녀에게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되는 것이 싫었던 그녀가,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다니, 당연히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그녀와의 추억 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이 한심할 정도로, 빨리 결혼을 해버린 그녀가 야속할 것이다. 하지만 ‘썸머’는 말한다.
“It just happened. (그냥 그렇게 됐어)”
이 대사를 듣는 순간, 필자도 함께 멍해졌다. 그냥, 그런 거다. ‘톰’은 그럴 사이가 아니었던 거고, 그녀의 남편과는 그럴 사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녀는 운명을 믿게 되었다. 이 마지막 말로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썸머’는, 연애에 관해 비관적이던 지난날을 청산하고 드디어 운명의 짝을 만나 결혼했다. 결국 이 영화는 전 세계에 만연한 ‘썸머’들을 비난하는 듯이 서술하지만, 그 안에는 ‘썸머’를 이해한 후 그녀를 추억하고자 감독의 메시지가 숨어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또한, 관객들이 그들만의 썸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냥, 그렇게 됐어. |
마지막, ‘썸머’는 ‘톰’의 손을 잡는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떠나간다. 잠시 맞잡았던 그 손이 그 동안 고마웠다고, 역시 네가 옳았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맞잡은 손으로 무언의 말을 한 그녀는 이제 정말로 그를 떠나간다. ‘톰’역시,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말을 하며 그녀를 정말로 놓아준다. 이제 정말로 모두의 ‘썸머’들을 놓아줄 시간이다.
<500일일의 썸머>는 단순한 사랑영화가 아니어서 좋다. 처음 보는, 그것도 상극인 남녀가 만나 티격태격하며 사랑하고, 잠깐의 오해와 안 좋은 상황이 겹쳐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가 결국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나는 식의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좋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대한 운명을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뉠 텐데, 이 영화를 서로의 감정에 이입하면서 영화를 감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 당신만의 ‘썸머’가 있다면, 부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미진 에디터 smile9511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