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바람·여자' 제주도 정말 삼다도 맞나요?
줌in제주
여자 대신할 제주만의 특성 찾아 '신 삼다도' 이야기 만들어야
제주도는 '돌 많고(石多) 바람 많고(風多) 여자 많다(女多)'는 의미로 삼다도(三多島)라 불린다.
하늘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연합뉴스 자료사진] |
곤충학자 석주명이 1968년 11월 발간한 '제주도 수필'에서 제주지역 특성을 '삼다삼무'라 표현하면서 제주도의 상징어가 됐다.
석주명은 이 수필에서 "제주도 인구의 남녀 비율이 48 대 52로 여자가 많다"며 "남자는 사망률이 높고 출가인이 많으며, 여자는 활동적이어서 심리학적으로 육지부에 비해 많게 보인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제주는 왜 삼다도일까.
섬 전체가 거대한 돌덩어리
제주는 지금으로부터 170만 년 전 신생대 제4기 동안 진행된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섬이다.
화산에서 분출한 뜨거운 용암이 지표면으로 흘러내려 식어가고 또다시 흘러 쌓이기를 반복, 대지를 이루고 수많은 동굴과 지형지물을 형성했다.
돌이 비바람과 파도에 쓸려 깎이고 깎여 모래와 흙이 되고, 그 위로 풀이 돋고 나무가 자랐다.
사실상 제주도 섬 전체가 거대한 돌덩어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돌덩어리인 제주에 돌이 많은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사실은 조금만 눈을 돌려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 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밭 돌담' [연합뉴스 자료사진] |
특이한 기암괴석인 한라산 오백장군을 비롯한 돌과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은 물론 돌집과 밭담, 무덤을 구분하는 돌담 등 돌과 연관된 손꼽히는 아름다운 풍광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산과 들에 시커먼 현무암을 쌓아 구불구불 끝도 없이 이어진 돌담은 마치 검은 용이 용틀임을 하는 듯하다 해서 흑룡만리(黑龍萬里)라는 명칭도 붙여졌다.
다양한 석상도 있다.
돌하르방을 비롯해 마을의 허한 곳을 막아주는 일종의 액막이 역할을 하는 방사탑도 제주 만에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집안에 들어가는 길목을 지켜주는 정주석, 곡식을 찧는 말방아, 말방아로 보리를 찧기 전에 알맞게 수분을 적셔주는 보리통, 실내 온도를 높여주던 화로의 일종인 봉덕, 현무암 솥뚜껑, 밭갈이에 쓰이던 곰돌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돌을 이용한 각종 살림 도구는 민속 공예품으로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세계 유일의 돌 공원도 있다. 제주돌문화공원에 가면 제주 섬의 탄생 역사와 예부터 돌을 활용해왔던 제주인의 삶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바람과 함께 동고동락…극복 대상에서 자원으로 탈바꿈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는 연중 바람이 많이 분다. 해양은 대륙과 달리 마찰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풍속이 강한 특성이 있다.
육지는 바다보다 태양열에 쉽게 반응해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는다.
가을바람 만끽하는 제주마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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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육지에서 뜨거워진 공기가 가벼워져 하늘로 올라가고 그 빈자리는 바다의 찬 공기가 채운다. 밤에는 바닷물의 온도가 육지보다 상대적으로 늦게 식기 때문에 반대 방향으로 바람이 분다.
이러한 공기의 순환을 '바람'이라 부른다.
제주는 특히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인 만큼 이러한 공기의 순환이 빠르다.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방패가 하나도 없는 절해고도 상에 위치해 바람은 더욱 강력하다.
지리적으로나 기후적으로 기압배치의 변화가 심한 곳에 위치한 제주에는 한반도 본토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분다.
실제 기상청에 따르면 제주지역 연평균 풍속은 초속 4.5m로 한반도보다 1.2∼2배가량 강하다.
태풍 통과 횟수도 연 2.6회로 전국 최다 지역에 속한다.
이같이 강한 바람은 제주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자 극복해야 할 자연 현상이었다.
초가집 지붕에 용마름하지 않고, 줄로 그물처럼 엮어 바람의 영향을 줄인 것이 쉬운 예다.
돌로 쌓은 밭담은 강한 바람으로부터 흙과 씨앗이 날리는 것을 방지하고, 작물이 자라는 동안에도 바람의 영향을 적게 받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최근들어서는 바람을 에너지 자원으로 이용하는 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제주도는 1998년 국내 1호 풍력발전인 행원풍력을 시작한 이래 김녕풍력, 동북풍력, 삼달풍력, 상명풍력 등 크고 작은 풍력발번단지를 조성해 국내 풍력산업을 이끌고 있다.
물질하는 제주 해녀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제주에 '여자 많다'는 말은 옛말?
그렇다면 정말 여자도 많을까.
1600년대 간행된 김상헌의 제주 기행문인 '남사록'에 기록된 당시 제주 인구가 2만2천990명으로, 남녀의 성비를 보면 남자가 9천530명인 데 비해 여자는 1만3천460명으로 남녀 성비가 0.7대 1로 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는 섬 지역의 특성상 주로 뱃일을 하던 남성이 해상사고로 숨지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남자가 주로 했던 전복을 잡아 올리는 포작역을 해녀가 떠안아야 했고, 남자들이 도맡았던 군역 역시 여자가 대신 지면서 다른 지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여정(女丁)'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남사록'에는 당시 남정(男丁)의 수는 500명이지만 여정의 수는 800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 같은 '여다(女多)' 현상은 1900년대 들어서도 이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1945년 제주도 성비(여성 100명당 남성 수)는 82.0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국 성비보다 20.02% 낮은 수치로 당시 제주도 남성 인구와 여성 인구는 각각 11만4천736명과 13만9천791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2만5천55명 많았다.
이 같은 '여다' 현상은 계속해서 이어지다 2008년 처음 깨졌다.
2008년 기준 제주지역 남자는 28만2천937명, 여자는 28만2천582명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355명 많았다.
제주지역 여성인구는 꾸준한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현재까지 여성인구보다 남성인구가 1%포인트 내외로 높다.
여다의 섬이라는 별칭은 사실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만, 2018년 기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전국 평균보다 10%가량 높은 61.2%로 여전히 강인한 제주 여성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제주는 이제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도는 아니다.
기존 삼다도의 한 요소였던 여자를 대신하는 제주만의 독특한 특성을 다시 찾아 새로운 삼다도를 이야기해야 할 때다.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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