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격려의 공간…한국의 숨은 민간 정원 ③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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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借景)과 꽃향기에 취하다…나주 '3917마중'
전남 나주시의 민간정원 '3917마중'은 '제1회 전라남도 예쁜 정원 콘테스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곳이다.
한옥과 근대 가옥이 조경과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향기가 만리까지 간다고 해 만리향이라 부르는 금목서와 그에 필적하는 향기를 가진 은목서의 향기는 특별한 감동을 준다.
목서원(왼쪽)과 금목서 [사진/성연재 기자] |
80년된 금목서·은목서 향기 그윽한 공간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에서 따온 말로, 이러한 지명을 얻은 지 1천년이 됐다. 나주는 전라도의 뿌리 같은 도시다.
이곳에 여행자들을 환영하는 조용한 정원이 있다. '3917마중'이라는 공간이다.
정원 가운데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가옥이 있고 그 앞에는 수령 80년의 금목서 한그루가 자리 잡고 있다. 금목서는 향수 샤넬 No. 5의 원료로 쓰인다는 나무다.
그런데 어디선가 더 짙은 향기가 진동했다.
목서원 앞의 강아지 [사진/성연재 기자] |
근대 가옥 왼편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은목서에서 풍기는 향기였다. 금목서 꽃은 절정을 지났고, 은목서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기에 더 진한 향기를 냈다.
은목서도 수령이 80년이다. 금목서와 은목서의 향기를 잊지 못해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도 있다.
언덕 옆에는 붉은 상사화가 피어있고 그 뒤로 벤치 그네가 있다. 언덕 위로 올라가니 정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제일 위에는 작은 원두막이 있고, 그 밑에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벤치 등이 다채롭게 꾸며져 있다. 벤치 바닥에는 수백 년 된 고택에서 뜯어온 기와가 깔려 있다.
언덕 위의 '언택트 오투존' [사진/성연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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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7마중 측은 정원 전체를 '언택트 오투존'이라 이름 붙이고 시민들이나 여행자들이 거리를 두며 쉴 수 있도록 했다.
정원을 조성한 사람은 민간도시재생 전문가 남우진 대표다.
그는 전북 전주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도시재생 사업을 해 온 경험을 살려 2017년 나주로 내려와 고택을 손보고 1만3천㎡에 달하는 부지를 정원으로 가꿔왔다.
남 대표는 "수백 년 된 좋은 나무들이 많아 조금만 손을 보았는데도 빛이 났다"고 말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이곳은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체험과 숙박 등이 가능한 나주 여행의 핵심 공간이 됐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주가 관광지로 새롭게 주목받게 된 것은 남 대표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난파정과 목서원
정석진의 장남 정우찬이 살던 난파정 [사진/성연재 기자] |
나주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난파(蘭坡) 정석진(鄭錫珍)이다. 정석진은 1895년, 단발령에 반발해 의병을 일으켰지만, 관군에게 붙잡혀 참수됐다.
지역 호장이었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동학혁명 당시인 1894년에는 나주로 내려온 동학군들을 서성문 일대에서 물리친 인물이기도 했다.
이처럼 나주는 구한말 호남에서 가장 뜨거운 곳 가운데 하나였다.
난파정은 원래 난파 정석진의 큰아들 정우찬이 살던 집터로, 조선 시대 지어진 집을 1915년에 재건립했다.
하늘에서 본 나주향교(왼쪽 위)와 3917마중 [사진/성연재 기자] |
금목서가 있는 1939년 세워진 일본식 근대 가옥인 목서원은 정석진의 손자 정덕중이 그의 어머니를 위해 지은 가옥이다.
특히 한·일 양국의 건축 양식을 절충해 근현대건축학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대 대목이었던 박영만이 설계와 공사를 맡았다.
이 두 곳은 최근 리모델링을 통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했다.
3917마중 조경의 본질…경치를 빌리다(借景)
창문 너머로 항교가 보이는 카페 [사진/성연재 기자] |
선조들이 예로부터 한옥을 지을 때 창문의 기능적인 면과 더불어 고려한 것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액자로서의 가치였다.
특히 이렇게 즐길 수 있는 풍경은 물감이나 수묵으로 그린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움직이며 사계절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것이었다.
바로 차경이다. 말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뜻이다.
3917마중의 정원 내부도 아름답지만, 더 아름다운 것은 바로 옆자리에 있는 나주향교의 담벼락이었다.
수백 년 된 나주향교 담벼락은 80년 된 쌀 창고를 보수한 목서원 카페 내부와 바깥쪽 등 어디서도 보였다.
때마침 향교 내부에 뒤늦게 핀 붉은 배롱꽃과 기와가 어우러진 모습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수 년 전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겨울날 나주를 방문했다가 카페 창문을 통해 향교 담벼락의 설경을 즐긴 기억이 났다.
이처럼 4계절 모두 다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계단에 올라서면 향교 연못이 내려다보인다. [사진/성연재 기자] |
카페 뒤쪽에는 200년 된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맺어진 연리지가 있다.
남 대표는 연리지 옆쪽에 바로 옆의 향교 내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고풍스러운 나무계단을 만들었다.
계단에 올라서니 향교 뒤쪽의 연못이 입체적으로 들어온다. 향교 내부에서도 잘 볼 수 없는 각도다.
더없이 시원한 느낌을 줬다. 선조들의 조경 지혜를 적절히 활용한 멋진 작품이다.
'아름다운 정원' 선정된 이유
3년간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이곳은 짧은 시간에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우뚝 섰다.
지난해 전남도 주관·산림청 후원으로 열린 '제1회 전남도 예쁜정원 콘테스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는 영광도 안았다. 이곳이 지역민이나 관광객과 소통하는 공간이란 점이 주목을 받았다.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크로플 [사진/성연재 기자] |
이곳은 민간정원이지만 어느새 지역민이나 관광객들이 찾아 쉴 수 있는 지역 거점이 돼 있었다.
특히 나주는 전남 지역의 다른 관광지로 쉽게 오갈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가점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입장료는 정원에 딸린 작은 카페에서 음료수를 시키는 것으로 대신한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지역 특산품 나주배를 이용한 음료수와 '나주배 크로플' 등 디저트가 맛있다.
마중 3917 조성 배경을 설명하는 남우진 대표 [사진/성연재 기자] |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0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나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polpo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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