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믿고 '영끌'했는데… 등록금·신혼집 날린 개미들
올해 주식시장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공모주 투자'입니다.
올 상반기 코로나19 사태로 바닥을 쳤던 주가가 회복기에 접어들며 이른바 '대박'을 낸 개인 투자자들이 SK바이오팜, 카카오게임즈 등 '대어급' 공모주 청약에 몰려들었는데요.
지난 7월 상장한 SK바이오팜은 약 31조 원의 청약 증거금을 모았고, 9월 상장한 카카오게임즈는 58조 원대 청약 증거금을 끌어모으며 국내 기업공개 사상 최대 기록을 썼죠.
대흥행에 힘입어 카카오게임즈와 SK바이오팜 모두 상장 첫날 이른바 '따상'(공모가 2배에 시초가가 형성된 뒤 상한가)에 성공했는데요.
이들 공모주의 화려한 데뷔에 투자자들 눈은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 소속사이자 하반기 기업공개(IPO) 기대주로 꼽힌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쏠렸습니다.
빅히트 공모주 청약을 앞두고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65조 원에 육박했고, 청약 증거금도 58조 원이 몰리며 열기가 뜨거웠는데요.
외신까지 주목한 가운데 기존 투자자뿐 아니라 최근 주식시장에 들어온 '주린이'(주식+어린이)들까지 뛰어들었죠.
가계대출이 9월 기준으로 최대 증가폭을 보인 요인 중 하나로 공모주 청약 자금 수요가 꼽힌 만큼, 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 '영끌', 빚내서 투자하는 '빚투'가 빅히트 청약에서도 상당수였습니다.
그러나 '따상'을 기대하며 뛰어든 빅히트 주가는 지난 15일 상장 후 곧바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상장 당일 공모가(13만5천 원)의 160% 수준인 35만1천 원을 기록하며 투자자들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지만, 반짝 '따상' 이후 연일 주가가 급락해 '대박'을 기대한 투자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죠.
지난 26일엔 15만 원대까지 내려앉아 상장일 최고가인 35만1천 원 대비 절반 아래로 하락했는데요.
이런 하락세에 인터넷 주식 관련 게시판에는 "빅히트 주식 환불 안 되냐"는 글이 다수 올라왔습니다.
각종 주식 커뮤니티에선 "휴학하고 등록금까지 올인했다", "내년 봄 결혼 앞두고 모아둔 지방 아파트 한 채 값을 투자했다" 등 속앓이 사연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빅히트 주식 공모가격 결정 기준을 명명백백 밝혀달라는 청원글까지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가수를 앞세워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 행태와 무엇이 다른지 의구심이 드는 현실"이라고 비판했죠.
이러한 개미 투자자들의 원성에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주요 주주들의 대량 매도가 빅히트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인데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빅히트 4대 주주인 메인스톤과 특별관계인인 '이스톤 제1호 사모투자 합자회사'가 상장 후 4거래일간 총 158만주 규모, 3천600여억 원어치 주식을 팔아치웠습니다. 평균 매도 단가는 23만 원 수준.
더불어 빅히트 3대 주주인 스틱인베스트먼트도 상장일 고점에서 의무보유를 확약하지 않은 주식 일부를 매도했습니다.
반면 개인 투자자는 이 기간 4천500여억 원을 순매수해 주요 주주가 던진 물량 폭탄을 고스란히 받아낸 꼴이 됐죠.
이에 주요 주주의 차익 실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큰 상황.
그러나 상장 전부터 빅히트 공모가가 고평가됐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개미 투자자들의 아우성에 냉소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대형 연예기획사 주가 대비) 거품이 심했다", "이익 내면 개인 능력, 손실 보면 타인 책임이냐", "도박인 줄 알고 들어간 것 아닌가".
증권 전문가들은 업종이 각기 다른 공모주 케이스를 표본으로 삼기보다, 개인이 투자 회사에 대한 확고한 기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수석연구원은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이든, 실적 기대치든 본인이 확고한 하단과 상단을 정해놓고 사고팔아야 하는데, 개인은 이런 훈련이 상대적으로 덜 돼 있어 부화뇌동하는 매매가 된다"며 "매매 쏠림 현상들이 나타나 개미 투자자들이 손실을 많이 보는 구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신규 상장주에 대한 투자 시 유의사항은 본인만의 기준점을 잘 설정하는 것"이라며 "올해 공모주 대어로 불린 세 종목은 각기 업종이 다르니 비슷한 기업들을 준용하는 편이 좋다"고 덧붙였습니다.
'영끌' 개미 투자자들을 실망시킨 빅히트 주가. 앞으로 의무보유확약에 묶인 기관 등의 물량이 쏟아지면 추가 하락에 대한 우려도 커지는 상황인데요. 다시 한번, 유행에 편승한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은정 기자 김지원 작가 한명현 인턴기자 박소정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