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 날을!
과거의 미래는 결과로서의 현재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
(* 결말의 에피소드 한 토막에 관한 짧은 소개가 들어가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필두로 요 몇 년 동안 문화계가 소환한 1990년대는 철저히 낭만의 정서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이다. 대학등록금이나 아르바이트나 취업 등과 같이 먹고 살 걱정 없이 연애할 수 있었던 로맨틱한 시대, 전설로만 회자되는 영화를 보고 금지된 음악을 듣고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아이돌에 열광하는 등 전례 없는 문화 세례를 받으며 자유를 만끽했던 속칭 ‘X세대’ 1970년대 생들의 청춘의 신화 등등. 그런데 이것만이 전부였던가. 마냥 좋기만 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를 불러들이는 작금의 방식에는 문화를 제외한 사회정치적 비극이 배제되어 있다.
<국가부도의 날>은 한국영화가 본격으로 다루는 IMF 사태 소재의 첫 번째 사례다. 벌써 잊은 이들이 있으려나. 간단히 말해, 1997년 12월 외화 보유액이 급격히 하락하며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자 한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 즉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긴급 자금을 지원받은 협정을 말한다. 이것이 ‘사태’인 이유는 IMF 협상을 진행한 협상단 및 정부 책임자들이 ‘국가 부도’의 징후를 밀실에서 봉합한 채 경제호황의 거짓 기사와 정보를 퍼뜨려 위기를 키웠고 IMF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부담의 절대량을 노동자와 같은 서민에게 전가했던 까닭이다.
<국가부도의 날>의 엄성민 작가는 이 시나리오를 구상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이 영화는 실제 IMF 협상 당시, 비공개로 운영됐던 대책팀이 있었다는 기사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우리에게 너무나 큰 사건이었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IMF 협상이 어떻게 진행됐고,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 보겠다고 뛰어든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 화두를 던져보고 싶었다.”
내로라하는 기업의 절반 이상이 나가떨어지고 그 여파로 돈이 돌지 않아 중소기업이 줄도산한 결과, 중산층으로 분류되던 이들의 많은 수가 몰락했다. 국가 경제의 허리가 무너졌다는 건 국가 기능의 마비를 뜻한다. 그런데 그 마비가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인 원인이었다면? 엄성민 작가가 언급한 ‘화두’는 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고서는 실은 의미가 없다. IMF 사태가 터진 지 벌써 21년이 지났지만, 2001년 IMF로부터 빌린 돈을 모두 상환하고 마침표를 찍었다고는 하지만, 여파는 잦아지기는커녕 보이지 않는 지진이 되어 경제 불평등을 고착화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한 장면 |
1997년 12월 3일의 IMF 협정 체결을 두고 당시 언론은 ‘국치일’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에서 이를 주도한 인물은 재정국 차관(조우진)이다. (그의 실제 모델은 IMF 당시 전 재경원 차관, 이명박 정부 시절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를 역임했고, 이후 2017년 산업은행장 시절의 직권남용과 뇌물수수 혐의로 4년 형 선고를 받아 현재는 복역 중인 강만수로 알려진다!) 그는 국가 부도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의 위기 대응 방식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무조건 IMF가 내민 안을 받아들일 것을 밀어붙였다.
구제금융을 앞세워 IMF가 협상 개시 선결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한 건 무려 6개다. 이 조건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노동시장의 유연화’다. 간단히 말해, 기업의 입장에서 정규직은 최소로, 해고는 쉽도록, 비정규직 양산을 주문한 것이다. 이 조건을 군말없이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주문한 재정국 차관의 의도는 분명했다. 이 기회에 몇몇 대기업 위주로 새로 판을 짜 부의 재분배 구조를 독식에 가깝게 가져가려는 음모이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방탄유리로 둘러 90% 국민의 불만과 시정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밀실 행정이었다. 한국을 속국으로 두려는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IMF의 계략에 날개를 달아준 매국 행위였다.
과거의 미래는 결과로서의 현재다. 한국 현대사에서 지배 계급이 현실을 의도적으로 속여 많은 이를 비참한 상태에 빠뜨리게 한 경우는 다반사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형세가 불리해지자 수도 서울을 빠져나가면서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는 국군이 이기고 있다는 거짓 녹음 방송으로 죄 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학살에 대한 책임은 자신에게 없다며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다. 1997년 IMF의 굴욕적인 협상을 주도했던 이들의 당은 지금 제1 야당의 지위를 누리며 오늘도 특권의 방패 뒤에서 온갖 적폐와 악행의 정당성을 무리하게 주장하고 있다.
<국가부도의 날>은 영화의 끝에 자막을 빌려 IMF 지원을 받게 되자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금을 모았고 20억 달러가 넘는 가치의 돈이 대기업의 부채를 갚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밝힌다. ‘누구 때문에?’ 그 원인은 지워지고 ‘누구를 위해!’로 가해와 피해의 지위가 뒤바뀌어버린 IMF의 역사는 지난 과거가 아니라 아직 현재형으로 남아 빈익빈 부익부의 부조리를 견고히 하는 토대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당신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계속해서 당하고 살 것인가?
영화는 더 속아서도, 무기력하게 제 자리만 지켜서도 안 된다며 한 차례 역사의 고인 물을 갈지 못했던 한시현의 현재 시점의 일갈을 통해 돌고 도는 역사의 방향 전환을 요구한다. 마침 우리는 촛불 혁명으로 낡고 곰팡이 핀 과거의 표지를 새로이 갈고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에 들어선 상태다. 이 역사는 국가 부도와 같은 국치가 다시는 들어설 수 없는 상식의 필체와 두꺼운 연대의 페이지로 희망의 미래를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국가부도의 날>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나 소환이 아니라 나은 미래를 향해 가는 데 있어 잊어서는 안 될 현재의 각주 달기다. 1990년대를 낭만으로만 소비하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비극의 역사적 무게가 너무 무겁고 청산하지 못한 뼈아픈 시간의 꼬리가 너무 길다.
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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