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에 건 마법
음란물 유통 사이트 소라넷은 결국 폐쇄되었다. 장애인과 노숙인을 폭행·학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던 ‘대구희망원’의 원장 신부는 징역 3년형을, 일명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인 패터슨은 무려 16년 만에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이제 시민들이 먼저 <그것이 알고싶다>를 찾는다. 풀리지 않는 의혹이 존재하는 이슈들이 생기면, <그것이 알고싶다> 시청자 게시판은 불이 난다. 누군가는 숨은 비밀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신뢰. <그것이 알고싶다>는 26년간 그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것이 알고 싶다면, 이렇게 취재하라
<그것이 알고싶다>의 취재법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탐사보도의 정수이다. SNS와 전화를 통해 매일 24시간 제보를 받고, 사건과 연관된 당사자, 지인, 이웃으로부터 인터뷰들을 확보한다. 미국, 독일, 태국, 필리핀 등 진실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
취재를 통해 얻어낸 사실들을 그대로 방송하지 않는다. 해당 전문가들에게 사실을 검증 하는 과정을 거친다. 심지어는 성폭행 피해자의 진술 또한 그 진위여부를 가리기 위해 상담심리학 전문가에게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한다. (1096회)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다룬 ‘살수차 9호의 미스테리’편에서는 경찰보고서에 적힌 물대포의 위력을 확인(1049회)하기 위해 동일한 조건으로 여러번의 실험을 진행 하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직접 ‘검증’함으로써 취재의 마침표를 찍는다.
1096회, 주지스님의 이중생활 |
1049회, 살수차 9호의 미스터리 |
시사 프로그램 맞아? 색다른 연출법
시사 프로그램임에도 연출은 매우 극적이다. 기본 포맷은 취재 중심의 영상물과 세트에서 이루어지는 김상중씨의 해설이다. 보편적인 흐름을 통해 안정감을 주면서도 해당 회차의 주제에 맞는 새롭고 장르적인 연출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18대 대선의 국정원 선거개입을 다룬 ‘은밀하게 꼼꼼하게-각하의 부대’ 편에서의 연출은 ‘시간’을 중심으로 흘러갔다. 국정원 선거개입과 관련해 아무런 정치적인 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브리핑하는 당시 경찰서장의 영상 이후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브리핑이 있기 하루 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 전 후보의 “국정원 선거개입은 아무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박근혜 당시 후보가 브리핑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의혹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기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다룬 회차에서의 연출은 완전히 새로웠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피해자가 ‘여성’이였기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점에 주목하여 여성 성추행 피해자에게서 받은 제보를 ‘남성’으로 바꾸어 재연해 남성 시청자들을 공감을 꾀하는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였다.
1034회, 검거된 미제사건 |
신선하고 극적인 연출이 타 프로그램과 <그것이 알고싶다>가 차별점을 두는 지점이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처럼 깊은 여운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편집들은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의 한계를 넘어선다. 흥미를 유발해 지루함을 줄이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시청자를 끌어당긴다. 물론 이러한 극적 연출은 그 사실을 충분히 검증하는 취재력이 입증된 <그것이 알고싶다>이기에 가능하다.
미스터리한 살인사건 속 더 미스터리한 사회의 단면
<그것이 알고싶다>는 크게 미스터리한 살인사건과 정치적·사회적 이슈, 두 가지를 다룬다. 사실 미스터리한 죽음을 다루는 것이 <그것이 알고싶다>의 시작이었고 여전히 이 주제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살인사건 보도로 탐사 보도가 약화 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싶다>는 남다르다. 살인사건 속의 무언가 다른 ‘그것’에 집중한다. ‘파타야 살인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다 불현듯 “그런데 말입니다.”라며 불법 도박사이트가 고액 알바를 동원해 일삼는 악행으로 화제를 돌린다. 더 나아가 이에 동원될 수밖에 없는 한국 IT업계 종사자들의 현실을 고발한다. ‘인천 여아 살인사건’ 편에서도 살인범의 잔혹함을 다루다, SNS상의 캐릭터 커뮤니티를 조명하고 이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사회적 관심이 부재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범인, 살인의 방식, 동기에 집중하는 구시대적 문법에서 벗어나 피해자들의 죽음 뒤에 선 우리 사회의 그늘을 비춘다. 단순히 ‘범인’을 찾는 것에서 범인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그것이 알고싶다>가 알고 싶은 ‘그것’은 시민이 몰랐던, 알기를 원하는, 또 알아야 하는 '그것'이다. 지난 26년간 “그런데, 말입니다.”하며 들려주던 이야기는 우리 사회를 바꿨고, 진지한 고민의 계기와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무엇보다, 때로는 답을 내려주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사건에 분노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시민을 만들었다. 부정이 만연한 현 정국의 상황 속에서 <그것이 알고싶다>가 앞으로 어떤 이슈들을 다루며 새로운 진실과 시사점을 던져 줄지 기대한다. 그러니까 말이다, 26년간 대한민국에 걸어온 마법 같은 주문이 앞으로도 수십 년간 이어지기를 바란다.
조연주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