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서 평생 기다린 딸…美 입양 44년만에 극적 상봉
"실종 신고하고 전단 붙이며 찾아…절대 버린 게 아냐" 눈물
화상통화 하는 윤상애씨와 가족들 [경찰청 제공] |
(서울=연합뉴스) 문다영 기자 = "상애야. 예쁜 우리 딸. 빨리 만나자. 널 만나니까 너무 좋아. 내 소원 다 풀어준다 인제."
이응순(78)씨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스크린 너머에는 44년 만에 만난 딸 윤상애(47)씨가 있었다.
친모 이씨와 오빠 윤상명씨, 쌍둥이 언니 윤상희씨는 이달 15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찰청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화상통화로 44년 전 잃어버린 상애씨와 상봉했다.
이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었다. 이날만큼은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 싶어 마스크를 벗었다.
1976년 6월 당시 세 살이었던 상애씨는 외할머니와 함께 남대문 시장으로 외출했다가 실종됐다. 가족들은 그날 이후 상애씨를 찾기 위해 모든 걸 다 했다.
남대문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하고 통금시간을 꽉 채워가며 아이를 찾는다는 전단을 붙이고 돌아다녔다. 서울에 있는 보육원은 다 찾아다녔다. 기독교방송 라디오와 한국일보에 사연을 올렸고, KBS '아침마당'에도 출연했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결국 가족들은 상애씨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남대문시장에서 생업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남대문시장에서 한복집을, 오빠는 복권방을 열었다.
이씨는 "널 잃어버린 곳에서 뱅뱅 돌며 장사를 했어. 지나가는 아이마다 너인가 아닌가 쳐다봤지"라며 "하루라도 널 잊은 날이 없어. 그래도 안 만나지더라"고 말했다.
상애씨는 통역을 통해 "경기도 수원의 한 병원에 버려졌다고 전해 들었다"며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됐다. 쌍둥이 언니와 오빠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답했다.
가족들은 "수원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서울에서만 찾았다"며 "우리는 절대 널 버린 게 아니다"며 눈물을 흘렸다.
1976년 미국으로 입양되던 당시 윤상애씨 [경찰청 제공] |
윤씨가 2016년 국내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는 모습 [경찰청 제공] |
경찰에 따르면 상애씨는 실종 6개월 뒤인 1976년 12월 '문성애'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입양됐다.
그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한 시민단체를 통해 2016년 국내에 입국해 유전자를 채취했다. 어머니 이씨도 딸을 찾겠다며 2017년 경찰서를 찾아 유전자를 채취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두 사람이 친자관계일 수 있다고 감정했다.
정확한 확인을 위해 두 사람의 유전자를 다시 채취해야 했지만, 미국으로 돌아간 상애씨가 다시 한국에 와야 해 최종 확인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올해 1월부터 경찰청과 외교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 기관이 합동해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를 확대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이 제도로 재외공관은 한인 입양인의 유전자를 채취해 경찰청으로 보낼 수 있게 됐다.
상애씨는 미국 보스턴 총영사관을 통해 유전자를 국내로 보내왔고 최근 국립과학수사원을 통해 이씨의 친딸임이 최종 확인됐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워 일단 화상통화를 하면서 이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약속했다.
상애씨는 "가족을 안아보고 다 같이 식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기쁨에 압도된다"고 밝혔다.
어머니 이씨는 "만나면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겠다. 피자, 치킨, 불고기, 비빔밥…. 좋아한다면 다 해주겠다"고 답했다.
윤상애씨의 미국인 양어머니와 양언니 [경찰청 제공] |
윤상애씨의 가족. 맨 오른쪽은 통역을 맡은 경찰관. [경찰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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