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잘 지내요"…열흘 만에 생환한 조은누리양
[2019 사건 그후] ④
조양 발견 박상진 원사, 장학금 전달 등 지금도 '아름다운 인연' 이어가
장애인 실종 문제 공론화 계기…지자체, GPS 기반 배회감지기 보급 늘려
한여름 산속 계곡 주변을 살피던 7년생 수컷 셰퍼드 '달관이'가 갑자기 바위 곁에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은누리양 실종(CG) [연합뉴스TV 제공] |
군견의 이런 '보고 자세'에 심상찮은 낌새를 감지한 육군 32사단 기동대대 박상진 원사는 상기된 표정으로 달관이 곁으로 서둘러 다가갔다.
그 순간 바위틈 낙엽 속에 파묻힌 한 소녀의 모습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인기척을 느끼고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에게 박 원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조은누리니?"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네"라고 응답했다.
박 원사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면서 이 소식을 주변에 알렸다. 금세 산속 곳곳에서 탄성이 울려 퍼졌다.
지난여름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청주 여중생 조은누리(14·지적장애 2급) 양이 실종 열흘 만에 기적처럼 구조되던 순간이다.
조양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된 건 올해 7월 23일 오전 10시 30분께.
가족, 지인 등과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무심천 발원지 주변을 등산하던 조양은 도중에 벌레가 많아지자 일행과 떨어져 하산에 나섰고, 그 뒤 행방이 묘연해졌다.
경찰은 실종 하루 뒤인 24일 공개수사로 전환해 본격적인 수색에 착수했다.
조양이 실종된 직후 내린 장맛비와 등산로를 뒤덮은 수풀 때문에 수색 조건은 최악이었다.
군견 동원해 조은누리양 수색하는 육군 병사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
하지만 조양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온 국민의 염원 속에 수색에 참여한 경찰, 군 장병, 의용소방대원, 자원봉사자 등은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수색 11일째인 8월 2일 무심천 발원지로부터 큰 산을 하나 넘어 위쪽으로 92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조양이 발견하면서 이들이 축축한 장맛비와 35도를 넘나드는 폭염 속에 흘린 땀방울은 헛되지 않았다.
구조된 조양은 가벼운 찰과상과 전신 쇠약, 탈수 증상을 보였으나 다행히 건강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길을 잃게 됐고, 어디로 이동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잠을 자며 보냈다고 했다.
수색팀은 때맞춰 내린 장맛비가 생존에 필요한 수분을 공급한 것으로 추정했다. 수색 당시는 궂은 날씨를 원망했지만, 결국 빗물이 조양에게는 '생명수'가 된 셈이다.
조양의 무사 생환을 두고 온 국민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페이스북에 "온 국민이 애태웠다. 무사히 돌아와 고맙다. 일분일초가 안타까웠을 부모님과 가족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는 글을 남겼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
구조 전문가들은 조양 생환을 전례 없는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색에 참여했던 박연수 전 충북산악구조대장은 "붕괴사고에 의한 조난은 기본적으로 체온 유지가 가능하고 체력고갈도 적어 식수만 공급되면 생존 가능성이 높지만, 조양은 추위 등으로 체력소모도 훨씬 컸을 텐데도 기적적으로 버텨냈다"며 "정신력의 승리"라고 설명했다.
조양 수색에 투입된 연인원은 5천790명이나 된다. 그를 가장 먼저 찾아낸 군견 달관이는 일약 '국민 영웅'이 됐다.
뒤늦게 탈영 전력이 있는 '흑역사'까지 전해지면서 달관이는 '탈영견'이라는 오명을 말끔히 씻고 '최고의 수색견'으로 거듭났다는 찬사를 받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조양은 은인 박상진 원사와도 두고두고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박 원사는 지난달 25일 청주여중을 방문해 조양에게 1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조양을 구조한 공으로 받은 위국헌신상 포상금 중 일부를 전달한 것이다.
그는 "조양이 건강하고 밝게 성장하길 바란다"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조양과 동행하고 싶다"고 훈훈한 마음을 전했다.
조은누리양에게 장학금 전달하는 박상진 원사 [청주교육지원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조양 사건'은 장애인 실종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도 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전국에서 한해 7천∼8천여명의 장애인이 실종되고 있다.
2014년 7천724명이던 것이 지난해는 8천881명으로 늘었다.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장애인도 늘고 있다.
2014년 미발견 실종 장애인은 6명이다. 하지만 2017년에는 16명으로, 지난해에는 65명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제2, 제3의 조양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발달 장애인을 위한 배회감지기 보급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GPS(위성위치정보시스템)형 배회감지기는 몸에 착용하거나 소지품에 부착해놓으면 위성 신호를 이용해 보호자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장치다.
이런 배회감지기의 필요성을 확인한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속속 예산 지원을 늘리고 있다. 조양 사건이 장애인 실종 대응 방식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참에 경찰·지자체·민간이 참여하는 '통합적 지원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허미연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은 "발달 장애인은 길을 잃게 되면 무작정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배회하게 된다"며 "신고 단계부터 지자체, 경찰, 민간이 공조하는 '원스톱 지원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jeonc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