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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② The Lion Doesn't Sleep Tonight

세렝게티의 현실은 만화 주제곡 가사와는 달랐다. 사자는 밤에 잠을 자지 않았다. 주린 채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사냥에 나선 사자의 모습은 어쩌면 서글프기조차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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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헤치며 사냥에 나선 사자 [사진/성연재 기자]

'사자는 오늘 밤 잠자지 않는다네'

영화 '라이온 킹'의 OST 가운데 하나인 '사자는 오늘 밤 잔다네'(The Lion Sleeps Tonight)라는 팝송이 있다.

'정글의 사자는 오늘 밤 잠을 잔다네∼'(In the jungle, the mighty jungle, the lion sleeps tonight)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밀림의 왕자 사자는 한밤중 주린 배를 움켜쥐고(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먹을 것을 찾아 밤새 헤매는 모습만을 보여줬다. 밤에 세렝게티에서 만난 사자의 모습은 만화 라이온 킹에서 봤던 늠름한 '밀림의 왕자'의 이미지를 사정없이 깨버렸다. 사자는 그저 배고픈 한 마리의 짐승에 불과했다.

세렝게티 '워킹 사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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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사파리에 나선 사람들이 석양을 즐기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세렝게티에는 이틀 머물렀다. 첫날 저녁에는 '워킹 사파리'(Walking Safari)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차량이 아니라 두발로 세렝게티 땅을 밟으며 풍경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다. 차량에서는 놓치기 쉬운 세밀한 부분을 관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마침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어 숙소 뒤편 야트막한 언덕을 서둘러 올라갔다. 걸어서 체험하는 사파리라 긴장감이 더했다. 발밑에 어떤 것이 있을지도 몰라 긴장하며 라이플을 든 가드를 뒤따랐다. 조그만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긴장감이 더해졌다.


다행히 큰 위험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걷는 동안 동물을 목격하지 못한 것은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다.


코스 마지막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었는데 유럽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지는 해를 감상하고 있고 주변 나무에 걸려 있는 누(gnu, 영양의 한 종류)의 머리뼈에 석양빛이 비치고 있었다. 말없이 먼저 앉아있던 유럽인들과 함께 석양을 바라봤다.


리조트 직원들이 시원한 맥주와 탄산음료를 한 상자 날라왔다. 언제라도 동물들이 나올 것 같은 긴장감 속에 즐기는 황혼은 짜릿한 흥분을 줬다. 노르웨이에서 온 20대 여성은 추운 나라를 벗어나 세렝게티에 오니 너무나 행복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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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사파리에서 만난 누의 머리뼈 [사진/성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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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즐겁게 음료와 함께 지는 해를 감상하며 여유를 즐겼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야생동물들이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리 준비한 헤드 랜턴을 켜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행 중에 헤드 랜턴을 가지고 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이트 사파리

그다음 날 온종일 사파리를 마친 뒤 또 다른 사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트 사파리(Night Safari)였다. 전날은 도보 사파리였다면 이번에는 사륜구동차를 타고 깜깜한 어둠을 가르며 야생동물들을 관람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예전에 태국 치앙마이에서 겪어봤던 나이트 사파리를 떠올리며 '바나나를 준비해야 하나'라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치앙마이에서는 사람들의 먹이주기에 익숙해진 동물들이 차 내부까지 고개를 들이밀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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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사파리에 나선 관광객과 몽구스 [사진/성연재 기자]

그때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기린이었다. 그 큰 기린이 구부정하게 고개를 숙이고 차 내부로 몸을 내밀었던 기억이 났다. 일행들에게 '양배추나 과일 등을 준비하면 좋다'는 조언까지 했다.


그러나 내 조언은 엉터리로 판명이 났다.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달리는 사륜구동차 근처로 다가오는 야생동물은 한 마리도 없었다. 한밤에도 사라지지 않는 먼지와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비춰대는 서치라이트 세례 속에 한두 마리씩 야생동물을 발견하는 느낌은 경이로웠다.


"앗 저기다. 저기 사자다."


짧게 외치면 운전사가 조심스레 사자 근처로 접근해 서치라이트를 비췄다. 먹잇감을 찾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사자의 모습에서는 밀림의 왕자가 주는 위엄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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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 새끼 한 마리가 혼자 초원에 남겨져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최상위 포식자인 그들도 힘들게 먹이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낮에 보이지 않던 토끼도 눈에 띄었고 몽구스도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하이에나 떼가 등장했다. 하이에나는 가족이 군락을 이루고 수풀 속에서 서식하고 있었는데, 서치라이트를 비추자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이곳저곳을 오가며 번갈아 모습을 드러냈다.


사파리에 함께 나선 한 중년 남성은 나이트 사파리가 불편하다는 반응이다. 야생동물의 야간 생활을 침범하는 것이 맘에 걸린다는 것이다. 사자는 확실히 야행성 동물이다. 세렝게티에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사자들이 많은 이유다.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우리 인간의 시각 아닐까요? 낮에 본 것처럼 사자는 낮에는 잠을 자지만 밤에 잠을 자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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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새끼 한 마리가 불빛을 보고 수풀 바깥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성연재 기자]

야생과는 얇은 천 한 조각…아프리카의 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는 아프리카 세렝게티의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세렝게티에서의 숙소는 글램핑과 비슷한 숙소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미리 설치된 텐트에 화장실과 집기들이 설치돼 있다.


위쪽에는 뜨거운 햇살을 피하고자 양철지붕이 설치됐을 뿐 한국의 글램핑과 비슷하다. 이곳에서는 이런 형태의 숙소를 로지(lodge)라고 부른다. 호화스럽지는 않지만 가장 세렝게티다운 숙소라 할 만하다. 우리는 세렝게티 지역의 서북부에 자리 잡은 중급 가격대의 이코마 와일드 캠프(Ikoma Wild Camp) 로지에 묵었다. 리조트라 해봤자, 대부분의 숙소가 캔버스 천으로 된 글램핑 시설이다.


가격대가 높을수록 세렝게티 중앙과 가깝다. 중앙 지역으로 갈수록 포시즌스 등 고급 리조트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포시즌스의 경우 2인 기준 1박에 200만원가량이다. 우리가 머문 숙소의 10배가 넘는다.


체크인 시 마사이족 안내인들이 경고한다. 반드시 여러 명이 함께 다니며, 비상시에는 열쇠에 매달린 호루라기를 불라는 것이다. 낮에 사파리 투어를 갈 때도 반드시 열쇠로 문을 잠그고 나가야 한다고 주의를 시킨다. 원숭이가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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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마 로지 글램핑 시설 [사진/성연재 기자]

흔히 원숭이를 가볍게 생각하기 쉬운데, 어쩌면 가장 위험한 야수일 수 있다. 자유롭게 계단 위로 뛰어오르는가 하면 지붕 위를 날아다닌다. 처음에는 '뭐 별일 있겠어'라며 족히 100m는 떨어진 식당까지 혼자 다니곤 했는데, 야간 사파리에서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가족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싹 달아나버렸다.


밤중에 잠을 청하려는데 뭔가 거친 숨소리가 바깥에서 들린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여러 마리다. 카메라와 후레쉬를 들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맙소사 수없이 많은 얼룩말이 내 숙소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그들이 내뿜는 숨소리였다.


처음에는 후레쉬를 들어 이곳저곳을 비춰 봤으나 이윽고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고, 그들의 먹이활동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후레쉬를 껐다. 함께 숙박한 룸메이트는 캠핑이라면 진절머리를 내는 사람이었는데 함께 이 장면을 목격한 뒤 아프리카 글램핑에 단단히 매료됐다. 야생동물이 텐트 바로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흥분을 가져다줬다.


다음 날 아침 지저귀는 새들의 목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온다. 오늘은 또 어떤 아프리카가 날 반겨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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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마 로지 내부 모습 [사진/성연재 기자]

숙소


세렝게티에서는 글램핑 시설인 로지(lodge)를 활용하는 것이 자연을 느끼기에 좋다. 세렝게티 중심부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중저가 수준인 이코마 로지를 추천한다. 응고롱고로 근처의 경우 분화구와 가까운 카라투(Karatu)의 쿠두 로지가 호평을 받고 있다.


잔지바르의 럭셔리한 해변 호텔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 스톤타운 안에 있는 다우 팰리스 호텔은 16세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이 인상적이며,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아루샤[탄자니아]=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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