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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많던 ‘집순이’, ‘프로 여행러’가 되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지 않았던 내게 ‘암스테르담 교환학생’은 큰 도전이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유럽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던 친구들과 달리, 한 달 동안은 네덜란드를 벗어나지 않았다. 유럽이 처음이라 그런지 더 겁이 났고, 여행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 생길까 봐 망설여졌다. 그랬던 내가 6개월 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어느새 웬만한 일엔 당황하지 않는 ‘프로 여행러’가 되어 있었다.

첫날부터 이런 일이

헬싱키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하늘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1월 29일, 새벽부터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집을 나서려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내가 탈 비행기가 3시간이나 지연됐다는 알림이었다. 직항이 아니라 헬싱키에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환승 편을 놓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해외로 나가는 날인데 이런 어마어마한 일이 생기다니.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당황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우선 부모님과 공항으로 향했다. 핀에어 직원은 "헬싱키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지연됐다"라며 "경유할 때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해주니까 걱정하지 말라"라고 날 안심시켰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헬싱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헬싱키에 도착해서 새 비행기 표를 받았는데 환승까지 45분 남은 표였다. 하지만 입국심사 줄은 너무 길었고, 불안한 내 마음을 모르는지 심사관은 아주 느긋하게 여권을 뒤적였다. 짐 검사하는 직원마저 내 짐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겨우 다 통과하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지만 비행기는 이미 출발한 뒤였다. 한 직원이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며 핀에어 데스크에 가보라고 말해줬다. 데스크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다음 비행기 표를 받는 것 같았다. 역시 세상은 날 버리지 않았구나! 그래도 암스테르담까지 갈 수는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상황을 설명했는데 컴퓨터 화면을 보던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오늘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가 더 없으니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라"며 헬싱키 호텔 바우처와 새 비행기 표를 건넸다. 유럽에서의 첫날밤을 암스테르담이 아닌 헬싱키에서 보내게 될 줄이야. 펑펑 오는 눈을 맞으며 호텔로 향했고, 이곳이 유럽이라는 감흥을 느낄 새도 없이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첫날 이렇게 고생했으니까 액땜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6개월 동안 이것보다 더 당황스러운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택시 타고 국경 넘기

'518유로'라고 찍힌 택시 미터기

3월 초, 독일 쾰른에 놀러 갔다. 네덜란드를 벗어난 건 처음이라 떨렸지만 별일 없이 즐겁게 여행을 마쳤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갔는데,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고 역 밖에는 택시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뭔 일이 있나 싶었지만 일단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차 출발 시간이 돼도 기차가 오지 않았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몇 분 전부터 전광판에 떠 있던 독일어를 검색해보니, ‘실패하다’라는 뜻이었다. 그때 느꼈던 당황스러움이란. 그제야 왜 역이 어수선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역 사정으로 인해 모든 기차들이 취소된 것이었다.


사람들이 있던 곳으로 뛰어갔더니 같은 목적지로 가는 사람끼리 모여 택시 바우처를 받고 있었다. 다행히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사람들을 금방 찾을 수 있었고, 나와 친구까지 총 다섯 명이서 택시를 타게 되었다. 택시를 타고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가다니! 내 생애 다신 없을 경험일 것이다. 기차로 금방 갈 거리를 세 시간 동안 택시 타고 간다는 게 황당했고 몸도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여행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모든 게 다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택시비는 총 518유로였다. 내가 낼 돈이 아니라 정말 다행이었다.

기장님, 저는 부다페스트 가는 비행기 탔는데요?

둘째 날이 돼서야 볼 수 있었던 부다페스트의 야경

6월 중순, 스위스 여행을 끝내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탔다. 자다가 주변이 웅성거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도착할 시간이 됐는데 비행기는 착륙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안내방송이 나왔고, 잠결에 ‘빈’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았다. 잘못 들었겠지 싶어 다시 눈을 감았는데, 승무원이 한 승객과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승무원은 “지금 부다페스트 공항에 착륙할 수 없어서 빈으로 간다”라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부다페스트 공항 활주로가 망가져서 착륙할 수 없으니 빈 공항에 착륙하겠다”라는 안내방송이 다시 나왔다. 황당해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헝가리랑 오스트리아가 아무리 가까워도 같은 나라가 아닌데 이게 무슨! 부다페스트 다음 여행지가 마침 빈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오게 될 줄은 몰랐다.


항공사 직원은 부다페스트로 가는 버스를 마련해줄 테니 빈 공항 맥도날드 앞에서 모이라고 했고, 어쩌다 보니 운명 공동체가 된 사람들과 다시 만났다. 다 같이 버스를 타는데 이상하게 수학여행 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결국 새벽에 도착해서 저녁 시간을 날려야 했지만,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날 만큼 황당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행의 묘미

이런 경험이 하나씩 쌓이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는 ‘프로 여행러’가 되었다. 예전에는 당황하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눈물까지 났는데, 이젠 웃어넘길 수 있다. 6월 말에 엄마랑 동유럽 여행을 갔는데,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가 세 시간 지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엄마는 잘 갈 수 있는 거냐며 불안해했지만 난 덤덤했다. 첫날 헬싱키에 도착해서 엉엉 울며 엄마한테 전화했던 내가 엄마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6개월 동안 많은 곳을 다니며 깨달은 건 ‘당황하지 말자. 어떻게든 다 해결된다’는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유연하게 넘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택시 타고 국경을 넘게 될 수도 있고, 기장님이 다른 나라에 내려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사건에서 오는 이상한 설렘이랄까. 그땐 당황스럽고 힘들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채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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