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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꿈꾸는 디바, 바다

나를 꿈꾸는 디바, 바다

벌써 7년이 지난 일이지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국 라이선스 초연을 앞두고 에스메랄다 역에 깜짝 캐스팅된 바다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방송 스케줄 때문에 밤 10시를 넘겨서 청담동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진행된 대화는 자정을 훌쩍 지나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많은 이들이 뮤지컬 배우로서 바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으로 에스메랄다를 손꼽고 <노트르담 드 파리>를 그녀의 뮤지컬 데뷔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뮤지컬 시장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2003년, 화려한 아이돌 스타들이 도전하기에는 아직 작품도 시장도 마땅찮았던 그 시절 바다는 S.E.S의 해체 이후 첫 행보로 창작뮤지컬 <페퍼민트>를 선택했다. 아니 단순히 ‘선택했다’는 말로는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당시로써는 드물게 체계적인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친 이 창작뮤지컬은 한국의 대중들이 익히 알고 있는 아이돌 스타,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요정 ‘바다’의 이름과 삶을 반영한 자전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창작뮤지컬이 그러했듯이 <페퍼민트>가 아쉬움과 희망을 함께 남기고 관객들과 작별한 후, 더 이상이 그 작품이 언급되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 지나 에스메랄다 역으로 다시 무대에 설 준비를 하고 있는 바다와 만났을 때 그녀가 들려주었던 긴 이야기의 핵심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에스메랄다 역시 <페퍼민트>의 ‘바다’처럼 자기반영적인 캐릭터라는 것이었다. 


한때 제법 큰 클럽을 가진 가수였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병을 얻은 아버지와 함께 시골 성당의 가건물에 몸을 의탁한 꿈 많은 소녀.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싶었던 소녀는 모두가 잠든 밤 들끓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숲을 무대 삼아 밤새도록 춤추고 노래했다. 세상은 모두 잠들고 오직 소녀의 꿈만이 깨어있었던 그 시간을 자신이 꿈꾸던 바로 그 존재가 된 이에게서 듣는 경험은 무척 강렬했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를 이야기하는 바다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겁고 확신에 가득 차 있어서 열 몇 살 먹은 성당 소녀 최성희의 벅찬 가슴을 상상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2016년 현재에도 바다는 그 시절을 회상하면 꿈꾸듯 열기 가득한 목소리일 것이다. 그 후로 그녀와 따로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지만 확신할 수 있다.


사람이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무대 위에 서는 이들을 둘러싼 세계의 변화는 보통의 삶과는 비교하기 힘들만큼 급격하다. 그런데 이따금 그 거대한 흐름에서 홀로 벗어나 있는 듯 한결같은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들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의식이 그들 안에 바위처럼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가 바다를 격려하며 말했다는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대한민국의 첫 번째 걸그룹의 첫 번째 리드보컬- 퍼스트 레이디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선 지 어느덧 10년을 넘긴 바다에게 어떤 의미일까. 에스메랄다, 페기 소여, 한나, 그리고 바다. 엄밀히 말해서 그녀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극 중 캐릭터와 실존인물인 디바, 바다의 경계가 모호할수록 관객들은 좋은 평가를 보내왔다. 가수로서 보석보다 귀한 선물인 그녀만의 특별한 목소리는 뮤지컬 배우로서는 일장일단을 가진 개성이다. 논리적인 이해보다는 본능처럼 이끌리는 감성과 직관을 신뢰하는 그녀의 스타일 또한 뮤지컬 배우로서 바다에게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직업과 관계없이 천성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연출하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티스트로서 그러한 속성을 타고났다는 것은 아마도 어떤 재능 못지않은 행운일 것이다. 바다가 언제나 어떤 작품에서나 믿고 볼 수 있는 배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쉽게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배우인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자면, 그녀가 연기하는 스칼렛 오하라가 보여주는 -아마도 바다의 것이리라 짐작되는-자신의 삶에 대해 용암 같은 사랑 같은 것 말이다.


글 | Y, 일러스트 | 영수(fizzj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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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로, 기자로, KBS, 아리랑 TV, 공연 잡지에서 일했고, 지금은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