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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외도, 윤도현

행복한 외도, 윤도현

무대에 서는 모든 직군이 그렇듯이 뮤지컬 배우 역시 적합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성악과 출신이나 아이돌 가수들이 뮤지컬 무대에 도전하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인 것처럼 보여도 성악 전공자들은 오페라 연기와 딕션을 배우지 않고서는 졸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된 아이돌 스타들의 뮤지컬 진출은 연습생 시절부터 올라운드 플레이어를 목표로 연기와 춤, 노래의 기본을 훈련받고 데뷔 후에는 스타성과 티켓파워까지 갖추었다는 점에서 그 흐름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려는 윤도현은 그 중 어느 쪽에도 해당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1995년 학전의 <개똥이>로 데뷔한 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하드록 카페> 등 록 뮤지컬에 잇따라 출연했고 긴 쉼표를 찍은 후 2009년 <헤드윅>으로 돌아왔다. 그 후 거의 1, 2년 사이에 한 편씩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광화문 연가>, <원스>까지 출연작을 늘려왔으니 어느덧 데뷔 20년 차에 이른 베테랑인 셈이다. 


90년대 이후 한국 록 씬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록스타인 그가 무대에서 관중들을 휘어잡을 만한 흡인력과 전달력을 가진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제약 없이 자유로운 록뮤지션의 스테이지와 가장 양식화된 공연예술 중 하나인 뮤지컬 무대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 가운데 윤도현이 뮤지컬 배우로서 작품 속에서 늘 제 몫을 해내고 그 결과물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과욕을 부르지 않는, 하지만 진짜 욕심을 낼 만한 작품을 고르는 안목에 있을 것이다.


의인화한 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생명의 가치를 역설하는 데뷔작 <개똥이>와 대극장 뮤지컬로는 첫 작품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걸작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는 공통적으로 ‘록 오페라’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하드록카페>와 <헤드윅>, <광화문 연가>와 <원스>까지 윤도현은 자신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정서의 작품들을 선택해왔다.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연기술의 한계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자신이 물속의 물고기처럼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신중하게 골라온 결과가 뮤지컬 배우로서 윤도현이 가꿔온 안정적인 커리어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뮤지컬 무대에 서는 일이 주업이 아니고, 때문에 특정 장르에 한정되지 않고 두루 연기를 잘한다거나 이미지 변신의 귀재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굳이 애쓸 필요 없이 관객도 그 자신도 함께 행복한 외도를 이어가며 시나브로 작품의 폭을 넓혀왔다. 물론 어떤 학교의 연극영화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제대로 된 쟁쟁한 배우들을 키워낸 것으로 유명한 학전에서 처음 연기의 걸음마를 배웠으니 살아있는 전설, 김민기 연출의 지도편달 또한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소개할 때 즐겨 쓰는 표현대로 ‘노래하는 윤도현’인 그가 김민기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존 카메론 미첼의 곡을 부르기 시작하면 마치 한 페이지 속에서 따로 볼드처리가 된 문장처럼 도드라진 선명한 소리가 공간을 채우고, 그 뮤지컬 넘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느끼게 된다. 어떤 무대에서든 그의 노래에는 절창이라는 말이 누구를 위해 왜 존재하는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인 박노해는 윤도현과 뮤지컬 배우 이미옥의 결혼식에서 주례사를 하면서 그를 ‘건강한 열정을 가진 우리 시대의 가수, 공동선에 민감한 의식을 가진 소중한 예인’이라고 칭찬했다. 삶과 예술에 대한 건강한 열정과 타인의 고통에 대해 민감한 촉수를 가진 예인이 기가 막힌 노래로 자신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대에서 풀어낼 때 관객은 공감과 공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이 만족스러운 외도가 무탈하게 쭉 이어지리라 짐작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글 | Y, 일러스트 | 영수(fizzj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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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로, 기자로, KBS, 아리랑 TV, 공연 잡지에서 일했고, 지금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