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미래, 로봇이 그리다
'로봇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일 것이다. 로봇 저널리즘은 말 그대로 로봇이 저널리즘에 해당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의미는 신문과 잡지를 통하여 대중에게 시사적인 의견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활동이다. 이를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저널리즘은 대중이 보는 매체에 글을 쓰는 활동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기자'라는 직업의 소유자들이 해왔던 일이다. 그런데 '로봇 저널리즘'은 바로 그 기자가 하던 일을 로봇이 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글 쓰기의 속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하나는 창작에 대한 글이다. 창작은 100% 사실에 기반할 필요가 없고 사실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사실을 전달하는 글이다. 예를 들어서 소설이나 시와 같은 경우 매우 창작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고 뉴스 기사는 매우 사실적인 글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뉴스기사와 같은 경우 글쓰기가 갖추어야 하는 특징이 효율적 사실 전달이나 정보의 함축적 요약에 대한 부분이다. 야구경기에 대한 뉴스 기사를 예를 들어보자. 야구는 대표적으로 스탯 즉 숫자를 중심으로 결과가 표현되는 스포츠 영역이다. 즉 수치를 중심으로 글이 적히고 시간 순서에 따른 수치 변화나 예상이 주된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수치의 정보가 개인 혹은 팀이라는 대상에 따라 관찰되는 Metric이 다르며 개인의 스탯이 팀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내고 기술하는 것이 야구 저널리즘의 핵심이다. 이곳의 글쓰기에 있어서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나 시적 표현은 필요 없다. 예를 들어 아래 기사를 한 번 보자.
위 기사는 서울대학교 이준환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기사 작성 알고리즘 '야알봇'이 작성한 기사이다. (야알못의 야구뉴스 페이지) 이 정도의 글 수준이라면 사실상 이것이 사람이 쓴 글인지 로봇이 쓴 글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실제로 동아일보에서 지난 16년 4월에 온라인으로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총 273명이 응답한 이 실험의 정답율은 45.9%로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로봇의 기사와 사람의 기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기사링크). 기사에 따르면 한 설문 응답자는 “굴욕을 당했다”, “꽁꽁 묶었다”와 같이 가치를 부여하는 표현들로 인해 사람의 기사로 착각했다고 한다. 물론 기사가 잘 읽히고 전문적인지에 대한 평가는 사람의 기사가 앞섰지만 그 격차 역시 크지 않았다. 아직 로봇 저널리즘이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글이 잘 읽히는 정도에 있어서도 로봇이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은 얼마 멀지 않은 미래에 달성 가능한 미션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변화가 가져오는 상징적인 의미는 이제 효율과 단순 전달 및 정보의 요약에 대한 부분은 점점 인간 글쓰기의 영역에서 벗어난다는 부분에 있다. 과거만 하더라도 이런 숫자에 의존적이고 이런 숫자를 분석하여 쓰는 글은 특정 분야에 가장 정통하고 전문적이어서 수치들을 모두 꿰고 머리 속에 이에 대한 데이터로 가득한 전문 기자들의 영역이었다. 물론 아직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데이터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로봇이 완벽히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분야에서 지금 당장 로봇이 사람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린 모두 위의 기사를 읽으면서 미래가 급변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또 다른 영역이 여기에 해당할까? 주식, 환율, 음원차트 순위, 투표에 대한 개표, 날씨 등의 영역은 수치변화에 대한 분석이 기사 내용의 중심에 해당하기 때문에 야구뉴스와 비슷한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야알봇의 알고리즘이 이런 영역들은 하나하나 정복이 가능할 것이다. 로봇에게 저널리즘은 끝없이 펼쳐진 기회의 땅인 셈이다. 그리고 이처럼 로봇이 글을 쓰고 사람이 읽는 것이 점차 보편화되고 나면 일부의 미디어는 로봇이 전달한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이 댓글로 소통하는 것 역시 가능해질 것이다. 인간이 어떤 면에서는 미디어 영역의 조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연히 기자의 역할이 변화되거나 축소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미지 : 동아일보 |
이와 같은 로봇 저널리즘의 흐름은 단연 미국이 거세다. 미국의 로봇 저널리즘 회사인 Narrative Science가 만들어낸 Quill은 오래 전부터 이미 야구 경기 등과 같이 수치적으로 이루어진 글들을 써냈고 최근에는 글의 업데이트가 뜸하지만 포브스와 같은 사이트는 아예 Narrative Science의 글을 실어주는 별도의 페이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포브스 이외에도 LA타임즈나 로이터와 같은 세계 유수의 미디어들은 스포츠나 금융 그리고 날씨 등의 분야에서 로봇 저널리즘을 실험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다. 또 다른 미국의 로봇 저널리즘 회사인 Automated Insight 역시 Wordsmith라는 이름의 글쓰기 플랫폼을 만들었으며 야후스포츠 등의 고객을 대상으로 기사를 작성해내고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역시 로봇 저널리즘의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e커머스의 최강자’ 아마존은 클라우드 서비스 인프라의 정점에 있는 아마존 웹서비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IT서비스와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워싱턴 포스트를 2013년 인수하였다. 그리고 그 후 헬리오그래프(Heliograf)라는 시스템을 통하여 인간과 로봇이 함께 기사를 작성하는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특히 이런 실험은 지난 2016년 있었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 헬리오그래프는 올림픽 기간 동안 올림픽에 대한 다양한 속보들을 빠른 속도로 기사화시켜 사람들에게 공유하였다. 이런 아마존의 실험은 알렉사와 에코를 통한 인공지능 시스템의 구축과 기존의 클라우드 인프라의 활용 등과 잘 어우러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마존의 상품 판매에 있어서도 헬리오그래프가 친절하게 작성한 상품설명서를 에코를 통해 알렉사가 읽어주는 아름다운 시나리오마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이미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로봇 저널리즘의 단계가 검증의 수준이 아닌 상용화의 단계를 넘어서고 있으며 그 분야에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거대 IT기업까지 가세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들이 빠르게 기술을 개발하여 실제로 뉴스 기사를 읽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기사를 배포하는 모습을 보면 아직 우리의 로봇저널리즘이 가야 할 길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와 같은 로봇 저널리즘의 확대는 힘을 들이지 않고 글을 써낼 수 있다는 특유의 장점으로 인해 그 동안 크게 상업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분야이기에 기사가 잘 작성되지 않았던 틈새분야에 대한 콘텐츠의 다양화나 로봇저널리즘의 빠른 기사 작성으로 인해 더 빠른 정보의 전달과 같은 혁신의 요소도 분명히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IT와 저널리즘 업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로봇 저널리즘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파피루스, 팔만대장경, 구텐베르크까지 글쓰기와 인쇄물 그리고 저널리즘은 인간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였다. 그리고 이런 글쓰기의 영역의 변화는 온라인 매체의 활성화와 매체의 영역을 일반 필자의 영역으로 넓힌 허핑턴포스트와 같이 저널리즘 영역의 확대 그리고 큐레이션 미디어의 단계로 발전해왔다. 이처럼 사람과 그 사람이 써오던 글을 둘러싼 발전은 이제 가장 큰 혁명을 앞에 두고 있다. 이런 저널리즘의 혁명을 두고 우리는 로봇과 함께 마주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