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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코미디는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코미디는 모두 다 어디로 갔

최근 극장가에서는 날이 갈수록 한국 코미디 영화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현재 영화계에서는 액션과 스릴러, 히어로 무비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장르가 거의 모든 상영관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의 박스오피스 순위만 살펴 보더라도 단번에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현재 박스오피스 상위 20개 영화를 보면 스릴러 및 액션 장르와 애니메이션 장르가 순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드라마 장르 또는 뮤지컬 장르는 모두 다 합쳐도 다섯 작품, 코미디 장르는 딱 한 작품인 데다가 이것 마저도 할리우드의 액션 코미디 장르이다. 날이 갈수록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장르 및 작품의 폭은 한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동시에, 정통 코미디 장르는 이 순위권 중 단 한 편도 없다는 사실을 통해 코미디 장르의 영화가 분명 예전 같지 않다는 것, 특히 국내 코미디 장르가 도통 맥을 못 추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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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코미디의 품귀 현상이 비단 스크린에서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브라운관의 경우에도 이는 마찬가지다. 최근 3-4년 간 방영되었던 TV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을 통틀어도 시트콤과 개그 프로그램의 개수는 손에 꼽힐 정도이고,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소수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기록하는 시청률의 경우 그 마저도 다른 프로그램들과 비교했을 때 다소 부진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저조한 시청률로 인해 화제성을 잃은 탓일까, 한때 개그맨들의 전담 영역으로 여겨졌던 ‘유행어’ 생산도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더 자주 이루어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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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년 전 즈음만 하더라도 상황은 지금과 달랐다. 영화진흥위원회 기준 2012년~2013년 흥행순위 박스오피스를 보면 20위권 안에 국내 코미디 영화인 ‘댄싱퀸’, ‘박수건달’ 등이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며 자리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브라운관에서 코미디의 인기는 영화보다도 더더욱 많았다. 특히 99년도부터 방영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던 장수 개그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의 경우 불과 5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해마다 연말 시상식에서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놓치지 않았을 정도였고, 시트콤 장르의 경우도 지상파, 케이블을 막론하고 꾸준히 제작되어 방송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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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그콘서트' 공식 네이버 포스트

하지만 그로부터 5년의 시간동안 관객들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변화 했는지도 모른다. 한국 코미디 영화의 고질적인 한계 중 하나인 예측가능한 ‘뻔한’ 전개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되었고, 이와 함께 동반해서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후반부의 억지 웃음과 억지 감동에도 이제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동안 너무 오랜 시간을 속아왔다고 생각하는 탓일까, 관객들에게는 국내 코미디 영화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결국 관객들에게 이제 대다수의 국내 코미디 장르는 ‘웃음으로 시작해서 억지 휴머니즘으로 끝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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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엔터미디어- ‘웃찾사’ 흑인비하 개그, 그때도 지금도 틀렸다

TV 콘텐츠의 시청자들도 그동안 크게 변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시청자들은 이제 더 이상 ‘불편함’을 감추고 애써 웃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차별적인 언행을 하거나, 약자에 대한 편견을 소재로 삼으며 웃음을 유발하고자 하는 콘텐츠들에 어딘가 불편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먼저 웃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시청자들은 지적을 먼저 보내며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쏟아낸다. 하지만 여전히 TV 속 코미디 장르 콘텐츠에서 이러한 ‘불편함’은 지속적으로 발생 중이니, 시청자들은 결국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웃음 마저도 잃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웃음의 코드도 사회 변화와 맥을 같이하며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데 반해 TV 속 코미디(특히 ‘개콘’과 같은 스탠다드 코미디가 그렇다)는 여전히 다양한 웃음의 방식을 추구하기보다 과거에 늘 성공적이었던 보편적 웃음 코드에 갇혀 홈런과 같은 한방을 노리기보다는 안정과 현상유지를 추구하고자 하니, 시청자들의 외면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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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모든 이들에게 웃음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급격한 고령화, 경기침체, 국제 관계 속에서의 난항, 각종 사회 문제, IMF 이래 최대의 취업난… 저절로 ‘세상 참 팍팍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곤 한다. 일상에서 웃음을 찾기가 여간 쉽지가 않은 날들인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것이 바로 코미디 장르의 콘텐츠들이 지난 몇 년 간의 부재 혹은 부진에서 필연적으로 벗어나야만 하는 이유다. 오직 ‘맹목적으로’, 또는 ‘순수하게’ 웃음에 목적을 둘 수 있는 유일한 장르가 바로 코미디이기 때문에 코미디는 더욱 살아나야 한다. 물론 흥미 유발에 초점을 두는 TV의 예능 장르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예능은 맹목적인 웃음 그 자체를 유발하는 데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재미있는 장면이나 상황을 통해 웃음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코미디 장르처럼 말 그대로 ‘대놓고’ 러닝 타임 내내 웃음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웃음이 진정으로 필요한 오늘날, 코미디 장르의 콘텐츠들이 다시 활력을 되찾아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코미디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앞서 말한 시청자와 시대의 변화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자세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이제 코미디의 생산 주체들은 더 이상 억지 웃음이 통하지 않는 관객들에게 예상을 깨는 전개와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하게끔 하고, 한편으로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형식의 개그를 시도하는 동시에 그 어떠한 차별이나 편견 없이 모든 시청자들에게 기분 좋은 웃음을 선물할 수 있는 치열한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을 통해 탄생할 앞으로의 새로운 코미디 콘텐츠들이 지금까지의 불편함과 식상함을 넘어, 우리에게 ‘무해’하고 그저 즐겁기만 한 맹목적인 웃음으로 일상의 ‘힐링’을 선사해주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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