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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거칠지만 속시원한, 발칙할 정도로 발랄한 그녀의 시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김 민 정

 

만난 첫날부터 결혼하자던 한 남자에게

꼭 한 달 만에 차였다

헤어지자며 남자는 그랬다   


너 그때 버스 터미널 지나오며 뭐라고 했지?

버스들이 밤이 되니 다 잠자러 오네 그랬어요

너 일부러 순진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두사부일체」보면서 한 번도 안 웃었지?

웃겨야 웃는데 한 번도 안 웃겨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잘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너 그때 도미회 장식했던 장미꽃 다 씹어 먹었지?

싱싱하니 내버리기 아까워서 그랬어요

너 일부러 이상한 척한 거지, 시 쓴답시고?

그런 게 시였어요? 몰랐는데요

 

진정한 시의 달인 여기 계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므로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사연 끝에 정중히

號 하나 달아드리니 son of bitch

 

사전은 좀 찾아보셨나요? 누가 볼까

가래침으로 단단히 풀칠한 편지

남자는 뜯고 개자식은 물로 헹굴 때

비로소 나는 악마와 천사 놀이를 한다,

이 풍경의 한순간을 시 쓴답시고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문학과 지성사, 2009)

Happy Named Victim

                                                               Kim Min-Jeong

 

A man who proposed me on the very first date

dumped me exactly thirty days later.

As he broke up with me, he said,


What was that you said as passing by the bus terminal?

I said "Buses are coming to sleep as night comes."

You pretended being naive, so you write a poem?

Does a poem mean that? I didn't know.


You never laughed as watching the movie "My Boss, My Hero."

I didn't laugh because it was not laughable.

You intended to brag out, so you write a poem?

Does a poem mean that? I didn't know.


You chewed all rose petals decorating a plate of snapper sashimi.

I did because they were too fresh to throw out.

You acted strange, so you write a poem?

Does a poem mean that? I didn't know.


I feel very sorry for I haven't recognized

the authentic guru of poetry. So I'm attaching

very politely a nom de plume for you, son of a bitch


Have you looked through a dictionary? 

There is a letter tightly pasted with a spit,

when a man rip it and the son of a bitch washed it in water

at last, I start playing the game of angel and devil.

So I write a poem about this moment in this scene.

김민정 시인의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와 비슷한 형식의 제목이 많이 등장한다. 고비라는 이름의 고비, 아내라는 이름의 아 네, 오빠라는 이름의 오바, 젖이라는 이름의 좆, 페니스란 이름의 페이스,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의 편... 앞과 뒤의 단어가 이질적이면서도 혼합되어서 단순한 언어유희로 전락되지 않고 독특한 의미를 형성한다. 과연 이 제목이 시의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가 살펴보고자 한다. 

김민정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는 만난 첫 날부터 결혼하자던 남자가 화자에게 시 쓴다고 트집을 잡으며 헤어지자는 내용으로, 대화체와 비속어가 난무하는 시이다. 화자와 그 남자 사이의 상황과 배경을 상상해 보았다. ‘한 달 만에 찬 남자’ 는 화자가 시인인 줄 알고 만났을 것이다. 시인을 신격화하거나 격하하는 것이 아니지만, 시를 쓰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져 만남을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는 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아니 전혀 읽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시에 대해서 한 번쯤은 그녀를 떠올리며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를 쓰는 화자와 만나는 내내 시에 대해 그리고 시가 무엇인지 끝내 몰랐을 것이다. 알아챘다면, 시를 발견했다면 그런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고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얻지 못한 그에게 시란 낯설고 두려운 존재로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그는 두려움과 일종의 부담감을 시 쓰는 사람인 화자가 순진한 척, 잘난 척, 이상한 척하는 것으로 합리화시켜 버리고 만 것이다.

 

화자는 당연히 시를 모르고 시의 진가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남자를 향해 욕을 한다. 그리고는 그가 시를 알아주기를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예 그를 시로 만들어 버린다. 가래침으로 단단히 풀칠하고 물로 헹구고 그를 기다린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이 시는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화가 나는 마음을 억누르고자 쓴 시이다. 차버리고 떠나가는 마당에 우습고 어이없는 이유로 안전망을 구축하는 남자에게 바람맞은 여자가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시로 표현하여 환기시킨 것이다. 화자도 여느 보통 여자들처럼 이별을 맞이한 후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슬프고 화도 나고 외로웠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담담하고 쿨하게 시를 써내려가면서 마음을 정리했을 화자가 눈에 선하다. ‘피해는 입을 만큼 입었으니 이제 부디 해피하자!’ 상처를 딛고 행복을 염원하는 화자의 작은 소망이 제목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런 익살스러운 화자의 모습이자 김민정 시인의 문체는 우리 언어문화의 한 특질인 '웃음으로 눈물 닦기'가 자연스레 연상된다. '웃음으로 눈물 닦기' 란 비애의 정서를 웃음으로 해소하는 의도적인 행위를 말한다. 이런 특성은 일상어는 물론 언어로 된 예술인 문학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 예로 판소리 <적벽가>가 있다. 군사들이 떼죽음 당하는 비극적인 상황임에도, 소리꾼은 너무하다 싶을 만큼 언어유희로 그것을 그려내 듣는 이로 하여금 웃음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는 군사들의 죽음을 비웃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웃음으로 눈물을 닦아 슬픔이 우러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김민정 시인도 아마 이런 의도를 가지고 시를 쓰지 않았나 싶다. 처음 읽었을 때는 아리송하고 불편하게 다가왔던 「피해라는 이름의 해피」가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도 같다.

흥, 치사하시군요.

언제는 특이하게 시 쓴다고 달라붙더니 이제와선 시 쓴다고 트집 잡는 당신.

시인이 필요한 곳은 인간의 몸, 마음, 정신 중 어디일까. 세상의 어느 자리에 시인은 앉을 수 있을까.

헉, 그게 그런 거였어? 다정과 힐난이 줄넘기 넘는 아이처럼 오락가락하는 거야 인생 다반사 그 모양이니 그렇다 치지만,

차버리고 떠나는 마당에 꼰대같은 이유씩이나 조목조목 들이대며 '안전망' 구축하는 당신. 마음 변했으면 그냥 쿨하게 잘 가줘요,

당신한테 시 쓰고 살라고 안 할 테니까.

여기서 뭉개져 시 쓰고 사는 거야 내 인생이죠. 난 내 인생이 좋다구요!

애인과 우습게 헤어지고 화가 나서 팔짝팔짝 뛰다가 푸른 밤바다를 보고 온 것 같은 시.

시시콜콜 가르쳐드는 꼰대님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시로 쓰기 쉽지 않은 바람맞은 시.

깎자고 덤비는 세상에서 너무 싸게 파는 거라서 더 이상 깎아줄 수 없는 시.

안 착해 보이는 착한 시. 그러니 우리 해피하자구요.

김정연 ypc19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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