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화성급 행성 충돌이 생명 씨앗 뿌리고 달도 만들어
약 44억년 전 대충돌로 지구에 결핍된 탄소·질소 등 받아
행성간 충돌 상상도 [NASA/JPL Caltech 제공] |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지구에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탄소와 질소 등 생명체 출현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충분히 갖춰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지구에는 애초에 없던 것들이다.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 안쪽의 암석형 행성에는 탄소, 질소, 황 등 이른바 '휘발성 원소(volatile element)'가 결핍돼 있었다는 것은 원시 운석 연구를 통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래서 이런 생명의 필수 요소들이 지구에 떨어진 운석이나 혜성이 가져다준 것이거나 지구에 충돌한 다른 행성에서 얻은 것이라는 게 정설이 돼왔다. 다만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에 유입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미국 라이스대학 지구환경행성과학과 라즈딥 다스굽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이 이런 논란에 대해 "지구화학적 증거와 일치하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최신호에 실었다.
연구팀은 행성 내부의 화학반응 과정을 확인하기 위한 고온·고압 실험과 이를 통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약 44억년 전 지구가 화성 크기의 행성과 충돌하면서 생명체 출현에 필요한 요소를 대량으로 받았으며, 이때 달도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화성 크기의 행성(왼쪽)이 형성돼 지구에 충돌, 휘발성 원소가 전달되는 과정 [라즈딥 다스굽타 제공] |
연구팀은 우선 지구의 핵이 형성된 뒤 휘발성 원소가 풍부한 탄소질 운석들이 대거 떨어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검토했다. 이 가설은 휘발성 원소의 화학적 성질이 일치하는 등 오랫동안 여러 가지 가설 중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구의 핵을 둘러싼 비핵물질인 규산염(bulk silicate Earth)의 탄소 대비 질소 비율이 40대1로 탄소질 운석의 20대1과 차이가 나는 결정적 결함을 갖고있었다.
연구팀은 고온·고압 실험을 통해 이런 차이가 행성에서 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캡슐에 규산염과 합금을 넣고 행성에서 핵이 형성되는 조건을 맞춰놓고 황이 탄소나 질소 중의 하나 또는 둘 다를 배제해 핵 바깥의 규산염으로 밀어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황이 전혀 없을 때와 10%, 25% 있을 때 등 세 가지 시나리오에 맞춰 온도와 압력을 바꿔가며 실험했다.
그 결과, 질소는 대체로 황의 영향을 안 받고 합금에 용해된 반면 탄소는 황의 중간급 집적도에서도 합금에 용해되지 못했다. 황이 많은 합금에서는 황이 없을 때보다 탄소가 10배나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핵 형성 과정에서 황이 탄소를 밀어냄으로써 핵 바깥의 탄질율이 운석보다 높아지는 것이다.
또 지구와 달의 휘발성 원소는 비슷한 기원을 가진 것으로 밝혀져 휘발성 원소가 달이 형성된 이후에 지구에 왔다는 가설도 배제했다.
달은 '테이아(Theia)' 또는 오르페우스라는 가상 행성이 약 45억1천만년 전 초기 지구(가이아)와 충돌하면서 나온 파편으로 형성됐다는 거대충돌 가설도 제기돼 있으나 연구팀은 이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구와 화성급 행성의 충돌로 생겨난 달 [NASA 제공] |
연구팀은 이런 자료를 토대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약 10억건의 시나리오를 돌려 현재 태양계 조건과 일치하는지를 검토했다.
다스굽타 박사 연구팀은 "우리가 발견한 것은 동위원소와 탄질율, 규산염의 탄소와 질소, 황 총량 등 모든 증거가 황이 풍부한 핵을 가진 화성 크기의 행성이 휘발성 원소를 갖고 지구와 충돌하며 달을 형성했을 때와 일치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는 지구와 같은 암석형 행성은 '원시행성계 원반(protoplanetary disk)' 다른 부분에서 다른 물질을 갖고 형성된 행성과 충돌할 때 생명체 출현에 필수적인 요소를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eomn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