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딸, 40대 엄마 함께 타투 배워요"
종교인·공무원·연구원·요리사 등 직업도 가지각색
그림으로 흉터 가리는 '메디컬 타투'도 확산에 한 몫
탈모도 감쪽같이 보완하는 타투…"삶의 질 나아졌다"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전남 여수에 사는 박은영(47) 씨는 최근 동네에 작은 타투샵을 차리고 타투이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 골프선수였던 박 씨는 외국에서 열리는 경기에 참가하며 몸에 타투를 새긴 사람들을 자주 접했고, 그 무렵 한국에서 목과 허리, 발등에 타투를 시술받았다. 15년간 가정주부로 지내던 박 씨는 두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자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한다.
박 씨가 타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남편이 먼저 "타투를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타투를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찾았지만, 여수에는 마땅한 곳이 없어 서울 홍대입구 근처의 학원까지 왕복 11시간 거리를 일주일에 세 번씩 오갔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딸이 타투에 관심을 보여 방학 때는 딸과 함께 타투를 배우러 다녔다.
박은영씨가 그린 타투 도안 [박은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박 씨는 "1년여간 타투 시술을 배우면서 우울증을 극복했고, 작년 11월에 자격증을 땄다"며 "호랑이나 용처럼 정형화된 모양이 아닌, 고객에게 잘 어울리는 디자인을 찾아주며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부터 중장년까지 타투 고객…경찰·회사원·연구원 등 직업도 다양
박 씨에게 시술받은 고객의 연령층은 적게는 22세부터 많게는 64세까지 다양하다. 박 씨는 "경찰, 사업가, 회사원 등 고객의 직업도 가지각색"이라며 "예전에는 타투샵이라는 것을 숨기고 영업했다는데, 지금은 시대가 많이 변해 간판도 내걸고 시술 사진을 창문에 붙여두기도 한다"고 전했다.
타투 고객의 연령층과 직업군은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웃들에게서 타투를 쉽게 볼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이제 타투는 '용 문신'으로 대표되며 공포감을 조성하던 이미지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박은영씨가 작업한 타투 [박은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의 한 호텔에서 양식 조리사로 일하는 고형주(43) 씨는 2013년 한쪽 팔에 잉어 그림 타투를 받았다.
고 씨는 "타투 시술을 받은 뒤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다"며 "그전까지는 남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해 눈치 보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 타투를 통해 개성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좀 더 과감하게 내 색깔을 표현하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고 했다.
이후 그는 문자 타투를 새겨 넣는 '레터링' 시술도 받았다. 고 씨와 함께 일하는 주방 직원 중에도 타투 시술을 받은 이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리서치기업 연구원 홍모(28) 씨는 지난해 왼쪽 팔에 두 개의 타투를 시술받았다. 홍 씨의 친구들은 모두 "예쁘다"는 반응이었다. 어머니는 "타투의 위치와 각도가 조금 아쉽다"는 감상평을 남기기도 했다.
홍 씨는 "지인 중에서는 주로 여성 회사원들이 타투 시술을 받는다"며 "젊은 여성들에게 있어 타투 시술을 받는 것은 이제 네일아트를 받는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술작가 김모(28) 씨는 20살 때부터 타투 시술을 받기 시작했다. 김 씨는 "타투가 몸에 30여 개 정도 있다"며 "타투 시술을 받을 때 내 몸에 대한 선택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느껴지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타투에 대한 주변 사람의 반응은 8년 전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달라졌다고 한다.
김 씨는 "예전엔 '그거 지워지는 거냐', '시집을 어떻게 가려고 하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요즘은 대중목욕탕을 가도 아주머니들이 '나도 받고 싶다', '예쁘다'고 한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도 학교 선생님이 딸과 함께 시술받기도 하고, 미술·음악 전공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타투 시술을 받는다고 한다.
21년 차 타투이스트 조명신(57) 빈센트의원 원장은 "스님, 판사, 의사 등 다양한 고객이 찾는 만큼, 타투는 더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체 콤플렉스 가려주는 '메디컬 타투' 확산…"삶 만족도 높아졌다"
타투가 치료 목적으로 널리 쓰이게 된 것도 타투가 확산하는 데 한몫했다. 일명 '메디컬 타투'라 불리는 이 시술은 흉터 등 몸에 있는 결점을 가리기 위해 사용된다.
연구원 김소영(33) 씨는 지난해 한쪽 팔에 탄생화(태어난 달을 상징하는 꽃)와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새기는 메디컬 타투를 시술받았다.
김 씨는 "눈에 잘 띄는 곳에 보기 싫은 흉터가 있어 예쁜 디자인의 타투로 가렸더니 삶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소영씨가 받은 탄생화 메디컬 타투 [김소영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신정섭 전 국제타투아티스트협회 회장은 2014년부터 '마음을 치유하는 타투'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메디컬 타투 시술을 해왔다. 화상, 맹장수술, 제왕절개수술 등으로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해 타투 시술을 문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신 씨는 "유방암으로 가슴 절개 수술을 한 후 흉터가 생긴 60대 여성에게 타투 시술을 했는데 '18년 만에 사우나에 갈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더라"며 "많은 분이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 소속돼 메디컬 타투를 전문으로 하는 타투이스트도 있다. 성형외과에서 환자들의 화상 흉터 등에 타투 작업을 하는 신정화(53) 씨는 30년간 반영구 화장을 해왔고, 메디컬 타투 경력으로는 12년 차의 베테랑이다.
신 씨는 일본의 한 미용대학에서 반영구 화장을 공부했고, 메디컬 타투를 본격적으로 하고자 2009년부터 중국, 네덜란드, 독일, 미국 등에서 유명 타투이스트를 찾아다니며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신 씨는 "암센터나 화상센터를 보유한 대형 병원과도 협업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3천여 명에게 메디컬 타투 시술을 했다"고 밝혔다.
메디컬 타투를 전문으로 하는 병원도 등장했다. 피부 질환이나 상처를 그림으로 숨길 수 있다는 취지로 홍보하는 병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명신 빈센트의원 원장은 "타투와 의학을 접목하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감을 되찾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답'이라 포기했는데…탈모인에 답 찾아준 타투
질병이나 사고로 생긴 흉터 외에 많은 사람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는 탈모도 반영구 시술이나 타투로 감쪽같이 보완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이마가 M자 형태로 변하는 탈모가 생긴 30∼40대 남성에게 헤어라인 시술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 이모(48) 씨는 3주 전 서울 홍대입구 근처의 타투샵에서 M자 탈모를 보완하는 반영구 시술을 받았다. 이 씨는 평소 탈모 때문에 얼굴이 커 보여 사진 찍는 것을 기피하는 등 스트레스가 컸다고 한다.
이 씨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시술받은 티가 전혀 나지 않아서 사진도 많이 찍고 다닌다"며 "나이가 덜 들어 보이고 이미지도 깔끔해져 여자친구도 만족해한다"고 했다.
반영구 시술로 탈모를 커버한 중년 남성 [윤일향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한국반영구화장미용사중앙회 팽동환 회장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마스크를 쓰면서 헤어라인이 도드라져 보여 시술을 받는 사람들이 늘었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헤어라인과 두피 시술은 여성들에게 주목받았는데, 요즘은 남성들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6년 차 타투이스트 송모(41) 씨는 1년 전 반영구 시술을 배운 후 헤어라인 시술을 해왔다. 송 씨는 "시술 고객 중 30∼40대 남성이 80%를 차지한다"며 "점으로 찍기도 하고, 머리카락처럼 한 올 한 올 그리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술하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했다.
탈모로 고민하는 50대 이상 남성들도 시술을 받는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고모(53) 씨는 최근 지인이 두피에 반영구 시술을 받은 것을 보고 타투샵을 찾았다.
고 씨는 "원형 탈모 때문에 고민이 많아 약도 먹었지만, 효과에 한계가 있었다"며 "지금은 단골손님들이 '어떻게 갑자기 머리카락이 났다'며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게 보완이 돼 정말 만족스럽다"고 했다.
윤일향 한국반영구화장미용사중앙회 이사는 "두피 시술은 50대 이상의 회사 중역이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남성들도 많이 찾는다"며 "인상이 좋아지고 어려 보이는 효과가 있어 '자신감이 생기고, 나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신뢰도가 높아졌다'는 고객들의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밝혔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fortu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